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ter Feb 17. 2016

ERP 좀 가르쳐 주세요

문제를 사람이 해결할까, 컴퓨터가 해결할까

물이 잔에 담겨있다. 물이 중요할까, 잔이 중요할까? 둘 다 중요하다! 물이 없으면 잔이 있을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고, 잔이 없다면 물은 유형을 갖추어 쓸모 있게 담길 수 없으니 둘 다 중요하다. 상품 역시 마찬가지다. 상품과 함께 포장도 중요하다. 포장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선택을 받기 어렵지만, 물건이 없는 포장지는 돈을 지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물었다. 패러다임이 중요할까, 도구가 중요할까?


최근 기업마다 '시스템'이 화두다. 비지니스의 속도를 늘리기 위해 새로운 IT 기반의 시스템을 들이고 있다. 물론,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는 IT업계의 이슈 일으키기도 있다. 글로벌 IT 기업들은 기업고객에게 무료로 새로나온 시스템을 테스트 하게 하고, 곧 업무 프로세스에 녹아들면 라이센스비를 안정적으로 받아간다. 새로운 버전, 새로운 프레임으로 '잘 모르는' 임원들과, '시스템 만능주의자'들을 유혹한다. 물론 엄청난 돈이 잘 모른채로 나가고 있으면서도.


ERP가 이제 새삼스러운 단어가 아니다. SAP 등 우리가 아는 글로벌 기업부터 국내 기업까지 이 시장에서 기업 가치에 기여했다. 하지만, ERP가 깔릴 초창기에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직원들의 공감을 얻기 전에 실행한다든지, 표준 직무와 업무내용이 정리되지 않은채로 진행되어 정말 필요할 때 오히려 안하니만 못한 일들을 만들어냈다.


ERP 사상 최악의 실패와 소동 톱 10

http://www.itworld.co.kr/print/54677

- 90년대와 2000년대는 잘 모르는 것과 싸우느라 힘든 시기였나보다.


물론 이런 우여곡절 끝에 ERP는 기업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엑셀과 많은 종이 서류를 만들던 시기를 벗어나서 속도감 있게 비지니스 프로세스를 견인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제는 오래된, 바뀐 비지니스 환경에 맞게 새로운 ERP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더 이슈인 것 같다.


‘그 후로 10년’ ERP가 돌아온다

http://www.ciokorea.com/news/11183?page=0,1

- 이건 아파트 재건축에 대한 고민과 다름없다??

- 기업이 ERP 도입에 대한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학습효과로 보다 주도적인 ERP 2기를 보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기업 내 IT부서 외 조직에서 이런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다. 특히, 새로운 어떤 시스템을 깔아야 하고, 무엇이 우리 비지니스와 맞지 않는지 별로 관심이 없는 리더들 말이다. 이들은 사실 아들 생일에 새로운 장난감을 사주는 기분으로 새 ERP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때로는 프로세스의 부분적인 것을 교체하는 것으로, 어떤 것은 큼지막한 고급 장난감으로.


이른바 '잘 모르는 사람'들이 요즘 뜨는 '잘 모르는 것'을 하면 잘 될 거 같아서 '잘 모른채'로 열심히 하는 것.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보지도 않을 오답노트를 만들던 고등학생부터 매년 새로운 다이어리로 더 정교하고 고급진 자신의 일상 프로세스를 만들겠다는 노력. 쓰지 않을 다이어리 어플을 사 놓고선 안도하는 모습. 도구가 내용을 도와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내용이 도구를 불러온다.




피터 드러커는 먼저 프로세스가 정리되고 난 후 실행 시스템으로 어떻게 실행할지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것은 ERP를 설계하기 전 업무 프로세스부터 정리하는 바른 과정과도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인건비 제외) 엑셀로 만드는 기업은 엄청난 양식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들이 도움을 주긴 주었나? 아닌 프라모델 하나를 어렵게 만들고 몇 번 가지고 놀다가 만 것인가?


전략기획을 하면서 이런 리더들을 많이 본다. 툴을 더 정교하게 만들면 비지니스가 정교해질 거란 믿음. 아름다운 믿음이지만, 중요한 건 어디까지 디테일하게 하느냐의 고민이다. 완벽한 툴이 직원들의 완벽한 일하는 방식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 그런데, 예전에 TED에서 말콤 글레드웰이 남긴 하나의 예화가 기억난다.


