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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Feb 07. 2019

난임부부의 명절, 당신의 선택은?

전은 안부쳤어요. 그래서 전보다 욕을 더 먹었어요.

인터넷으로 살수 있는 모듬전. 얼마나 맛있어 보여요.

시아버지가 맏이가 아니라, 시댁은 차례나 제사를  따로 지내지 않는다. 결혼 후 첫 명절 땐 다같이 큰댁으로 가 차례준비를 도왔지만, 그 후론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 시누이네 네식구만 시댁에 모여 명절음식을 해먹으며 명절을 보내고 있다.


시댁은 집에서 차로 한시간 거리. 장보기와 밑재료 준비는 거의 시어머니가 해놓으신다. 설거지도 시누이나 남편과 번갈아 하는 편이다. 아이가 늦어진다고 재촉하시는 말씀도 거의 없으시다. 다른 며느리들보다는 수월한 명절나기라고 생각한다. 상 차리고 치우고 또 차리고 치우고 대부분 나를 제외한 식구들의 추억 얘기인 끝없는 수다에 지루하지 않은 척 웃는 얼굴로 맞장구 쳐주는 게 내가 하는 일의 전부니까.


단지 이번 설날엔 시댁에서 자는 일은 피했으면 했다. 호르몬 때문에 평소보다 피곤한 건 하루이틀쯤 어떻게든 참아낼 수 있다. 문제는 아침저녁으로 시간 맞춰 질정을 넣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거다. 시댁 식구들에게 아직 난임시술 받는 걸 공유하지 않았고, 방 두 개짜리 집에 여덟식구가 모여있는데 다른사람 모르게 그 처치(?)를 할 수 있을지, 할 수 있다 해도 - 화장실에서 넣고, 피곤해서 잠깐 눕겠다고 양해를 구하나? - 처량한 기분이 들어 울컥한다던가 짜증이 나 표정관리가 안 될 것 같아 걱정이었다. 안 그래도 기분좋게 잘 있다가도 뜬금없이 눈물이 나곤 해 당황스러울 때가 많은 요즘이다.


남편은 힘들 것 같으면 이번엔 자기 혼자 가겠다고 했고, 난 어디가 아파서 불참한다고 거짓말하기보단 이번참에 시술 받는 걸 말씀드릴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몸이 힘든 것보다, 내가 없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의 시술, 그러니까 나의 몸에 대한 얘기를 한다는 게 더 싫었다. 시이모 내외와 그 딸까지 온다고 하니 더더더 싫었다. 발가벗겨진 기분일 것 같았다.


나에게는 다행히, 시어머니가 설 당일 아침 퇴근하시게 되어 - 어머닌 24시간 3교대로 일하신다 - 퇴근하는 어머니를 픽업해 시댁으로 가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스케줄이 정해졌다. 일단 질정 걱정은 끝! 역시 시술 얘기는 나중으로 - 되도록 임신에 성공한 이후로 - 미루고, 하루만 피곤한 내색 숨기고 잘 지내고 오기로 했다.


그런데 연휴 며칠 전,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근무표가 바뀌어 설 전날 퇴근하게 됐으니, 전날 저녁에 왔으면 좋겠다고. 시누이네는 전날 와서 - 시누는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제사도 없어서 명절을 친정에서 보낸다 - 같이 전도 부치고 갈비도 재고 하기로 했다고.


아아안되는데... 복잡해진 머리속에 번뜻, 핑계거리가 하나 떠올랐다. 설날 아침 외할머니께 먼저 세배하고 시댁으로 넘어가겠다는. 친정엄마는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고, 양가 조부모님 중 유일하게 살아계신 분이라, 먼저 세배를 올리겠다는 말이 그럴듯해 보였다. 어머닌 "그럼 너희 편한 대로 하거라." 하셨고, 나는 해맑게도 어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 싶어서 그럼 전날밤은 따님네와 오붓하게 지내시라는 말까지 하고 통화를 마쳤다.


질정은 12시간 간격으로 넣어야 한다. 1, 2시간 차이는 괜찮다지만, 두번의 실패를 겪고 나니 사소한 것에도 예민해진다. 남편이 7시쯤 출발하자기에, 그럼 질정은 늦어도 6시엔 넣어야 하는데, 저녁 6시까지 돌아올 수 있을까 물었더니, 힘들 것 같았나보다. 아침 8시쯤 질정을 넣고 30분만 누워있다가 출발하고, 되도록 밤 9시까지는 돌아오기로 미리 일정을 짰다. 물론 친정에 들렀다 가는 건 무리. 할머니껜 설 다음날 찾아뵙기로 했다. (할머니 미안!)


드디어 명절 당일. 식구들 모여 밥먹는 게 뭐 그리 긴장되는지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겨우 선잠에 들었는데, 알람보다 먼저 울리는 카톡 소리. 남편의 매형이다. 부모님이 우리부부가 전날 밤 안 온 걸 많이 서운해하셨으니 알고 있으란다.

알고 있으라기에 우리한텐 서운한 내색 못하시려나보다, 모른척하고 평소보다 더 살갑게 잘하면 되겠지, 또한번 해맑았던 나.

카톡에 깨자마자 질정을 넣고, 계획보다 서둘러 출발했고, 차안에선 카톡내용에 더 긴장해서인지 평소보다 골반통증이 심해서 고생했고, 도착하자마자 외투만 벗고 상차림을 도우려는데, 어머닌 내 얼굴을 보자마자 마치 벼르고 계셨던 것처럼 "그래도 명절엔 다같이 어울리고 그럴줄도 알아야된다." 하신다.


그러니까요. 다같이 어울리려고 나름은 큰맘먹고 온건데...


