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사랑이 끝나고,
기억이 끝나고,
슬픔이 끝나고 나면
그다음엔
무엇이 올까.
긴 겨울처럼
텅 빈 시간 속에서
나는
아무 이름도 갖지 못한 채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지.
누구의 연인도 아니고
누구의 추억도 아닌
오직 나로만 남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
하지만
천천히, 아주 느리게
하루씩 나를 다시 불러봤어.
울지 않고 거울을 보는 날,
텅 빈 방에서 커튼을 걷는 날,
아무 일도 없지만
괜찮다고 느끼는 날.
그런 날들이 쌓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 이름으로 다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알겠더라.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이해받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 이름.
그게 바로
나였어.
이제 나는
누군가의 시선이 아니라
내 마음의 기준으로 살아.
사랑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을 거야.
이별이 와도
내가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나는
나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아본다.
어쩌면 처음으로.
어쩌면, 가장 온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