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停電)된 오후

1부 - 부정: 아무 일도 없었다는 날의 바람

by 엘리킴


그날은 유난히 조용한 오후였다.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전화도 울리지 않았고,
냉장고는 돌아가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전기가 나갔다고 생각했다.
여름의 과부하거나
누군가 공사를 실수한 탓이라고.


그 사람의 자리는
비어 있었지만
나는 앉은 자세 그대로
물도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침묵을
전력 공급의 문제로 여겼다.


시계는 여섯 시 오 분에 멈춰 있었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들어왔지만
커튼은 흔들리지 않았다.
커피는 미지근했고
햇빛은 방 안까지 들어오지 못했다.


나는 불편함을 느꼈고,
그 불편함이
"이상하다"는 감정보다는
"귀찮다"는 감정에 가까웠다.


한 번쯤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가 없는 세계를 상상하지 않았고
그 이름을 입에 올릴 이유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게 그대로인 듯.
단지, 정전이었을 뿐이라고.
조금 기다리면
불이 켜지고
시계가 다시 움직이며
그 사람이
“왜 이렇게 더워?”
라고 말하며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햇빛이 천천히 식었다.
그때 나는
냉장고 속 음식들이
상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늦게서야
한 칸,
또 한 칸
두려움을 눌러 담았다.


나는 정전이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빛이 꺼진 건
벽 속 전선 때문이 아니었다.


온 방이
그 사람 없이도 그대로일 수 있다는 사실.
그걸 받아들이는 건,
어쩌면
빛보다 더 큰 상실이었다.


내가 앉아 있던 그 오후,
모든 건 그대로였고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단지,
전기가 끊긴 줄 알았다.
모든 게 다시 켜질 거라고.
조금만 기다리면
모든 게 돌아올 거라고.






고백: “나는 아직도, 그날의 침묵을 전기 탓으로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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