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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Feb 11. 2019

인공수정의 ABC

시술 전 과배란주사와 약, 시술, 그리고 시술 후의 지긋지긋한 질정!

오늘 아침, 마지막 질정을 썼다. 세 번째로 시도한 인공수정에서,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끝났다. 남은 건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기다리는 것 뿐. 아니, 결과는 이미 나왔다.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다. 시술하고 보름이 지났으니, 지금이라도 임신테스트기로 5분이면 성공이냐 실패냐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딱 3일만 참으려고 한다. 1, 2차 때는 마지막 질정을 넣고 3일 후에 생리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실패라면 3일 후면 자연히 결과를 알게 될 텐데, 궁금한 마음에 몇 천 원짜리 테스트기를 버린다는 게 너무 아까워서 그렇다.


쩝. 실은 테스트기를 버리는 게 아까운 게 아니다. 하루 이틀 더 품고 있을 수 있는 희망을 미리 산산조각 내야 한다는 게 아까운 거다. 30대 후반에 자연임신에 성공할 확률은 10%를 넘지 못한다. 인공수정이 그 확률을 두 배, 세 배로 올려주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후하게 쳐서 20%라고 해볼까? 그래도 실패할 확률이 성공할 확률의 네 배다. 세 번째 시도라고 성공률이 세 배가 될 리도 만무하지만, “삼세번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웃으며 얘기하던 선생님의 말이 자꾸 귀에 맴돈다. 그렇다. 나는 스스로를 희망고문 하고 있드아...        

어쨌든 오늘은 서랍 속 테스트기를 꺼내는 대신, 세 번 반복해 경험한 인공수정이라는 시술에 대해 정리해보기로 한다.


인공수정 자체는 5분도 걸리지 않는 간단한 시술이지만, 시술 날 반나절 정도는 병원에서 보낸다고 생각해야 한다. 병원에 도착해 먼저 힘을 써야 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 스스로의 정수를 뽑아내는 의식을 수행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공수정 전 과정에서 남편이 하는 일은 이거 하나다. (내 남편은 주사도 놔주고 집안일도 평소보다 많이 했기 때문에 좀 더 기여도를 높이 쳐주고 싶다.) 의식을 마친 남편은 집에 가도 좋다. (물론 혼자 먼저 집에 갔다간 한동안 집에 냉기가 흐를 지도 모른다.) 아내는 초음파로 배란 상황을 체크하고, 남편의 정수가 (이제부터 정액이라고 쓰겠다) 좀 더 수정에 적합해지도록 특수 처리 되는 동안 잠시 기다린다. 기다리다 보면 QR코드가 찍힌 종이 팔찌를 채워준다.


방청권 당첨된거 아니고요, 락페스티발도 아닙니다.


시술을 하기까지 아내와 남편의 이름을 확인하는 과정이 두세 번 더 반복된다. 실수로 정액이 바뀌기라도 한다면 막장드라마가 펼쳐질 테니까! 2차까지는 시술 내내 긴장이 심해서 눈을 감고 있었는데, 3차 때는 두리번두리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모두 힐끔거렸고, 남편의 정액이 담긴 시험관도 처음 봤다. 생각보다 양이 적어 보인다. (응?) 정수의 정수만 모아서 그런 거겠지. 정자 수와 운동성을 기록한 결과지를 받아 확인한다.


남편이 받은 이달의 성적표. 지난달보다 등급이 올랐군요. 애썼습니다.


드디어 시술. 1, 2차 때는 다리에 힘을 빼라고 해도 힘이 빠지지 않아 애먹었는데, 이번엔 힘 빼기에 성공했고, 덕분에 통증도 거의 없었다. 오호. 출발이 좋다.      


정확히 말하면 인공수정이라는 레이스의 출발지점은, 생리 3일차다. 병원에서는 생리 2, 3일차에 방문하라고 안내하는데, 2일차엔 아무래도 혈의 양도 많고 생리통도 심해서, 늘 3일차에 진료를 받았다. 나는 생리주기가 조금 긴 편이라 문제되지 않았지만, 생리주기가 짧은 편이라면 2일차에 진료를 받는 게 안전할 수도 있겠다.


