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울고, 나도 울고,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날
할머니 숙소를 나와 우리가 향한 곳은 레지던스였다.
홈스테이는 편하고 좋았지만 식사가 문제였다.
아이들이 어려 ‘양질의 단백질’ 공급이 필수인데, 단백질 공급은 조식 달걀로 한정됐다. 근처에 마땅한 가게도 없었고 조리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 숙소는 조리가 가능해야 했다. 내 마음을 읽었는지 갑자기 아고다에서 레지던스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레지던스? 레지던스엔 싱크대와 조리대가 있겠지? 4박 예약 버튼을 눌렀다.
레지던스에 도착했는데 느낌이 싸하다. 커다란 배낭, 아이 둘, 쌍둥이 유모차, 트래블 백, 자잘한 비닐봉지까지 내 짐은 한가득이었지만, 직원들은 나를 힐끗 쳐다보고 말 뿐이었다. 그 흔한 ’ 사왓디카‘도 없었다. 직원들의 눈은 각자의 핸드폰과 서로에 고정되어 있었다.
체크인을 했다. 요리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외식문화가 발달한 치앙마이 레지던스에는 싱크대와 전자레인지, 전기포트가 있을 뿐이었다. ‘양질의 단백질’이 문제였다. 고기를 사도 익힐 곳이 없었다.
식재료 시장을 갔다. 시장에서 도넛, 바비큐 치킨, 과일을 샀다. 생고기가 있었지만 상온에 보관되어 있었고, 고기 위를 윙윙 날아다니는 파리를 보니 선뜻 구매할 수가 없었다. 타협을 했다. 조리과정이 보이지 않은 바비큐 치킨으로. 우리는 작은 식탁에 모여 ’너무 짜, 너무 짜 ‘를 연발하며 맛있게 먹었다. 실제 바비큐 치킨은 짰지만 감칠맛이 엄청났다. 더운 기후 탓에 태국 음식은 간이 센 편이었다. 아이들에게 그동안 저염무염식을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간이 센 음식들을 먹은 아이들은 맛있다고 웃으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레지던스는 ‘싼티탐’이라는 서민 동네에 위치해 있는 곳이었다. 점심으로 바비큐 치킨을 먹고 저녁에 우린 야시장으로 향했다. 수목금만 열리는 로컬 타깃의 야시장이었다.
치앙마이에는 크게 두 가지의 야시장이 열린다. 하나는 관광객을 위한 야시장, 다른 하나는 로컬을 위한 야시장이다. 관광객을 위한 야시장은 크고 깔끔하고 비싸다는 특징이 있고, 로컬을 위한 야시장은 작고 저렴하고 먹을 거 위주라는 특징이 있다.
야시장으로 향하는 길은 미용실과 노점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떠돌이 개들부터 길냥이, 그리고 닭까지 치앙마이 길거리는 볼거리가 풍성했다. 부아앙 스쿠터들이 한 곳으로 모이는 곳이 보였다. 구글맵에서 알람을 울린다. 야시장에 도착했다는 뜻이다.
치앙마이 도착 후 처음 방문하는 로컬 야시장이다. 야시장에 외국인은 나 혼자인 듯 보였다. 쌍둥이 유모차를 끌고 나타나자 모두들 길을 비켜준다. 아이들이 귀엽다며 모두들 미소 짓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있다 (타이 사람들은 동의를 구하지 않고 사진을 찍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좌불안석이다. 이전에 식중독을 경험한 터라 또 식중독에 걸릴까 봐 무서웠다. 얼음이 들어간 음식은 아예 쳐다도 보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맛있게 먹었던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코코넛’ 음료와 빵들이다. 한국에서 쉽게 먹을 수 없는 재료인 코코넛으로 만든 빵과 음료는 모두 맛있었다.
“코코넛 음료 하나 주세요”
“스무디로 드릴까요?”
“네, 시럽과 얼음을 빼주세요. “
“그럼 이걸로 드세요(코코넛 워터, 40밧)“
코코넛 워터와 코코넛을 넣은 음료는 맛이 좋았다. 배 아플까 봐 얼음이 무섭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도 얼음을 먹고 배가 아픈 적이 있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우린 그런 서로를 두고 한참을 웃었다. 언어는 말이 전부가 아니다, 손짓 발짓 몸짓 표정까지, 그 모든 것으로 뜻은 통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저녁 나들이를 마쳤다.
모두들 자고 있는 깊은 새벽이었다. 갑자기 첫째가 깼다. 첫째에게 무슨 일이냐며 괜찮냐고 말하던 중에
“우우 욱”
분출성 구토가 시작됐다. 한 번 시작된 구토는 끝을 볼 줄 모른다. 세상에 분출성 구토라니, 이 새벽 치앙마이에서 분출성 구토라니!
35개월인 첫째는 건강한 아이였다. 구토를 한 적도, 아픈 적도 얼마 없었다.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는 것은 나의 자랑이었다. 그런 첫째가 지금 분출성 구토를 하고 있다.
식중독 원인으로 바비큐 치킨이 가장 유력했다. 첫째가 치킨을 유난히 많이 먹었다. 바비큐 치킨의 배신이었다.
첫째는 낯선 느낌에 울고 있고, 둘째는 그런 첫째를 보고 덩달아 울고, 나는 잔여물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닦고, 쓸고, 치워도 냄새는 없어지지 않았다. 한참을 치우는 데 동이 텄다. 새벽 4시다. 아이들은 이미 지쳐 잠들어 있었다. 수건으로 대충 덮고 잠을 청했다. 역한 냄새를 맡으며 잠을 자려는 데 첫째가 화룡정점으로 한 마디 했다.
“엄마, 나 집에 가고 싶어”
(아이들이 깰까 봐) 엉엉 울지도 못하고, 베갯잇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괜히 왔다, 괜히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