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권은 리더의 과업 정의가 허술할 때 발생한다
A사업부 김 부장은 사업부 소속 b아이템에 관심이 많습니다. 사업부 전체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높기도 하지만 김 부장이 겪은 아이템이기 때문입니다. 사업부장이 되어서 b아이템 외에도 대여섯개의 아이템을 맡고 또 고객의 변화에 따라 추가할 아이템이 있음에도 김 부장은 요즘 b아이템 회의 및 담당 최 차장을 자주 부릅니다. 그리고 주요 디테일을 물어보고 의사결정까지 합니다. 김 부장이 b아이템을 지금의 반열에 올린 것은 대부분 인정하나 최 차장은 사실상 김 부장의 손발 노릇만 하고 있습니다. A사업의 빈 시장은 이미 경쟁사가 호시탐탐 마켓쉐어를 늘리고 있는 중이구요...
이런 사례는 종종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경영을 하면서 하이어라키를 만들어 공고한 단계를 만들었는데 이 단계간 하는 일이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 원래 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일을 한다는 것이 단순히 실행을 하는 것이 아닌 기획하고 자원을 사용하거나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말한다면) 그 일을 못하고 그 윗선에서 그 일을 좌지우지 하는 경우 말이죠. 좋은 말로 리더가 핵심 사업에 집중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리더가 자기 일을 안하고 아래 사람 일을 참견하고 간섭하여 조직 구조를 허물고 경영을 도리어 무너뜨리는 경우 말이죠.
이런 일이 벌어지면 아래 직원들을 스스로 고민하고 찾는 방법과 습관을 잃어버리게 되고 머리가 빈 채 손발 노릇만 하게 됩니다. 그 아래 디테일한 일을 뭐라도 해야하니까 간섭하게 되고 원래 할 일들이 한 계단씩 밀리게 되어서 직급별로 할 일을 못하게 되죠. 조직에서 인재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인재 양성에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당장의 실적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실무와 한 단계 멀어진 상태에서 실무의 핵심적인 내용을 의사결정 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일 수 있습니다. 덜 아는 사람이 잘 아는 사람에게 단순히 경험이 많다고 요즘 세상에서 지시할 수 있는 환경의 속도가 아닙니다. 중요한 실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줄어든 마켓쉐어와 틀어진 이익구조로 나타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사업이 마땅히 나가야 할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템 단위에서 이 아이템들을 묶고 있는 사업의 단위로 올라가면 전체적으로 시장의 변화와 이것을 선제적 혹은 빈 기회를 대응할 수 있는 신규 사업 혹은 사업 포트폴리오의 정리가 필요합니다. 현재 부족한 밸류체인을 시스템화 시키는 것도 미래를 위해 다져놓아야 할 일이구요. 하지만 사업부 리더가 몇 개 단위의 아이템에만 매몰되면 정말 닥쳐올 미래에 대한 고민과 실행은 상당히 요원해져 버립니다. 실제 현재 실적이 안 좋은 사업일수록 잘못된 경영진은 상위 리더에게 하위 리더의 일을 많이 간섭하길(괴롭히길) 원합니다. 당장 원가절감이나 비용통제로 얼마간의 이익 반등은 하겠지만 그게 전부가 되는 것이죠.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는 데에는 상위 조직(여기서는 '사업부'라고 표현한) 리더의 핵심 과업이 정리되지 못한 데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할 일이 어떤 지표, 어떤 사업의 아웃풋으로 정리될지 가장 불명확하기에 자기가 잘 하는 일, 자기가 괴롭힐 큰 아이템을 찾아 대부분의 시간을 월권하고 있습니다. 이런 리더들의 성과 지표는 단순히 '사업부 마켓쉐어 30%', 'b아이템 30% 매출 성장' 등 정량적인 목표는 있으나 과업이 정의되지 않고 아예 하위 아이템을 간섭하는 목표로 셋업될 때가 많습니다. 경영진은 무능해서 이걸 합의하죠.
하지만 경영은 본래 취지가 '맡기는 것'입니다. 맡기지 않는데 굳이 사람을 많이 모아서 비싼 인건비를 내고 사업을 하는 것은 육체노동의 시대에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스스로 고민해서 모두가 창의적인 생각과 제안을 가지는 것(그래서 의견이 일치되는 것보다는 처음에는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을 모토로 삼아야 사업도 인재도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기업들은 오너의 입김, 생각, 침묵, 부재에 따라 모두 위만 보고 눈치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고 몇 개의 윗선에서 아래 일을 보고받고 감시하는 데 총력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글로벌 기업 수준의 창의성을 요구합니다. 점심 식사도 눈치보면서 정하면서 유연한 기업문화를 입으로만 좋아합니다.
이런 조직은 대부분 관리를 위한 관리로 리더 고유의 과업, 리더 고유의 스케일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이것이 참견의 기본적인 토양을 만듭니다. 개인의 성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리더는 짜르면 됩니다. 막상 혁신을 뉴스로만 사랑하는 기업들은 정작 리더진을 짜르지는 잘 못합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이 계속 돌고 숨고 나타나고 끌어주죠. 리더도 실패할 수 있고 실패했다고 뭐라고만 할 수 없고 시도에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리더 고유의 시도가 아닌 하부조직에 숟가락을 얹고 참견하고 실질적으로는 무엇하나 시스템으로 풀어주지도 못하는 인사는 퇴출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니 시간이 남고 직원들 괴롭히죠.
곧 가을입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경영계획을 짜고 새로운 성과 목표를 작성하는 시즌입니다. 이번에는 정말 '고유'한지 모두 봐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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