이 때 초음파로 자궁과 난소의 상태를 확인하고, 과배란 약과 주사의 종류, 투여량, 투여 일정을 정한다. 나는 5일 동안 매일 약을 먹고, 1, 3, 5일차에 주사를 맞으라는 처방을 받았다. 처방전엔 과배란 약 말고도 난자를 튼튼하게 해준다는 영양제가 하나 더 추가된다. 비싸고 보험도 안 되지만, 뭘 영양제까지 먹어요, 보름동안 영양제 먹는다고 뭐 얼마나 튼튼해지겠어요, 하고 무시할 수가 없다. 가루약이고 맛이 묘해서 처음엔 먹기가 좀 거북했는데, 세 달 째 먹으니 익숙해져서 레모나 먹는 기분으로 가볍게 털어 넣을 수 있게 됐다.


과배란 약으로는 클로미펜을 썼다. 자궁내막이 얇아지는 부작용이 있어 다른 약을 처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내 경우엔 내막에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지, 세 번 모두 이 약을 썼다. 내막 문제 외에도 참 다양한 부작용이 설명서에 나열돼 있는데, 다른 약에선 본 적 없던 좀 특이한 부작용이 하나 있다. 눈에 섬광이 보일 수 있으니 운전 등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 섬광이 보인다는 게 어떤 걸까, 눈앞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나, 걱정보단 왠지 기대가 더 컸었는데, 아직은 경험을 못해봤다. 다행히, 다른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알약이 작아서 먹기도 편했다.


문제는 주사였다. 첨단공포증까진 아니지만 주사 맞는 걸 유난히 무서워했었는데, (게다가 배에 주사를 맞는 건 처음이잖아!) 매달 몇 차례씩 맞다 보니 이것도 익숙해지더라. 차라리 감기를 앓겠다며 독감 예방접종도 몇 해 째 안 맞았었는데, 임산부는 필수라는 쓰앵님의 말에 지난 늦가을에 독감 접종까지 용감하게 맞아버렸다. 인공수정을 하면서 나는 주사를 무서워하지 않는 어른이, 아이를 위해 주사를 몇 대든 맞을 수 있는 예비엄마가 된 것이다! 늘 주사를 놔줬던 남편은 주사 놓는 게 재밌다,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것 같다, 제 2의 직업으로 간호사는 어떠냐며 발랄하게 굴었지만, 실은 주사 놓는 게 무서웠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애썼어요, 남편.


주사는 매번 상표가 바뀌었다. 어떤 제품은 바늘의 캡만 제거하고 바로 주사하면 됐지만, 다른 제품은 가루가 든 병에 주사기에 든 식염수를 주입해 녹이고, 다시 주사기로 주사액을 옮기는 등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왜 매번 다른 제품을 처방하는지, 성분이 다른 건지 물었더니, 성분에는 차이가 없다고 했다. 단지 지난번에 실패했는데 같은 주사를 또 쓰기가 싫은 마음, 그러니까 징크스 비슷한 거라고 선생님은 설명했다. 호오... 의외의 대답이었다. 조금은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사용법이 간편한 주사를 처방해 주는 편이 더 좋으련만.

    

5일 동안 열심히 약 먹고 주사 맞고 다시 병원에 가서 초음파를 본다. 이 때 난자가 몇 개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주사를 한두 대 더 처방받기도 한다. 2, 3일 후 다시 초음파를 보고, 시술 날짜를 잡고, 난포 터지는 주사를 처방받는다. 이제 시술 날까지 부부관계는 참아야 하고, 남편은 술, 담배, 사우나도 자제해야 한다.  


시술을 받고.


시술 후에는 약이나 주사 대신 질정을 처방받는다.


요렇게, 총알 같은 모양이다. 포장을 벗긴 본체(?)는 양초 같은 질감.

시술 이후엔 임신여부를 확인할 때까진 병원에 갈 일이 없다. (시술 당일 포함 병원을 방문하는 횟수는 총 4~5회였다.)


대신 아침 저녁으로, 되도록 12시간 간격으로 질정을 넣어야 하고, 10분 정도는 (어떤 약사는 10분, 다른 약사는 30분이라 설명) 누워 있는 게 좋다.


