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나는 수박만 한 배를 안고 얼마나 희망에 부풀었던가.
이 배를 비워내고 나면 나는 다시 자유를 찾을 거야.
내 몸은 다시 내 것이 되겠지.
그렇게 마시고 싶던 와인도 한잔 할 거야.
아기는 귀엽겠지, 우리는 행복한 세 가족이 될 거야.
그리고 아기가 생후 한 달이 지나 신생아를 졸업한 이 시점에서 나는 계속 검색창에 산후우울증을 검색하고 있다.
이건 30년 이상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고,
아기 돌보기란 사실 고문이라고 생각한다.
아기는 축복이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며 나쁜 의도란 없는 순수 그 자체다. 그리고 그 점이 엄마를 더 환장하게 한다. 사랑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아기에게 미운 감정이 든다는 것, 너 때문에 내가 힘들어 죽겠고, 잠시라도 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가있고 싶다는 악에 받친 엄마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기에게 화가 나고 아기가 원망스러워질 때면 머릿속은 뭔가 정리가 안되게 꼬이고 터질 것 같다. 단순히 화낼 수 없고 죄책감과 무력감이 엉망으로 달라붙다 보니 그동안 겪어본 적 없는 스트레스가 온몸을 내리찍는다.
남들은 어떻게 지내는 걸까.
남들은 아기가 예쁘기만 하다는데.
나만 왜 이런 걸까.
나만 유독 최악인 걸까.
하지만 도망가고 싶다. 너무 숨 막힌다.
핀치에 몰릴 때면 그런 생각들로 마음이 가득 차 한바탕 통곡을 한다.
내가 꿈꿨던 건 이게 아니었어. 이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