말콤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 노든 폭격조준경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

https://www.ted.com/talks/malcolm_gladwell?language=ko

- 완벽한 가정이 성립되어야만 이루어지는 정교한 모델

- 의외의 간단한 해결방법이 있다

- 작은 하나의 문제를 보다가 큰 원인을 놓치지는 않는가


KPI를 정리하고 평가하게 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이걸 더 쪼개고 나누고 검증한다고 비지니스의 본질이 달라지나", 더 정교한 직원들이 공유하는 툴을 만들 때도 "이걸 다 이렇게 쓰면 직원들이 이해하려고 할까". 왜 리더 본인은 '아이에게 이야기 하듯' 해야 좋은 보고라면서, 직원들이 쓰는 시스템은 이렇게 더 정교하고 어렵게 만들게 할까. 어떻게 하면 될까.



1. 과도한 입력을 해야하지 않는가


SCM 시스템을 새로 깔 때의 일이었다. 현지 원료부터 작업지시서를 만드는 모든 것을 한 번에 공정을 보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취지는 좋았다. 리더들에게. 하지만 실무자들은 전체 디테일을 모두 수기로 시스템에 입력해야 하는 일을 해야했고, 과도한 입력 시간 덕분에 평가 해보기도 전에 이미 지치고 계속 활용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시간이 지나고, SCM을 만들 때의 인물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후 후임자들은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모두 그대로 쓰고만 있었다". 누구도 이 툴을 받고 신입이 되고 아무 말 없이 주어진대로 엄청난 입력 시간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성스러운 도구가 되어 누가 이것을 뭐라고 하거나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면, '잘 모르는' 리더에게 불만이 많은 직원 취급 받기 쉬운.. 지금도 그러고 있다.



2. 사용자가 이해 못하는 도구들


영업부의 신입사원은 오늘도 선배들에게 혼나고 있다. 의사결정을 잘못하거나 시킨 일에 마감을 지키지 않은 게 아니다. ERP에 입력하는 숫자를 틀리고 승인을 하지 못해 시간을 다투는 일이 어그러진 것이다. 물론, 이것을 세심하게 가르쳐 주는 선배도 없었다. 그런데,, 그게 영업사원의 핵심적인 역량일까? 오죽하면 신입 영업 직원들이 배우고 싶은 1순위가 "좋은 거래처를 확보하는 것"이나 "기존 A급 유통망을 더 잘되게 하는 것"이 아닌 "ERP 잘 다루는 방법"이었을까. 그런데 또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어디가 잘못된 것일까? 회사 내 IT부서가 ERP를 깔고 사용자 중심으로 편리한지 한 번 더 피드백을 받아 전체적으로 바꾸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3. 도구가 먼저가 아니다. 패러다임이다.


시장이 바뀌고 있다. 전략은 늘 상시로 유연하게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기계를 매월 바꾸어야 하는 공장이 있다면, 기계를 계속 새로 사오는 게 먼저인가, 어떤 기계가 필요한지 아는 게 먼저인가. 우리는 늘 '해야 하는 목적'이 아닌 '해야 할 일'에 배트가 먼저 나가고 만다. 바쁘니까. 생각해 볼 틈이 없어서. 무엇이 필요한지도 모르면서 월급을 받고 이것저것을 사고 후회해 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집단으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심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추구하는 패러다임이 먼저다. 큰 것을 먼저 보자. 시험 전 날 작은 범위를 보는 게 아닌, 시험 범위가 맞는지 먼저 생각해보아야 한다.



덕분에 오늘 기업의 ERP는 덕지덕지 붙어 있다. 엑셀로도 다 안되고 ERP 하나의 시스템으로도 다 안되어, 그것이 모인 포탈이 만들어지고, 가끔 피곤하면 접근 경로를 헤매게 되는. 솔직히 리더들이 한 번이라도 이것을 써 본 적이 있나? 그리고는 또 다른 엑셀 파일을 몇 메가에 걸쳐 다시 만들고 있다. 그 시간에 다른 것을 하면 성과에 더 좋을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정보 처리가 기업 경쟁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