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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n 17. 2019

블랙미러 시즌5, 세 편 중 딱 한 편만 본다면

중요한 건  소재가 아니라 이야기다

한 자리에 앉아서 세 편을 내리 보았다. 

1회 스트라이킹 바이퍼스, 3회 레이철 잭 애슐리 투, 2회 스미더린 순으로.

2회를 마지막으로 본 건, 흥미를 끄는 신기술도 등장하지 않는 것 같고, 소셜미디어 이야기에도 범죄물에도 별로 끌리지 않아서였다. 1회는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신선하게 봤던 미래의 게임을 여기선 어떻게 구현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컸고 (알함브라는 AR, 스트라이킹 바이퍼스는 VR이지만) 3회는 마일리 사이러스라는 캐릭터가 주는 재미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세 편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에피소드는, 별 기대 없이 봤던 2회, 스미더린이다.

스미더린의 배경은 미래가 아니다. (자막으로 2018년 런던이 배경이라 명시한다.)

우리가 아직 접해보지 못한 기술이나 아이템도 등장하지 않는다. 

지극히 현재적인 상황에서의 비극을 그리고 있어, 더 서늘한 느낌을 주는 드라마다. 


스미더린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의 이름이다.

택시기사인 크리스토퍼는 스미더린 회사 건물 앞에 대기하며, 그 회사 직원인 것 같은 사람들의 콜만 받는다.

항상 명상 오디오파일을 듣고, 가족을 잃은 이들을 위한 자조모임에도 참가하는 그는 아주 힘든 일을 겪었고, 아직 회복되지 못한 듯하다. 

드디어 스미더린의 중요한 직원인 것으로 보이는 손님, 제이든을 태운 크리스토퍼는, 순식간에 인질범으로 돌변한다. 제이든은 일개 인턴일 뿐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크리스토퍼의 목적은 오직, 스미더린 본사 사장인 빌리 바우어와 통화하는 것 뿐이다. 

극의 대부분이 좁은 차 안에서, 두 명의 배우에 의지해 진행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크리스토퍼는 빌리 바우어에게, 혹은 스미더린에게 어떤 악감정이 있어 이런 일까지 벌인 걸까. 

그 이유는 극의 후반부에야 밝혀지지만, 이유를 알기 전에도 시청자들은 스미더린에 대한 반감을 갖게 된다. 

크리스토퍼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서이기도 하고, 사건을 다루는 회사의 태도가 맘에 안 들고, 인질극 현장의 구경꾼들이 상황을 SNS에 올리며 쏟아지는 관심에 즐거워하는 모습이 징그러워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구경꾼들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밖에서는 회사나 권력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안으로는 오래된 인습과 가부장제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우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24시간을 지배하는 미디어의 힘과 구속력과 악영향에 대해서는 무감한 듯 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와서, 스몸비가 되어가는 우리를 자주 깨워주었으면 좋겠다. 


주인공을 맡은 앤드류 스캇의 연기가 참 좋았다. 

전체적인 구성도 훌륭했다. 

1회는 어쩐지 이야기를 하다 만 느낌이었고, 3회는 너무 뻔하게만 흘러가 실망스러웠는데, 

스미더린은 같은 작가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역시, 눈길을 끄는 소재보다는, 이야기 자체의 힘이 더 중요하다는 걸, 세 편의 이야기를 보며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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