모처럼 - 다같이 1박2일 여행 다녀온 게 지난달이긴 하지만 ㅜㅜ - 밤늦게까지 떠들썩하게 명절 기분  내고 싶으셨을텐데 아들네가 빠져서 서운하실수도 있겠다,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싫은 소릴 들으니 - 알고 있으란 말은 경고사격, 예방접종이었구나! - 청개구리처럼, 서운하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하려던 말이 쏙 들어갔다. 그냥 전날에 남편만 보낼걸, 후회해봤자 늦었다. 우리를 기다리느라 평소보다 아침식사가 늦어졌을 식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놓이는 반찬마다 맛있겠다고 호들갑을 떨었고, 같이 못 만들어 미안하단 말도 하려는데, "전 좀 먹어봐라. 너넨 기름 냄새 안 맡아서 더 맛있을 거다." 하시는 바람에 또 사죄의 멘트를 꿀꺽 삼켜버렸다. 애처럼 유치한 마음으로, 전과 갈비는 손도 대지 않고 김치에 떡국만 꾸역꾸역 먹었다.


서운해서, 사과를 바라고 하시는 말씀들일텐데, 나도 서운하고 오기가 나서 사과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더 괘씸하셨을까? 점심 때 이모네가 오셨을 때도 전날 안온걸 또 나무라셨고, '사람 도리는 하고 살아라'는 말까지 나왔을 땐, 나도 (아마도?) 처음으로 어머니께 말대꾸를 했다. 편한 대로 오라고 하셔서 편할 때 온 거라고. 이모는 한국말은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된다며 웃어넘기려 하셨고, 어머니는 요즘은 시부모 무서워하는 며느리 없다고, 며느리가 상전이라며 혀를 차셨다.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나는 시부모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낯설고 어색하긴 했지만, 남편의 부모님이고 내게도 마음을 많이 써주신다 느껴서, 나도 두분께 마음이 많이 갔고, 때론 애틋한 마음까지 들었었다.


그 마음이 순식간에 식는 걸 느꼈다. 자꾸 도리, 도리 하시니, 이제 마음은 드리지 않고 도리만 하겠다고 결심했다. 괜히 보고싶어 전화 드린 적도 있었고, 귀찮아하는 남편 내가 등떠밀어 시부모님 뵈러 갈 때가 더 많았는데, 4년 반 동안 진심으로 노력한 게 하룻밤 사이에 무용지물이 된 것 같았다. 흥, 이젠 다 때려치고 명절이랑 생신만 참석할거야, 굳게 마음먹었다. 


그렇다. 난 시어머니에게 삐지고 말았다.


화제가 바뀌어 이어지는 수다들에 평소만큼 리액션은 못했을 거다. 표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편이라, 얼굴에 불편한 티가 났을 것 같다. 시이모부가 핸드폰에 손주 동영상을 틀어 돌릴 때는 특히 더. 그래도 과일도 열심히 깎고, 어머니 아픈 무릎도 주물러드리고, 남편이 대부분 해치운 설거지의 마무리도 도왔다.


어머니도 내게 삐지신 것 같지만, 설거지해줘서 고맙다고도 하시고, 사골국이다 반찬이다 많이도 챙겨주셨다. 애써 웃는 얼굴로 시댁을 나섰다.


집에 오자마자 질정부터 넣었다. 15시간 만이었다.

남편은 시술 때문에 1박을 못했단 얘길 하고 싶어 몇번이나 입이 근질거렸다고 했다. 사정도 모르고 자꾸 혼내시니 억울했나보다. 말 안하고 참아줘서 고맙다고 웅얼거리고는 바로 기절. 그렇게, 명절이 끝났다.




호르몬 때문인가.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 서운한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그런데 서운한 티, 불편한 티를 잔뜩 내서 괜히 식구들 마음까지 불편하게 만든 것에 대한 미안함도 가시지가 않는다. 시술 얘길 했으면 오지 말고 편히 있으라고 하셨을 분인데, 늘 나를 먼저 배려해주시는 좋은 시어머니였는데, 내가 괜히 어머닐 나쁜 사람으로 만든 것 같다는 자책까지 들었다. (아... 자책은 정말이지 그만하고 싶은데.) 내 진심이 하룻밤 일로 부정당하는 게 억울했듯, 한번 서운한 소릴 하셨다고 해서 어머니가 내게 보여준 좋은 마음들은 까맣게 잊고 원망만 해선 안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부부는 시술 때문에 평소처럼 명절을 보내기가 어려웠고, 고민 끝에 어떤 선택을 했고, 선택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누가 나빴던 게 아니고, 내 선택이 나빴던 것 같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다음에 어머니를 뵈면, 일단 어머니 마음부터 풀어드리고, 마음 터놓고 그날 일을 얘기하고 싶은데... 중요한 걸 숨긴 채 마음을 터놓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명절을 앞두고, 그리고 김장철에, 난임 관련 게시판엔 비슷한 고민들이 여럿 올라온다. 시술 받고 안정해야 하는 시기인데, 시댁에 가야 할까요. 아기가 제일 중요하니 가지 말라는 댓글들도 있지만, 안 가고 마음 불편하게 있느니 다녀오라는 댓글이 더 많다. 난 다음 명절에는 어떡해야 하나,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물론 그 전에 아이가 생기면 제일 좋겠지만...)


다음엔 티안내고 가족들의 즐거운 명절을 위해 노력봉사해서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개운하게 마무리하던가, 아프거나 일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불참, 욕은 먹을지언정 몸이라도 편히 쉬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될 것 같다. 이번엔 몸도 마음도 불편한 최악의 명절이었으니.


시술을 시댁에 알리고 배려를 받는다는 건, 아직은 내 선택지에 없다. 괜한 고집으로 나 자신을 괴롭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시술이든 시댁이든, 시짜로 시작하는 건 참,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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