0. 안녕하시지요?
저는 현재 개점휴업 중인 드라마작가, 이유입니다.
제가 지옥 지망생의 길에 들어선 건, 이제는 까마득한 2006년 가을.
오랫동안 유령처럼 여의도 바닥을 헤매다 7년 만인 2013년 겨울, TV 단막극으로 데뷔했습니다.
다음 해 단막극을 한 편 더 방송했고, 미니시리즈 공모에도 당선, 집필 계약까지 했지만
계약기간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삽질만 열심히 하고 편성은 따내지 못해 피를 피 같은 돈 토해내며 계약을 해지한 게 1년 전의 일입니다.
상처 받았습니다.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낙오자가 되었다는 열패감에 괴로웠습니다.
쇼미더머니에서 일찌감치 탈락하곤 특별무대를 빌어 ‘한국 힙합 망해라!’를 외쳤던 마미손처럼,
나도 날 내친 한국 드라마판 따위 망했으면 좋겠다고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곧, 잊고 지냈던 공모전 소식을 기웃거리며, 겨우 떼냈던 지망생이란 꼬리표를 스스로 다시 달았습니다.
초조한 마음에 글이 영 안 써지던 어느 날 TV를 틀었는데,
누군가 자신을 '개점휴업 중인 작가'라고 당당하게 소개하는 겁니다.
순간,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도 개점휴업 중이다, 낙오자나 실패자가 아니다,
성공도 실패도 해봤으니, 천천히 준비해서 재개점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됐습니다.
12년 동안의 시행착오들을 돌아보며, 이 경험들을 일기장 밖으로 꺼내놓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드라마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드라마 쓰기를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무엇보다 지망생 시절을 (너무) 상처 받지 않고 버텨낼 수 있는 마음가짐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저는 성공한 작가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실수와 실패의 기억들이 가깝고, 어떻게 상처받고 또 회복하는 지도 선명하니까요.
드라마작가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는, 작가 입문까지는 경험한 선배로서 소소한 팁들을,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작가들에게는 동료로서 위로와 격려를,
드라마작가라는 직업이 궁금한 독자들에게는 직업론으로써의 정보와 재미를 드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다들 안녕하시지요?
여전히 드라마를 꿈꾸고 있는 저도,
이제 막 드라마를 꿈꾸기 시작한 당신도,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는 걸 잊지 않기로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