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치타 출산하다
어미인 너는 나보다 어른인가 보다
늦은 저녁 치타와 젖소에게 먹이를 주러 나갔다.
조금 더 좋은 사료를 주려고 가수분해 사료로 바꿨었는데 젖소의 항문에 염증이 생기고 피가 나서 심해질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습식 캔으로 급하게 바꾸었다. 역시 너무 좋아한다.
치타의 항문도 살피느라 스프레이로 물을 분사했는데, 자극이 되었는지 아니면 이전부터 기미가 있었는지 치타가 이슬을 비췄다.
젖소가 냄새를 맡고 가까이 다가오자 으르렁 거린다.
배가 지난번 임신 때 보다 더 부풀었다. 새끼가 몇 마리인지 너무 궁금하기도 했는데, 요즘엔 오리처럼 뒤뚱거렸다. 다리가 길어서 치타였는데, 꼬리가 짧으니 요즘엔 영락없이 토끼다.
치타가 곧 출산할 것 같아서 겁이 더럭 났다.
사실 아무 준비도 못해놨다.
얼마 전 상가 캣맘 분이 봄맞이용 고양이 집을 치웠다고 연락이 왔다.(캣맘끼리도 이유가 틀어지면 이리된다.) 이후로 눈치를 보느라 아무것도 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 길고양이 습성상 사람의 인기척이 없는 곳에 출산을 할 것이기 때문에 도움을 주려는 나의 의도가 치타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계속되는 출산과 새끼를 잃는 모습을 반복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다.
놀란 가슴을 뒤로하고 급하게 치타를 품에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만삭이라 뛰어내리지도 못하는 모습에, 내가 꼭 보쌈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전 날까지 츄르와 습식 캔으로 유혹해서 집으로 들어오게 하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항상 마지막 계단에서 돌아가곤 했다.
이제 더 이상 치타에게 자유의지를 줄 수가 없다.
평소 같았으면 내가 안아도 어떻게든 발버둥 쳐 땅으로 뛰어내렸을 텐데, 이번에는 출산 기미가 있기 때문에 강하게 저항하지 못했다.
집에 들어온 이후로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로 불안하고 불만인 게 느껴졌다.
다행히 많이 울지는 않고 침대 밑에 들어가 숨었다.
그래도 먹이는 잘 먹는다.
다행이다.
사다 놓은 캔과 츄르를 전시해 놓고 여기 살면 얼마나 맛있는 걸 많이 먹을 수 있는지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루 종일 침대 밑에만 있었는지 창문에 올라갈 수 있게 상자를 놓았는데, 회사에 다녀와서 확인해 보니 돌아다닌 흔적이 없다.
그나마 화장실은 잘 다녀왔다 보다.
다음 날 하필 팀 회식이 있어서 집에 도착하니 11시다.
치타가 반갑게 맞는다.
이슬이 비췬 상태에서 오래되면 안 좋다는데,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고양이 출산용으로 사용할 (봄맞이용) 종이 박스를 가져왔다.
들어가서 진통이 오는지 마구 빙빙 돌았다.
박스가 가벼워서 이리저리 요동쳤다.
안정감을 못 느꼈는지 자리를 옮겨 방안 모서리 구석으로 가서 첫째를 낳았다. 나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이다.
새끼가 탯줄에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치타가 탯줄을 끊으려고 했는지 빙빙 도니 새끼가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너무 놀라고 걱정이 되었다. 배가 나와서 이가 탯줄에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부딪힌 충격 때문에 탯줄이 끊어진 것인지, 조용하다. 이내 할짝할짝 핥는 소리가 난다.
조심스레 다가가니 또 자리를 옮긴다.
내가 보는 걸 원하지 않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침대 밑이다.
내가 관여하는 걸 원하지 않으니 불을 끄고 응원만 했다.
그래도 궁금해서 녹음을 했다.
첫째 새끼의 울음소리에 이어 10여분 후에 둘째 새끼의 울음소리, 그리고 셋째는 간격이 좀 멀고 울음소리가 약했다. 그리고 이어 넷째가 나왔다.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혼자서 어미의 역할을 다하고 건강하게 낳은 것 같아 안심도 되고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어떤 소리가 나는지 귀를 기울일 뿐이다.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일찍 일어나 습식 캔을 줬더니 배가 고팠는지 잘 먹는다. 그리고 아침에 절반 정도 주고 정오에 절반 오후 3시경에 절반, 저녁에 또 줬다.
배가 고팠는지 주는 대로 잘 먹는다. 잘 먹는 걸 보니 치타의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쉬지 않고 모유를 먹이며 내가 새끼들을 만지거나 볼까 봐 품 안에 안고 안 보여 준다.
엄청 궁금하고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오늘만 날이 아니니 차분히 기다려 보기로 한다.
치타 장하다. 우리 앞으로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