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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an 12. 2019

8. 혼자 하는 드라마 공부(1) - 작법서와 작품분석

작법서를 교과서로, 남의 드라마를 참고서로

교육원을 2년이나 다니면 드라마 쓰기의 ‘이론’ 면에선 빠삭해질 거라 기대할지 모르겠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

앞의 글에서 자세히 소개했지만, 교육원은 주로 대본을 써보고 읽어보는 ‘실기’ 훈련을 하는 곳이다. 한 편 두 편 습작이 쌓일수록 막연하게 대본이 좋아지는 것 같긴 한데, 그야 말로 막연하다.

요리도 많이 해볼수록 늘게 마련이지만, 기본적인 칼질이나 재료손질법부터 알려주는 요리책 한 권을 보고 나면, 만들 수 있는 음식 가짓수도 늘고 영양이나 맛의 수준도 확 올라간다. 차근차근 따라하면 멋진 파티 음식도 만들 수 있는 요리책처럼, 열심히 읽고 따라가면 더 좋은 대본을 쓸 수 있게 해줄 드라마 비법서, 아니, 작법서가 간절해진다.     


아쉽지만 드라마작가 지망생을 위한 작법서는 많지 않다. 내가 교육원에 다니던 때는 2005년 출간된 [드라마 아카데미] 등 한두 권에 불과했다. 대신 선생님이나 동료 지망생들에게 추천받은 시나리오 작법서로 공부했다.      

시나리오 작법서 계의 고전으로 로버트 맥기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가 있다.

말하자면 [수학의 정석] 같은 책인데, 안타까운 건 정석 ‘기본 편’이 아니라 ‘심화 편’에 가까운 책이라는 거다. 초보 지망생이 한 번 읽고 100% 소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같은 페이지, 같은 줄에서 한참을 헤매다 잠들어 버린 적도 여러 번이다. 하지만 연차가 어느 정도 쌓인 후에 다시 들춰봤을 땐, 전엔 왜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무릎을 탁 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사랑 받은 책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전을 좋아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도 추천한다.

농담이 아니다. ‘모든 비극은 처음, 중간, 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문장을 읽으면, 이게 무슨 ‘사람은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다’ 같은 당연한 소린가 싶어 황당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을 오래 쓸수록 처음을 처음답게, 중간을 중간답게, 끝을 끝에 어울리게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된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고 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달까. 개인적으로는 읽는 재미도 있었다.     


[수학의 정석] ‘기본 편’에 가까운 책으로는 사이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가 있었다. 한국 영화들을 사례로 들어 설명해주는 점이 좋았던 심산의 [한국형 시나리오 쓰기]도 많이들 읽었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은 눈에 띄는 곳에 꽂아두고 자주 들쳐봤던 책이다. 아이템을 잡을 때도, 잡은 아이템을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할 때에도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서점에 가 보면 시나리오나 소설 작법서는 넘쳐흐른다. 여러 권 읽어 보고, 자기에게 맞는 책은 한두 권쯤 사서 책장에 꽂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길 권한다. 부끄럽지만 나만의 ‘작법서 활용법’을 하나 소개한다. 슬럼프에 빠져 대본 쓸 에너지도 없고 남의 드라마도 보기 싫어졌을 때, ‘오늘 하루도 공쳤다’는 느낌으로 잠들기 싫어 꾸역꾸역 작법서만 읽었던 날들이 있었다. 체력도 집중력도 바닥을 쳤을 때니 공부가 제대로 됐을 리 없지만,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다음에는 더 좋은 대본을 쓰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그게 스스로에게 작은 위로가 됐었다. 여러분은 더 좋은 활용법들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     


책은 아닌데, 드라마작가가 하는 강연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가보기를 권한다.

교육원에서는 매년 그 해 가장 핫했던 드라마작가 두 명을 초청해 공개특강을 열었었다. (2016년 김은희, 정현정 작가, 2015년 정윤정, 정성주 작가, 2014년 정현민, 유현미 작가... 그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작가들 아닌가!) 나는 교육원을 수료한 뒤에도 몇 번이나 이 특강에 참석했는데, 오래 묵은 망생이가 데뷔도 못하고 특강이나 기웃거린다는 게 없어 보일 것 같아 망설였지만, 몇 년차 지망생이라고 써 붙이고 다닐 것도 아니고, 게으르게 늘어져 있던 내게 특강이 항상 좋은 자극이 됐기 때문이다. 재원생 위주의 특강이라 수료생과 일반인은 따로 참석 신청 메일을 보내야 했고 선착순으로 선정됐는데, 교육원 홈페이지를 보니 2016년을 마지막으로 그 이후엔 특강이 없어진 것 같아 아쉽다. 


