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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Apr 24. 2023

파양 되어 돌아온 나나와 미미

자 분(남성)이 이사를 해야 되는데, '도저히 고양이들을 못 잡겠다.'라고 도움을 요청해 왔다. '잡는다.'는 표현에 순간 뜨악했지만, 도와드리겠다고 답을 보냈다.


이사 전전날 혼자 사시는 양자 분이 야근이라 집 비번을 알려주셔서 이른 새벽에 혼자 들어가 보았다.

주인이 없는 집에 들어가기가 조심스러웠지만, 3개월 만에 보는 나나와 미미가 어떤 상황인지 궁금했다. 먼저 안면을 다시 터야 이동장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아, 과감한 행보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와 눈을 마주친 미미가 혼비백산하며 달아났다. 그동안 양자분과 소통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과 이동장에 넣으려는 시도에 이미 놀란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어디로 갔나 찾았는데, 2단 서랍장 뒤 숨어있던 나나 위에 미미가 포개어 숨어 있었다. 얼굴을 들이미니 부들부들 떨며 두 마리가 동시에 뛰쳐나갔다.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남은 시간은 이틀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순식간에 도망가더니 어디론가 숨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다


방 2개에 열려있던 보일러실까지 샅샅이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닫혀 있던 화장실까지 다시 찾아보았다.


너무 이상하다. 다시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는데, 눈에 뜨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싱크대 밑의 공구박스다. 싱크대 하단 나무 판 한쪽이 열려 있다. (나중에 입양자분 얘기를 들어보니 자꾸 이쪽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무거운 공구 박스로 막아놓은 것이었다고.)


보보와 다다도 이사오자마자 이 공간을 너무 좋아했었는데, 역시 고양이들의 공통 습성인가 보다. 배관에 물 흐르는 소리가 나니 외부로 나가는 길이 있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레이저 빔으로 유도해 봤지만, 소리만 나고 전혀 꿈적하지 않는다.


나무판을 들어내고 싶었지만, 너무 공포스러울 것 같아 그만 후퇴했다.


이사 전날 밤, 여자 두 분의 도움을 받아 같이 동행했다.


나이 드신 분양자 분과 친구처럼 지낸다는 부동산 사장님 두 분이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같이 왔다.

사실 이사하면서 부동산 사장님이 소개해줘서 입양을 보낸 거였다.

전날 야근하셔서 안방에 들어가 취침모드인 입양자분을 뒤로하고 도움을 주러 오신 두 분과 냥이들을 한참 달래는데, 집에 가겠다던 부동산 사장님이 갑자기 나서서  고양이들을 힘으로 제압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꼬리를 잡아 강제로 이동장에 넣으려는 시도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나, 차라리 빨리 이동장을 닫는 게 나을 것 같아 손을 뻗었다가 미미에게 손을 꽉 물렸다.

하필이면 핏줄을 건드렸는지, 바닥에 붉은 꽃잎이 후드득  흩뿌려졌다.


응급실에 가서 파상풍 예방 주사를 맞고 항생제를 처방받아왔다.


다음날 입양자분은 "내가 준비가 안된 것 같다."는 이유로 파양을 원했고, 부동산 사장님은 사과 한마디 없이 "기억나지 않는다, "라고만 했다.

3개월간의 입양기간은 이렇게 해프닝으로 끝났다.


미미와 나나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작은방 캣타워 위 나나와 미미


사진 설명: 영역을 분리했지만, 방묘창은 없다.

열린 문틈 사이로 방밖 대각선엔 다른 고양이 세 마리가 대치해 있다. (너흰 누구냐?! 넘어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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