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이 아닌 목표를 메세지로 공유 한다
하이어라키가 강한 조직은 불문율이 있습니다. 마케팅을 할 때 메세지에 꼭 숫자가 들어가야 된다든지 유통망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창고 선반의 먼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작게는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죠. 어떤 임원은 커피를 싫어하니까 절대 타와서는 안된다든지 보고서의 서식은 이게 좋다든지 하는 것 말입니다. 공식적으로 이런 게 정리된 것도 없고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어디 써 있는 데도 없습니다. 하지만 불문율은 어떤 명문화된 계약보다도 당장 살아가는데 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불문율은 아는 사람만 알고 모르는 사람은 알 수 없기에 이너 서클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소위 '누구 라인'이 되기도 하며 일정 수준의 직원과 아닌 것을 나누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 기업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성과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들이 겉치레를 하나 더 만드는 셈이죠. 기업의 비전이나 경영의 아젠다와는 별개로 이것은 존재하고 심한 곳은 비전과 아젠다를 만드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아래에서 '누가 싫어해' 이런 식으로 제단하고 실제 나갈 방향과는 다르게 '누가 이거 좋아한다던데', '이런 이야기를 했대'하는 식의 도시전설을 만들어 나갑니다. 곧 하나의 항성이 존재하고 주변에 중력에 이끌린 행성처럼 달라붙는 사이 기업은 관료화가 금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불문율이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을 압박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인 목표를 정하고 과정의 자유도를 주는 기업은 조직원이 스스로 생각해서 더 나은 방법을 택하도록 만듭니다.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구분한 인재를 선발한 기업이 선발 과정에서 검증한 스스로의 저력을 믿지 않고 다시 주입식으로 작은 것 하나까지 규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직원은 최고가 아닌 평균, 차악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생존의 주사위를 굴립니다.
특히나 근거가 없는 일이 그렇습니다. 기획하는 것 말이죠. 신규 사업을 추진한다든지 새로운 마케팅 방법이 필요한다든지 하는 누가와도 100% 맞출 수 없는 일은 신뢰가 추진력이 되기 때문에 아무래도 결정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정리되기도 합니다. 특히 결정권자가 이전에 말한 불문율이 떠돈다면 누구랄 것 없이 그걸 기준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그게 맞든 아니든, 그거보다 더 좋은 게 있든 아니든 별 상관 없습니다. 주주가 좋아하는 것을 경영자가 할 수 밖에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기준은 실무자의 두뇌 활동을 어느 순간부터 마비시킵니다. 그걸 맞추면 됩니다. 그걸 더 하면 됩니다. 그러면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규 음료를 기획하는 회사에서 고객 조사를 한다고 합시다. 최근 정보가 떠다니는 수단은 많으니 어디서 정보를 추출해서 어떤 기준으로 정리할지 방법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60세가 넘은 오너가 'FGI 30명과 설문조사를 3개월 이상 진행해야 믿겠다'라고 어디선가 발언했다고 합시다. 이 회사는 어떻게 될까요? 이 말이 어느 회의에서 누군가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이미 신규 음료가 성공할 확률은 확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이걸 말하는 사람의 뇌구조나 이것을 그대로 받아적고 있는 모습은 더 이상 이것 외에 생각하지 않으리라 맘 먹은 사람들이 하는 일입니다.
이 때부터 모든 두뇌 활동은 결과물의 목적이 아닌 결과물을 얻는 과정에 집중됩니다. 높은 기준의 불문율을 채우기 위해 최소한 언급한 시도의 횟수나 기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높은 기준이므로 이것도 최소한이 됩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의 정보 수집의 창구를 차단합니다. 결과에 대한 토론은 사라지고 이 방법을 지켰는지 서로를 엿볼 뿐입니다.
하는 방법은 절대적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환경은 늘 바뀝니다. 목적에 대한 공유와 공감이 선명하면 더 젊고 더 정보 친화적인 조직원들이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다 보면 전에 알지 못한 새로운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실패의 횟수를 장려하고 새로운 결과가 한 번 터트리는 결과가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의사 결정권자에 기생하는 중간관리자나 백오피스의 불문율 강조와 자의적 변형은 기업의 창의성을 떨어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기업의 창의성이 무엇입니까? 조직원의 창의성입니다! 조직원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해서 방법을 찾는 것. 요즘은 목적조차 조직원이 스스로 정하는 LAB도 의도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직원을 믿지 못하는 기업은 세부적인 것까지 규정하고 따르고 있는지 측정합니다. 이런 기업의 창의성은 불문율을 만든 사람의 지적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을 뽑았지만 두뇌는 한 사람만 쓰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기업의 기획과 규정이 창의적으로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겁니다. 경우에 따라 추진력 있게 진행되어야 하거나 뻔한 결론이 기다리는 것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기업은 이미 이런 건 많이 한 상태입니다. 새로움이 없고 시장의 마켓쉐어가 떨어지고 경영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신사업이 부진하다면 누군가가 내부에서 불문율을 양산하고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주주가 경영자를 믿지 못하면 답이 없죠. 경영자는 주주 이야기에 따라 끌려만 다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은 어차피 도박입니다. 잘 될수도 있고 망하기도 십상입니다. 하는 동안에는 내 조직을 믿고 내 패를 믿는 게 맞습니다.
불문율이 강한 기업치고 평가가 공정한 기업도 드뭅니다. 불문율이 강화되는 순환고리 같은 거죠. 평가를 하기 위해 사전에 성과 목표를 정하고 한 회계주기가 출발하지만 이것을 나중에 꺼내서 목표대비 얼마나 달성 했는지 박수치고 포상하고 평가하는 것은 약합니다. 그저 평가자의 눈에 들고 평가자의 말을 잘 들었던 것 같은 사람을 줄 세우는 일이 벌어집니다. 불문율을 잘 따랐는지 혹은 역린을 건드렸는지는 크리티컬 포인트가 되어 돌아옵니다.
성과에 목을 매고 지지부진한 사업이 이어지는 게 싫다면 왜 진정 평가를 바르게 하지 않을까요? 정확한 성과 목표를 정량적으로 합의하고 그것을 토대로만 이야기 하지 않을까요? 오너십이 여기에는 미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조직 내부에서 서로 봐주는 것이죠. 실력 없음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팀장들 급에서 이런 논의를 본격화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경영진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보고서만 받지 이것이 어떻게 나왔는지에 대한 로데이터(raw-data)는 받지 않으니 적합한 과정에 의해 도출된 평가인지 알 리가 없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평가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이죠.
이것은 회사가 누구의 것이냐는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합니다. 회사가 자본이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자본만이 기업의 역량이 아닌지 오래되었습니다. 자본을 댄 주주를 위해 회사가 존재하기 위해 주주의 불문율을 따라야 하는 것이냐는 기업의 사회적 위치와 역량의 재편으로 인해 새로운 생각할 질문이 되었습니다. 내부 직원들의 높은 창의성이나 전문적 역량은 주주의 입김만큼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한국식 주식회사 문화는 이 앞에서 답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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