닮고 싶은 작가가 있다면 그가 쓴 책이나 인터뷰라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드라마를 쓰는 비법 같은 건 듣기 힘들 것이다. 떡볶이 양념 같은 영업 비밀은 남한테 알려주는 게 아니기도 하고, 알려주고 싶어도 간단히 말로 설명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드라마를 대하는 태도, 아이템을 찾는 눈, 슬럼프를 극복하는 그만의 방법 같은 것은 조금이라도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스타 작가는 밤하늘의 별처럼 멀어 보이지만, 가장 가까운 선생님이 되어줄 수도 있다.     


각자 닮고 싶은 작가가 있듯, ‘저런 드라마 나도 한 번 써보고 싶다’ 싶은 작품들이 있을 거다.

그럼 그 작품을 그냥 재밌게만 봐서는 안 된다. 부러워만 해서도 안 된다.

방영되는 드라마를 보고 나름대로 분석해 보는 건 드라마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좋은 요리사가 되기 위해 유명한 식당들을 일부러 찾아가 맛을 보듯, 남의 드라마를 많이 봐야 자기 드라마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방영되는 드라마를 다 챙겨보다간 글 한 줄 못 쓰고 하루가 지나갈 거다. 미드, 일드, 영드, 중드까지 다 챙겨본다는 사람은 자기 드라마 쓰는 건 포기하고 드라마 애호가로 남는 게 나을 것 같다. 


반대로, ‘난 우리나라 드라마 안 봐. 수준 낮아. 재미없어.’ 같은 태도도 곤란하다. 


시청률이나 화제성이 높은 드라마에는 이유가 있다. 클리셰를 비튼 설정이 신선하다던가, 유치하지만 내밀한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거나, 개연성은 좀 떨어져도 사건이 끊임없이 터져 눈을 뗄 수 없다거나. 성공 비결을 찾는 것이 공부고, 그걸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시청자의 관심을 못 끌고 조용히 사라지는 드라마도, 살벌한 편성 경쟁을 이겨내고 이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당신의 대본보다 나은 점, 배울 점이 분명히 있다. 특히 1, 2회 정도는 챙겨보는 게 좋은데, 다른 회차보다 긴 시간 공을 들여 쓰는 대본이기도 하고, 16회라는 대장정을 이끌어갈 ‘판’을 어떻게 짰는지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본을 찾아서 읽을 수 있으면 또 다른 공부가 된다.

저런 그림을 원하면 이런 지문을 써야 하는구나, 이렇게 쓴 대사는 저렇게 밖에 표현이 안 되는구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배울 수 있는 게 특히 많다.

예전엔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에서 대본을 다운받을 수도 있었고, 지망생 까페에 대본들이 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지금은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서인지 방영 중인 드라마 대본을 찾기 쉽지 않다. 다행히 요즘은 어느 정도 인기 있었던 드라마들은 종영 후 대본집이 출간되는 추세인 것 같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대본집이 있다면 한 권 사두자. 두고두고 공부할 수 있다.  


나는 대본보다는 영상을 보며 공부하는 편이 더 재미있다.

완성된 집을 보며 설계도를 그려보는 것처럼, 완성된 드라마를 보며 이 작가는 어떤 뼈대에서 시작해 어떤 살집들을 붙였을지 거꾸로 상상해 보는 것이다.

VOD나 다운받은 파일로 보면 필요할 때 멈추거나 돌려볼 수 있어 편리하다.

대본이나 영상을 그대로 따라 적는 ‘필사’를 공부법으로 삼는 지망생들도 많은데, 부지런하지 못한 나는 필사까지는 못하고, 70분짜리 드라마면 대여섯 개의 큰 덩어리로 뜯어보는 내 나름대로의 분석법이 있다.


다음 글에서는 장안의 화제인 드라마 한 편의 어제 방영한 회차를 함께 뜯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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