조금은 발그래해진 얼굴로 고백하자면, 남편이 있을 땐 질정도 남편이 넣어 주었다. 내가 허리가 긴 건지 팔이 짧은 건지, 어떤 자세로도 충분히 깊이 넣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낮에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넣을 수 있는 만큼 힘껏 밀어넣었지만, 제 위치에 넣지 못한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질정의 성분은 프로게스테론. 나는 질정을 넣는 2주 동안, 시술 전 2주에 비해 피로도가 상당히 높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선생님에게 물어보니 그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한다. 변비도 심해진 것 같고, 뾰루지도 평소보다 많이 나는 것 같았지만, 역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답을 들을 것 같아 묻지 않았다.


육체적인 피로도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심리적인 문제들이었다. 질정을 넣고 잠시 누워 있는 것 자체는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약이나 주사처럼 부작용을 걱정해야 하거나 통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외출 계획을 세울 때 질정 넣을 시간을 염두에 둬야 한다던가(직장인은 회사 화장실에서 넣기도 하고, 누워있는 건 포기하기도 한다더라... 힘내세요 ㅜㅜ), 질정을 넣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릴 까봐 택배를 시키지 못하겠다던가, 질정이 녹고 남은 찌꺼기가 언제 흘러나올지 몰라 종일 팬티라이너를 하고 있어야 하는 불편함은 그야 말로 불편함일 뿐. 하지만. 과배란을 위해 호르몬 치료를 받는 건 그렇다 쳐도, 남들에게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착상 과정을 위해서도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추가 투여해야 한다는 게, 뭐랄까, 자존감이 손상되는 기분이었다. 한 달 내내 외부에서 호르몬을 조절해줘야 하는, 꼭두각시 비슷한 처지가 된 기분. 내가 만들어낸 상념이고, 갖지 않았어도 될 나쁜 감정이다. 1, 2차 때 나를 그리도 힘들게 했던 질정은, 3차가 되자 조금은 가볍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비싼 영양제를 일부러 사먹는 것처럼, 확률을 높이기 위한 일일 뿐이야.


30개의 초를 밝히는 마음으로, 30개의 질정을 사용했답니다.


1, 2차 때와 달라진 점이 또 하나 있다. 예전엔 시술 후 2주 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난임 관련 까페를 들락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게시판의 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나갔고, 몸 상태가 조금만 평소와 달라도 임신 증상이 아닐까 싶어 검색해보곤 했다. 이번엔 내 몸에 대해 조금만 둔감해지기로 했다. 까페 글 읽기도, 검색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초조함과 스트레스가 덜하다. 잘했다. 장하다.


1차, 2차, 3차,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건, 시술 후 2주 중 전반의 1주보다 후반의 1주일 동안 우울감과 불안감이 훨씬 심해진다는 것. 시술 후 2, 3일은 오히려 기분이 가볍기까지 하다. 왠지 이번엔 성공할 것 같아 마음이 들뜬다. 그러다 1주일쯤 지나 기분이 꺾이기 시작하고, 생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짜증과 예민함이 올라오고, 이번에도 실패일 것 같다는 직감이 들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스트레스가 되어 임신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까지 이어진다.  이 패턴이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으로 느껴져 조금은 당황스러웠는데, 며칠 전, 난임 시술을 받은 사람에게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라는 걸 알게 됐다. 시험관 시술의 경우, 이식 후 10일차 정도에 피검사를 통해 임신 여부를 알게 되는데, 이식 후 5일 동안보다 그 후 5일, 그러니까 피검 전 5일 동안의 불안도가 훨씬 높고, 이 때의 불안도는 '방금 암 3기라는 진단을 받은 암환자'의 불안도와 같은 수치라는 것이다.


암 3기라니. 물결처럼 나를 덮쳐오던 불안감은 그렇게나 크고 깊은 것이었구나. 그리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순간 스르르, 불안감의 일부가 녹아 없어지는 것 같았다. 이 시기에는 심각한 불안도를 보인다는 말이, 아이러니하게도 내겐 위안이 된 것이다.


이 불안감은 아마도 결과를 (대개는 실패를) 확인할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데서 오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지긋지긋한 불안감을 안고 사흘을 더 보내기로 했다.


사흘 후면 내게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임신이라는. 또는, 시험관시술이라는. 사흘 동안은 내가 아는 모든 신들에게 기도해 보기로 하자. 제발, 제발,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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