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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Apr 13. 2019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말똥아. 개똥아. 소똥아.

산산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사람이여!

사랑하던...


교과서에서 봤던 시의 제목, <초혼> 장례의 절차  하나라는  나중에야 알았고,  행위를 직접  것은 20대의 끝자락이었다. 

 손으로 직접 뽑았던  대통령, 너무도 허망하게 떠난 그분의 노제에 참석했을 ,  소복을 입은 사람이 크레인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 외쳤었다. 그의 이름을. 그리고 . . . 떠나보내면서도 돌아와 달라 외치 간절한 마음을. 허공을 가르는 떨리는 목소리에, 나는 조금 울었던  같다.




주말 아침, 남편과 각자의 고정석에 늘어져 <동물농장> 보는데, 조랑 훈련장에 사는 웰시코기 이야기가 나왔다. 말똥이라는 이름이  귀여웠다. 말똥이  이름은 개똥이. 


"이번엔 말똥이로 할까? 쌍둥이일 수도 있으니까 말똥이랑 개똥이."

남편에게 묻는다.

", 좋다! 그런 이름으로 불러야 귀신이  잡아간대."

남편이 답한다.


시술을 시작하고 우리 부부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기의 태명을 지어보는 취미 같은 것이 생겼다.

홍삼을 열심히 챙겨먹은 달엔 홍삼이,  종류가 많이 땡겼던 달엔 새콤이 달콤이. 


이번 달에  시험관 시술을 받으며  개의 배아를 이식받았다. 이제  세포분열을 시작한 배아들의 초음파사진을 받아들고 우리는, 말똥이, 개똥이, 소똥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정말 세쌍둥이가 태어나면 어쩌지? 호들갑을 떨면서. 나의 세포와 남편의 세포가 만나 하나가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첫경험. 감동이었는데...


이름이 너무 별로였니. 엄마 뱃속이라고 믿기엔 너무 좁고 차가웠니. 등급이 낮다는 말에 괜히 배아들이 못생겨보였던, 미덥지 못했던  마음을 알아버렸니.

 

 개의 배아  하나도   속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장난스레 이름을 지어보긴 했지만, 부정이라도 탈까봐 마음껏 불러보지도 못했단다. 힘내.  붙어있어. 놀랐니? 그냥 방지턱이야. 좋은 것만 먹을게. 좋은 생각만 할게. 나중에 내가 정말 잘해줄게. 그러니 제발... 마음속으로만 수많은 말들을 건넸었다.


시인처럼 나도 사랑한단    제대로 못해보고 이별을 맞았다. 아니. 세포분열을 하다   개의 배아는 아직  뱃속에 있다. 며칠이 지나면 피와 함께 쏟아져나오겠지. 입도, 뇌도 심장도 없는, 0.2mm, 맨눈으로 보면 아주 작은 점처럼 보일 배아들이지만. 우주를 떠도는 위성처럼   안을 떠다니고 있을, 죽은 배아들이 너무 가련하다. 제대로 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건강한 세포를 내어주지 못해, 며칠을 몸부림치며 조금이라도 자라나보려다 그만 멈춰야만 했을 너희들에게, 정말 많이 미안하다. 이제 애쓰지 말고 잠들어도 . 


다음엔   따뜻하고 넓은 품으로 안아줄  있게 열심히 준비할게. 다시 나한테 와줄래. 그땐 떠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고 .


말똥아. 개똥아. 소똥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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