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을 앞두고 자꾸만 쪼그라드는 이 마음
난임병원에서 지원하는 집단상담, 그 첫번째 시간.
상담사는 '왜 이 힘든 길을 걷고 있는지(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그냥 포기할 수도 있었을텐데 왜 난임시술을 받게 됐는지)'를 물었고, 대부분의 내담자들이 그 이유로 '행복'을 꼽았다. 행복해지고 싶어서라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한 내담자의 답은 조금 결이 달랐다.
"남편을 아빠로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 말을 할 때 그의 눈에 가득 차올랐던 따뜻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남편을 정말 사랑하는구나.', 괜히 내 마음이 찡해졌었다.
나는 '우리 둘을 반반 닮은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만 해봤지, '아빠가 된 남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나도 그렇지만, 남편도 특별히 아기를 귀여워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남편은 길을 걷다가도 유모차를 탄 아기보다는 총총거리며 산책하는 강아지에게 더 시선을 빼앗기는 타입이다.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나의 아버지다.
작은 가게를 하고 있는 아빠는 아기 손님만 들어오면 자동으로, 주름이 두 배로 늘어날 정도로 활짝 웃는다.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사탕이라도 하나 손에 쥐어 보내야 한다. 결혼 전엔 그런 아빠의 다정함을 사랑하기만 하면 됐는데, 이젠 짠하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손주가 생기면 정말 예뻐해주실 텐데. 우리 아빠는 할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첫 시험관 시술, 채취를 앞두고 대기실 침대에 누워있을 때, 아기를 낳은 후의 생활을 처음으로 머릿속에 그려봤었다. 집안 전체에 퍼져있는 아기 특유의 냄새, 내 품에 안겨 있는 작고 따뜻한 아이, 팔이 저려와 조금씩 자세를 바꾸면서도 아이를 쉬이 내려놓지 못하는 나, 지쳐서 퇴근했으면서도 아기부터 찾는, 아기 얼굴을 보는 순간 눈빛도 낯빛도 반짝반짝해질 남편... 그리고, 손님 아기를 대할 때보다 백 배는 더 행복한 표정으로 나의 아기를 얼르고 있는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빠는 내게 손주 소식을 재촉한 적이 없지만, 그렇다고 기대가 없을 리 없다. 어쩌면 딸이 결혼하는 순간부터 엄마가 된 딸을, 할아버지가 된 자신을 그려보았을지도 모른다. 오빠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평생을 독신으로 살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덜컥, 나보다도 먼저 아기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지만.) 나도 올해 안에 생기지 않으면 아기 갖는 걸 포기하게 될 것 같다.
그럼 아이들에게 얼굴 한 번 찌푸린 적 없는 다정한 아빠였고 70이 넘어서까지 가족을 위해 하루종일 일하고 있는 이 남자는, 끝내 어린 손주가 부르는 '할아버지' 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아빠의 형제들과 친구들은 때가 되면 별 어려움 없이 할아버지가 되고 할머니가 됐던 것 같은데. 물론 아빠는 태어나지도 않은 손주보다는 딸의 건강과 행복만을 바라겠지만. 내가 너무나 보고 싶단 말이다. 할아버지가 된 아빠의 모습을. (어째 할머니가 된 엄마의 모습은 그려보고 싶지 않다. 엄마는 그저 영원히 엄마였으면 좋겠나보다.)
TV에서, 시아버지 생신날 선물이라며 아기 초음파 사진을 내놓는 며느리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아기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연이 이어져서 출연자도 울고 나도 울었었지만.) 부모님이나 시부모님의 생신이 다가오면 그 장면이 떠오르고, 나도 그런 귀한 선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설렘 반 초조함 반으로 마음 속이 어지럽다. 작년, 아빠 칠순 생신 땐 정말이지 손주라는 선물을 꼭 해드리고 싶었는데... 아빠는 이런 내 마음을 모르겠지? 몰랐으면 좋겠다. 내가 미안해하고, 그래서 속상해하는 걸 알면, 나보다 더 속상하실 테니까.
이제 곧 어버이날이어서, 토요일엔 친정, 일요일엔 시가 식구들 모여 밥을 먹기로 했다. 시술을 쉬고 있는 중이라 '혹시' 하는 희망고문도 없는 상태다. 초음파사진 대신 용돈봉투를 준비한다. 시조카들에게 줄 어린이날 선물도 미리 사두었다. 지금 이 상태로도 우리는 그럭저럭 행복한 가족이다. 그걸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