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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Feb 26. 2024

드라마를 보고 짜증 난 하루(T의 감성)

시작은 AI로봇 이야기였다.

글 한 편을 읽었는데, 사회적으로 저소득층인 남자와 무소득에 인권마저 유린당한 여자가 나왔다.

읽다가 더 이상 읽어도 내가 기대하는 내용(AI로봇이 일상생활에 어떻게 사용될지 미래 공상과학 소설인 줄 알았다.: 요즘 최고 관심사다.)이 없을 것 같아 집어치웠지만 이미 60%나 읽어버린 글 내용이 나를 너무 짜증 나게 만들었다.

제목과 목차에는 없는 내용이어서 속았구나 싶어, 더욱  화가 났다.


그러다 빈둥거리며 (꼬꼬무다) 유튜브로 인기드라마 요약 편을 보았는데, 소재는 '복수'였다.

요즘 드라마는 불합리하고 부당한 처지나 처우에 대해 인. 생. 을 걸고 복수하는 내용이 많은 것 같다.

그중에는 인간의 육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능력이 사용되기도 하고,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가기도 하고 주도면밀한 계획과 함께 정의의 심판자가 되기도 한다.


상상대로 되면 과연 좋을까?

아니... 그러한 일이 일어날 수 없음에 주목해야 된다.(맞습니다. 저 T에요. ㅋㅋ)

'앞으로 과학이 발전하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과학이 발전하면 나만 갖는 능력은 아닐 테고 복수에 이용된다면 범죄가 될 가능성이 99%이고, 더욱 중요한 인생의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 왜 이렇게 흥분하냐고, 뭘 그렇게 진지하냐고 묻는 분도 있을 것 같다. 개개인의 인간의 욕망과 힘이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개인도 그러하니 국가도 그러하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타국의 전쟁을 일삼는 집권자를 욕할 때가 아닌 것이다.


교장 선생님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갑질하는 학생.

그 부모에게 제대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해서, 앞으로도 인생 갑질로 다스리며 살면 된다고 생각할 것인데, 참으로 딱하다.

자기 인생의 영혼은 영혼의 세계, 저 밑바닥도 아닌 지하에서 자신과 같은 존재자들과 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실상 <복수>는 상대와 '같은 차원'으로 대하는 것이다.


진정한 승리를 하려거든 자기의 차원을 높여야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하나님의 아들)을 함부로 대한 죄를  심판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으로 대해 주신 것이다. 자기 마음과 정신과 생각이 영혼을 만들기 때문이다.


개진상 학생에게도 예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교권이 몰락함을 피부로 느끼는 선생님에게도 예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자녀 교육 제대로 시키지 못한 부모에게도 예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돈의 편에 서있나? 싶은 법의 잣대에도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이 필요하다.

종교는 종교(형이상학)이고 법은 법(형이하학)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차원은 다르나 근본을 알면  더 확실해질 문제이다.



심심하다고 함부로 이것저것 열지 말아야겠다.

핀도라의 상자다. ㅠㅠ


아침에 일어나니 다다와 보보가 으르렁대며 싸운다.

처음 있는 일이라 무슨 일이냐고 하며 가보니 코렐 접시가 와장창 깨져있다.

누가 그랬냐고 하니, 다다는 줄행랑을 치고, 보보는 모르쇠다.

당분간 미디어는 뉴스만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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