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고 가난한 자를 사랑하고 아무런 힘이 없는 여자와 순수한 어린아이를 사랑한 하나님 말씀의 실천자.
그가 행하심으로 보여주시면서 말씀을 선포하셨고
새로운 시대 즉 하나님을 아들로서 사랑하는 시대를 열었다.
제사를 지내며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시대보다 높은 차원의 사랑의 시대를 열었지만
기존성의 권력과 힘이 이를 통제하고 억압했다.
심지어 시기 질투에 눈이 멀어 그를 증오하며 죽이기까지 했다.
"시골마을 목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니!!"
4천 년간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기다리던 그들은
사탄의 쓰임을 받는 자들이 되어 구원받지 못하는 세계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방법을 몰랐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줄 알았다.
(물론 내려오셔도 그들 눈에는 안보였을...)
지금은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과 말씀이 당연시되고 그 복음의 혜택을 누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 대부분이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자는 외롭고 환영받지 못한다고들 하지만 그들의 운명이 달린 문제였다.
지금도 그러하다. 기존성이 눈을 멀게 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고, 신령한 역사로 날마다 부르고 계신다.
깨어 기도하는 자는 분명 응답을 받을 것이기에, 역시 기도와 말씀으로 확인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마태복음 11장 25~26절]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이 말씀은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푼 고을을 두고 회개치 아니함을 두고 심정이 타서 하신 말씀이다.
그들을 뒤로하고
눈앞에 있는 어린아이 같은 힘없는 자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 그 심정이 어떠셨을까...
회개는 즉 예수님을 깨닫고 따르는 것이라고 축약할 수 있는데, 돌이키지 않는 그들을 보고 마음을 돌리셨을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유대교 공동체가 발달했을 그 고을에 단 한 명이라도 예수님의 기대대로 하나님이 예수님의 육신을 쓰고 오셨음을 깨닫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뒤집어졌다면 어땠을까?
보이는 것을 중시하는 육신의 세계라 쉬이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식인층과 유대교인들 속에 복음이 전파되는 속도는 달라졌을 것이다.
사상이 달라도 죽음을 불사하지 않아도 되는 감사한 시대가 열렸지만, 사상과 정신의 싸움 또한 치열하다.
예수님은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택하신 한 육신을 쓰시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보다 차원 높은 구원의 역사를 펼치고 계신다.
그는 오늘도 가장 낮은 곳에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