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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Aug 01. 2016

관리직 리더의 권한

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개발실의 사정

'전문 기술이 중요한 기업에서 관리직 리더가 필요한가'는 사실 정답이 없는 질문입니다. 리더의 성향과 역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업을 시작할 때 기술, 영업, 전략, 재무 순서로 조직 내 중요성이 옮겨 간다고 이야기 합니다. 아주 고전적인 산업의 도래, 성장, 정체기에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오늘날에는 이 중 어느 것 하나 멈춰 있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에서 유독 관심을 받는 것은 리더의 출신입니다. 오너 일가가 다시 복귀를 했다느니, 해당 아이템의 전문가가 경영자가 된다느니, 투자은행 출신의 재무통이 CEO가 되었다느니는 산업/경제 신문 주요 면을 차지하고 있는 가십거리입니다. 이렇게 들어온 사람에 대한 기사는 많은데 나간 사람이 나갈 때까지 한 일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죠. 우리 나라에서도 정유, 철강, 자동차, 전자 등 주요 업계에서 기술자 출신의 경영진이 강세인 곳이 있고, 재무나 기획 출신의 관리자 출신이 강세인 곳이 있습니다. 물론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필요는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맞다는 것은 정말 정답이 없습니다.  


관리형 리더는 보통 인수기업에서 잘 하던 사람이 피인수 기업으로 가거나, 기업 집단에서 작은 계열사에 기업의 핵심 요직에 있던 사람이 CEO로 가거나 이익이 나빠졌을 때 여러가지 재무적 절감 등의 이유로 가거나 기술의 차별성 보다는 보여지는 것의 차별성이 고객에게 더 중요할 때 많이 나타납니다. 이런 관리형 리더는 사실 실무적으로 아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숫자와 경영철학 정도가 전부죠. 그 산업의 실무를 모르면 다른 분야에서 실무 전문가라도 관리형 리더입니다. 픽사의 경영을 오랜 기간 한 스티브 잡스도 하드웨어 전문가였지 애니메이션 전문가는 아니었기에 굳이 구분하자면 픽사에서는 관리형 리더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관리형 리더가 조직을 장악했을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기술적 영역에 대해 기술진을 믿어주고 관여할 포인트에 대해 엄격한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이죠. 자기 스스로를 신격화 해서는 안됩니다. 알지 못하는 부분에 뛰어들어 직원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하는 문화 전체를 흐트리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애니메이터는 말할 수 없다?

일전에 국내 유수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스튜디오는 나름의 독창적인 작품으로 고정적인 수요를 가지고 있는 알려진 회사입니다. 하지만 현재 내부에서는 극심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총괄하는 프로듀서의 연이은 퇴사였습니다. 업계에서 섭섭치 않은 연봉에 복리후생도 좋은 직장에서 커리어를 다져나갈 수 있는 자리를 마다한다니 조직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새로 바뀐 프로듀서는 자신의 역할을 정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해당 스튜디오에는 프로듀서도 있지만 전체적인 경영을 책임지는 경영진도 상위부서로 있었는데 개발부서의 모든 회의에 참석을 해서 회의를 리딩해 버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죠. 신임 프로듀서는 이직한 직장의 문화 적응도 힘든 시기에 회의가 시작하면 속사포처럼 경영진의 생각으로 말하는 회의에 질려 버려서 별 말도 못하고 나오는 일이 많았던 것입니다. 개발부서의 직원들의 불만은 쌓여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프로듀서를 찾아가 회의 때 더 적극적으로 개발부서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프로듀서는 아직 발언권이 약한 상태라 이런 식의 회의는 되풀이 되는 것이죠. 이것이 신임 프로듀서만의 잘못일까요? 이 스튜디오는 최근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영진이 갑자기 생기고 핵심 컨텐츠인 애니메이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자신의 다른 경험으로 간섭하면서 이 스튜디오에는 창의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리즈가 고객의 각광을 받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 지 알 수 없습니다.



픽사의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샀을 때 많은 우려의 시선이 있었습니다. 컴퓨터 만드는 사람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비전인 픽사를 그래픽 기술력을 보고 샀을 때는 기존에 직원들이 추구하는 비전에 대한 혼란이 올 수도 있다는 외부 시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비전을 밀어줬고 자신이 비전문가임을 스스로 말하면서 기존에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이끌던 애드 캣멀, 존 래스터 같은 직원들에게 전권을 맡겼습니다. 되도록 개발부서의 창의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비록 인수 초기 픽사가 적자를 오랜 기간 낸 회사였다고 해도 잡스는 애니메이션 회사의 업을 이해하고 창의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법으로 관리했던 것이죠.



창의적 컨텐츠가 필요한 시장에서 한국식 재벌 경영은 그 접점에서 파열음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애니메이션 회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프로 스포츠단, 외식업, 패션업 등 고객이 소구하는 차별화가 가능한 대부분의 아이템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예전에 기업을 일군 개발자 아닌 개발자인 창업자들은 퇴장하고 대기업화 된 기업집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만 도가 튼 기획과 재무 출신들이 그 자리를 대부분 잡고 있거나 오너 2,3,4세들이 '과감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리잡고 있는 기업들. 물론 이들이 전문가들에게 전문적인 영역을 위임해서 픽사와 같은 사례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 보았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습니다. 자신이 어디까지 아는지 아는 사람이 더욱 귀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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