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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May 30. 2016

버블, 버블, 버블

미리 더 많이

우리는 희망을 먹고 산다. 희망의 근거는 믿음이다. 나 자신이 더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 것, 종교가 있다면 그런 상황이 되는 것 따위의 믿음. 희망의 근거를 나의 준비됨, 그것의 출현으로 삼아야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외부에서 막연히 찾고 있다. 모든 버블은 그 막연한 희망에서 생긴다.



대기업들이 무너진다. 직접적인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다. 무리한 투자, 투자의 실패. 웅진도, STX도 혹은 M&A를 하다가 체한 회사들은 다 이런 이유였다. 대안도 다르지 않다. 잘 될 줄 알고 뽑았던 직원들을 내보내는 것. 막연한 희망은 누군가 하고 그 희망의 동조자들만 애꿎게 길거리로 나 앉게 생겼다. 그런데 외려 정부는 그 퇴색된 희망에 길거리로 나 앉은 희망의 동조자들이 낸 세금으로 덧칠을 하고 있다. 물론 조금 비약도 있다.



하지만 멀리서 찾을 이야기도 아니다. 플라스틱 조각이 엄청난 신용을 만들었다. 누구도 보지 않은 막연한 희망을 근거삼아 월급의 몇 배를 먼저 풀고 그것을 기업들이 미리 받아서 먹도록 만들었다. 버블은 더 크게 불어간다. 모든 자산에 신용과 대출담보의 버블들이 충만히 끼어있다. 버블은 정기적으로 정리되고 또 막연한 희망을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 앉는다. 어쩌면 누군가가 만든 막연한 희망이란 무서운 바이러스에 대부분이 중독되고 이것을 끊기란 참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탐욕.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저지른 일 때문에 이후 오랜 시간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탐욕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걸까? 자본주의의 몰핀이 모두 획일화된 삶을 만들어버렸다. 지급 방법이 더 편리해질수록, 혹은 사람을 채용하고 자르는 일이 더 편리해질수록 고독하리만큼 인류는 갇히게 되었다. 임대한 방에서, 사이버 공간에서, 각종 도서관과 취업 사이트 앞에서, 대출 상담 부스 앞에서. 대부분 막연한 희망이 꺼지는 것을 막으려 더 큰 막연함을 만들고 수렁으로 빠져든다. 이 프로그램의 창설은 누가 한 걸까?



담배를 만들고 파는 사실상의 주체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세금을 더 걷고 피우지 말라고 무서운 광고를 하겠다고 한다. 물론 개인적 취향으로 담배를 싫어하지만 한편으론 웃기다. 우리가 영위하는 버블버블한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미지근한 간섭과 규제, 그리고 그 밑단에 본질적으로 자리잡은 인간 본성에의 이용. 상업적 취급, 카르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 스스로 판단하라기엔 먹고 살고 노는 이 사회 시스템은 어딘가로 몰아가는 느낌이 없지 않다. 이게 산업일까, 아니면 프로그램일까?



막연한 희망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그게 훗날의 더 큰 수고로움을 줄이는 방법이다. 남들과 다른 방법을 하나라도 모색, 하나라도 덜 하는 것, 안 가지는 것, 대신 내가 준비하고 만드는 것. 소비적 사고에서 생산적 사고로. 버블 미만의 눈높이로. 게임의 룰을 바꾸는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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