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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an 12. 2019

9. 혼자하는 드라마공부(2) <스카이캐슬>15회 분석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내 것 만들기

드라마 한 편을 여러 번 돌려볼 수 있다면, 우선 처음 볼 때는 펜을 내려놓고 그저 ‘재미있게’ 본다. 보고 나서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해 본다.     


어제 방영된 <스카이캐슬> 15회의 내용을 한 줄로 줄이자면,

“혜나의 죽음과 캐슬에 불어 닥친 후폭풍” 정도가 될 것 같다.  


전체적인 시청 소감도 정리해 보자. 


‘죽음’이라는 사건은 (인물들이 너무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소위 ‘막장’ 드라마들처럼) 쉽게 소비되지 않았고, 충분히 슬프게, 또 충격적으로 그려졌다. 굵직한 사건이 발생했으니, 이게 각 주요 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리는 것만으로 한 회를 충분히 채울 수 있었다. ‘후폭풍’이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마치 추리소설의 클라이맥스를 보듯 긴박하게 몰아붙이는 전개가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통째로 재미있게 보고 난 다음엔, 다시 한 번 보며 (이 때는 시간을 체크하면서 보면 더 좋다) 식빵 뜯듯 큰 덩어리로 뜯어본다. 자세히 찾아보면 결대로 잘 찢을 수 있을 거다. 70분을 채우려면 여러 개의 요소들, 사건이나 감정, 관계의 변화 같은 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미니시리즈 전체 스토리에도, 회별 스토리에도 기승전결이 필요하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이제부터 <스카이캐슬> 15회를 몇 개의 덩어리로 나눠보고, 각각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이름 붙일 수 있는지 살펴보자.     


이전 회에서도 추락한 혜나의 모습이 보여졌지만, 15회의 전반 10분 정도는 혜나 추락 이전의 상황들을 다시 보여준다. 이 게 첫 번째 덩어리, ‘발단’이다. 우주의 생일파티와, 혼자 참석하지 않은 한서진의 동선이 두 갈래로 나뉘어 교차된다. 발단에는 이 회의 결말, 아니 다음 회차까지 이어지는 ‘단서’들이 몇 가지 뿌려져 있다. 진진희는 예서와 혜나가 다투는 걸 보고 출생의 비밀을 알았고, 이걸 얘기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상태다. 예서는 김주영쌤과 통화하면서 혜나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김주영은 한서진과의 약속에 늦는다.  


이후 10분 동안은 병원에 도착했지만 외면당하고 죽음을 맞는 혜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강준상은 병원장 손자의 수술이 더 급하다며 혜나를 전원시키라 하고, 황치영은 그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다. 복도에서 마주친 강준상을 보고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아빠’를 부르는 혜나의 얼굴은 너무나 처연해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리고 급작스럽게, 시트로 얼굴을 덮은 혜나의 침대가 등장한다. 추락 후에도 의식이 살아있는 걸 보고 혜나가 죽지는 않으리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뒤통수를 맞는다. 강준상도, 황치영도, 끝까지 이 애가 당신 딸이라고 말해주지 않은 한서진에게도 (강준상이 혜나가 자기 딸인 걸 정말 몰랐느냐는 아직 아리송하지만) 혜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 한 회를 시작하는 사건이 여기서 마무리되므로 이 덩어리는 ‘발단2’라고 이름 붙여 보겠다.

발단2의 끝에서 단서 하나가 더 주어진다. 우주가 죽은 혜나를 보고 오열하느라, 구급대원에게서 받아뒀던 혜나의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이걸 한서진이 줍는다. 결말까지 가면 이 장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다음 10분은 예서를 단속하고 혜나 방 물건들을 급히 치우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는 한서진의 동선을 따라간다. ‘전개1’이라고 해두자. 


그 다음 10분은 세 명의 용의자를 훑어나가는 시간이다. 쌍둥이는 너무 침착한 예서를 의심하고, 차민혁은 세리가 혜나랑 싸웠었다는 얘기를 듣고 사기꾼인 네가 가장 의심 받을 거라며 흥분한다. 여기서 게임을 하다 말다툼을 하는 세리와 혜나의 과거 장면이 삽입된다. 한서진은 예서를 조사하러 온 형사들에게 세리가 혜나와 싸웠다는 얘기를 전하고, 세리네에선 우주도 혜나랑 싸웠다는 얘기가 나온다. 최초목격자인 우주는 형사들의 주목을 받는다. 여기까지가 ‘전개2’다.     


이제 러닝타임은 40분을 넘어섰다. 이때까지는 길어야 1분인 짧은 씬들로 속도감 있게 달려왔었는데, 이어서는 7분 정도의, 이번 회에서 가장 긴 씬이 등장한다. 대책회의라도 하듯 단정한 모습으로 모인 부모들이 신경전을 벌이다 막말에 육탄전까지 이어지는 다이내믹한 씬이다. 다소 연극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이 씬은 이번 회의 압권이었다고 생각한다. 클라이맥스처럼 보이지만, 이 부분은 ‘전개3’이라고 이름 붙이겠다. 전개3의 마지막 부분에서 ‘위기’가 시작된다. 진진희가 혜나와 예서의 싸움을 봤다고 말하는 순간, 한서진의 머리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5분 정도는 한서진이 진진희의 입을 막는 처절한 읍소의 시간으로 할애된다. ‘위기’다.     


이어서 5분은 이 상황에서도 ‘대학, 대학’ 하는 차민혁과 그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세리의 모습이 그려진다. 전체 흐름에서는 약간 벗어나는 스토리지만, 잠깐 시청자의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드라마 전체의 주제의식이 언급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덩어리에는 그 역할을 따라 '환기'라는 이름을 붙여 보겠다.     


‘절정’은 예서를 둘러싼 한서진과 김주영의 전쟁처럼 보인다. 혜나가 죽은 뒤 악몽에 시달리는 예서는 엄마가 아닌 김주영쌤에게 의지한다. 한서진이 김주영을 찾아갔을 때, 김주영은 예서가 범인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 한서진을 미치게 한다. ‘혜나를 죽이고 싶다’는 예서의 목소리가 담긴 통화 녹음까지 들려주면서. 예서를 용의선상에서 떨어뜨려 놓을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김주영의 말에, 한서진의 눈은 광기로 번뜩인다. 이 덩어리에서도 후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는 씬이 하나 흘려져 있다. 한서진이 혜나 방을 청소하며 너무나 홀가분한 표정을 짓고, 이걸 본 가사도우미가 마뜩찮은 표정을 짓는 장면이다.     


‘결말’은 딱 한 씬이다. 우주가 체포되고, 이를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는 한서진이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내가 뜯어본 <스카이캐슬> 15회의 설계도는 아래와 같다.     


혜나의 추락 (발단1) - 혜나의 죽음 (발단2) - 한서진의 수습 (전개1) - 세 명의 용의자 (전개2) - 부모들의 대책회의 (전개3) - 진진희의 입을 막는 한서진 (위기1) - 차민혁과 세리 이야기 (환기) - 예서가 범인일 수도 있으며, 희생양을 찾아야 한다는 김주영 (절정) - (희생양으로 지목됐을) 우주의 체포 (결말)    


이런 방식으로 드라마를 정리해보는 훈련이 내게는 꽤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미니시리즈 한 작품 전체를 이런 식으로 공부한다면, 자기 드라마를 기획할 때 좋은 참고서가 될 거라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는 드라마를 보며 설계도를 상상해보는 것을 넘어, 설계도가 드라마로 완성되는 과정을 직접 보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 ‘보조작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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