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넘어설 수 없는 거리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말》 내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by 엘리킴


창문을 열면
건너편 창문이 보인다.
빨래가 마르고
아이들 목소리가 흐른다.


그 집의 밥 냄새는
내 기억과 조금 다르고,
그 집의 웃음소리는
내 말보다 반 박자 빠르다.


인사말은 짧다.
눈빛은 길다.
서로를 마주치지 않으려
먼저 피하는 건
대개 나다.


거리라는 건
발로만 재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여기서 배웠다.
같은 층, 같은 복도,
같은 날 아침을 맞아도
나는 어제와 다른 시간에
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문 앞에 신발을 가지런히 놓지 않는다.
그것조차 눈에 띌까봐.
달라 보일까봐.
보이지 않게 되기 위해
조심해야 하는 것들이 생겼다.


가끔,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말투가 들려오면
나는 그제야 말을 놓는다.
그러면 또다시 그리워진다.
그곳에서 잃은 것들이 아니라
이곳에서 얻지 못한 것들이.


누군가 말했었다.
가장 힘든 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감정이라고.
나는 오늘도 그 감정을
이웃의 문소리 사이로
조용히 숨긴다.










from. 탈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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