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입문서 #1
'양양', '헌팅', '허세'
서핑을 검색하면 항상 함께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서핑은 최근의 이미지만으로 선입견을 갖기엔 꽤나 매력있는 취미다. 서핑을 취미로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런 이미지가 만연해지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바로 위 사진은 서퍼들의 로망인 '배럴서핑'을 하는 장면이다. 주변의 모든 시야가 파도로 가득 뒤덮이는 순간은 서핑이 아니라면 쉽사리 경험할 수 없다. 파도는 위에서 밀려오는 물과 아래에서 빠져나가는 물로 인해 회전력을 갖게 되는데, 그 힘이 매우 강하거나 특정 지형이 맞물리는 경우에 마치 동굴과 같은 '배럴'이 형성된다. 그 파도에 잘 올라타게 되면 360도가 오로지 물로 이루어진 동굴 속을 보드 하나로 탐험할 수 있다. 비록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겠지만, 분명 낭만이 가득차는 황홀한 순간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서핑이 마냥 평화롭고 낭만적이기만 한 스포츠는 아니다. 사진 속 거대한 파도는 무려 26m에 달한다. 이런 파도는 속도가 시속 100km에 가깝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잡을 수 없고, 제트스키를 이용해 잡는다. 겨우겨우 파도의 속도를 따라잡았다고 해도, 높은 경사와 울퉁불퉁한 파도면을 성공적으로 라이딩하는 것은 무척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다. 만약 파도가 부서지기 전에 탈출하지 못한다면 26m의 파도에 휩쓸리게 된다. 이런 집채만한 파도를 맨몸으로 정복하고 싶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배럴 속 황홀경의 낭만과 집채만한 파도를 정복하기 위한 목숨을 건 도전. 서핑의 본 모습은 낭만과 도전정신이다.
서핑은 파도를 타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보드 위에 서서 타는건 물론이고, 앉아서 타거나 누워서 타는 서핑도 있다. 심지어 보드도 없이 맨몸을 이용해서 파도를 타는 바디서핑도 있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파도를 탄다면 그건 모두 서핑이 될 수 있다.
파도를 탄다는 것은 파도의 힘에 내 몸을 맡기는 것이다. 보기엔 넘실거리는 수준의 작은 파도도 사실 우리의 몸 정도는 가볍게 밀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파도가 밀어주는 방향 따라 보드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아슬아슬 균형을 잡아 일어선다. 보드 위에 두발로 서고 나면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인사한다. 이제부터 파도와 호흡하며 방향과 속도를 맞춰가면 된다.
물론 대자연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좋은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온다는 유명한 서핑 스팟에 가보아도 많은 서퍼들이 바다 위에 둥둥 떠서 오매불망 파도를 기다리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기다림 끝에 온 파도는 그냥 지나쳐버리기도 하고, 몸을 들어올렸다가 수면으로 꽂아버리기도 한다. 어쩌면 서핑을 하기 위해 준비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파도에 기꺼이 순응하는 마음가짐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파도를 기다리는 시간이 모두 버려지는 것은 아니다. 바다 위에서 쏟아지는 해를 맞는 순간도 참 좋다. 보드에 걸터앉아 뜨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도 서핑을 하며 느낄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한 마디로 서핑은 자연과의 소통이다. 강, 바다, 호수 어디에서든 서퍼는 자연을 느끼며 서핑을 한다. 쏟아지는 햇살을 피할 수도 없고, 흔들리는 물결을 거부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가운데 묘한 충족감을 느끼게 된다. 도시에서의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으로 알게 모르게 지쳐있던 마음이 자연의 거대한 풍경과 움직임에 조금씩 위로받는다.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잊었던 '여유'를 되찾는 순간이다.
동시에 자연이 주는 변화무쌍하고, 변칙적인 메시지에 심혈을 기울여 대응해야한다. 마냥 여유롭게 풍경만 바라보고 있으면 그건 서핑이라고 하기 어렵다. 언제 좋은 파도가 오는지, 어떤 파도가 오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 파도를 고심하여 골랐더라도 그 파도 위에 제대로 올라타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대응해야할 것들이 아주 많다. 여유로이 즐기던 와중 예고 없이 찾아온 파도는 색다른 다이나믹함으로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여유로움과 다이나믹함. 이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서핑이다.
수트를 입어야하는 계절이 아니라면 서퍼들의 복장은 다들 비슷하다. 까만 피부, 짧은 반바지와 젖은 머리. 상의는 대개 벗고 있거나, 늘어난 티 한 장을 달랑 걸치고 있다. 서퍼들의 까만 피부는 오랜 시간 바다 위에서 해를 맞으며 파도를 기다렸다는 일종의 상징이고, 바닷물로 인해 젖은 머리와 늘어난 옷은 늘 바다와 가까움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보드숏'이라 불리는 짧은 반바지는 서핑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바지로써, 서퍼들의 피부와 같은 아이템이다. 아무래도 이런 서퍼들의 모습은 격식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의 자유로움이 사뭇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런 스타일이 하나에 멋이 되어 많은 패션 브랜드들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최근 한국에서 크게 유행한 ‘DEUS EX MACHINA' 또한 서핑과 바이크의 라이프스타일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최근 서핑을 하기 위해 다녀온 발리의 데우스샵 뒤편에는 바이크를 커스텀하는 공간과 함께 보드를 만드는 공간도 있었다.
서핑은 단순한 스포츠 종목을 넘어 하나의 멋이자 라이프스타일이기도 하다. 여유롭고, 자유롭고, 도전적인 서퍼들의 라이프스타일은 파도 위에서의 서핑과 아주 닮아있다. 서로 간에 격식을 차리지 않고, 파도가 없다고 조급해하지 않으며, 거친 파도에 올라타기 위해 도전하고 연습한다.
서핑이란건 크게 보면 삶을 살아가는 모양이다.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도 서핑에 빠져서 인생을 바친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서핑을 즐긴다고 해서 반드시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 바닷물이 추우면 수트를 입는 것이 당연하고, 파도가 오지 않아서 조급해할 수도 있다. 다만 서핑을 즐기러 간 그 순간만큼은 여유롭고 자유롭게 당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단순히 파도를 타는 것 이상으로 서핑을 즐기는 방식이다.
서핑이 마냥 즐겁기만한 취미는 아니다. 파도를 탈 수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 수없이 맞아야하는 물세례와 무거운 보드를 들고 다니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이 모든 것도 자연과 소통하는 하나의 과정으로써 생각하면 큰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강원도 동해안 일대와 제주도에 서핑스팟이 많다. 동해안은 가을부터 봄까지, 제주도는 동서남북에 모두 해안이 있는 만큼 사계절 모두 좋은 파도를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핑은 여름에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1월 정도를 제외하면 계절 상관없이 늘 할 수 있다. 이미 좋은 방한 장비가 많이 개발 되어있다. 물론 12월, 2월은 고사하고 3월에 방한장비를 착용해도 무지 춥다. 처음 서핑을 할 때는 따뜻한 계절에 하시기를 권한다.
가장 쉽게 서핑을 접하려면 검색을 통해 서핑샵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보통은 입문 강좌와 렌탈을 함께 진행하는 패키지가 있다. 혼자서 바로 파도를 타기는 매우 어려울 수 있으니 입문 강좌 정도는 받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입문 시기에는 변칙적으로 오는 파도를 잡아 일어서기가 어렵기 때문에 강사가 균일한 힘으로 파도의 타이밍에 맞춰 보드를 밀어준다. 이는 처음 서핑과 친해지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의 다가올 여름엔 낭만과 도전 정신 가득한 서핑을 즐겨보길 바란다. 단순히 파도를 잡아 일어서는 것을 넘어 자유롭고 여유로운 서핑의 라이프 스타일을 함께 느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