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공간의 크기는 어떻게 결정되어야 하나
시중에 주요 상권을 다녀보면 점점 매장의 크기가 커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새로 생긴 쇼핑몰이 대부분 외곽에 있고 외곽으로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서는 공간의 편의성이 더 커야 하고 자연스레 대규모 면적으로 쇼핑몰이 오픈하게 되는데 상대적으로 단위 매장의 면적도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남 스타필드나 판교 더 현대 등 새로 생기는 쇼핑몰의 크기와 위치에 주요하게 작용합니다. 부동산 가치를 측정할 때 같은 돈이면 중심지에는 작은 면적을 구하지만 외곽으로 가면 같은 가격으로 크고 새 주택을 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른 이유는 시장에 차별화를 부여하기 위해서입니다. 갈수록 플래그십 샵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매장을 통해 브랜드를 알리는 말하는 용도로 쓰는 점포를 뜻합니다. 고객은 단순히 구매를 하는 목적으로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자체를 소비하기 위한 경험을 보유하기 위해 공간을 찾는 것으로 바뀌면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공간이 함께 확대되고 있습니다. 과거와 달리 강남이나 홍대, 명동 같은 대형 상권을 가 보면 물건만으로 빼곡하게 차 있는 큰 매장을 많이 볼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 신제품과 함께 브랜드의 히스토리나 브랜딩을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체험 공간이 함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고객이 전혀 사지 않을 것 같은 제품을 전체적인 라인 업 설명을 위해 마치 전시를 한 듯이 진열한 매장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현실적인 것입니다. 옆 매장이 커지니까 함께 커지는 것입니다. 같은 상권 내에 비슷한 아이템을 다루는 매장이 있다면 고객은 이왕이면 보기 좋은 매장에 먼저 찾아갈 것입니다. 옆 매장이 더 새로 크게 오픈을 했다면 아무래도 우리 매장을 찾는 고객 일부는 그 매장부터 방문하고 수요하는 제품을 구매할 확률이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로드샵이 몰려 있는 상권에서는 옆 매장이 바뀌기 시작하면 인근 매장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대부분 인테리어 공사나 매장 확장 등의 대응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매장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이런 외부적 경쟁이나 유행을 열심히 따라가다 보면 매장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빠른 행동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매장이 커진다는 것은 공간에 쓰는 비용이 동시에 늘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작은 매장이 커지기 위해서는 입지에 대한 추가적인 지불, 인테리어 및 외관에 대한 공사 비용, 디자인이라도 바뀌면 디자인 설계에 대한 비용 등 기본적으로 매장을 운영하기 위한 매몰비용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시작입니다. 더 큰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서 더 많은 재고가 필요할 수 있고 더 많은 직원을 쓰고 더 많은 관리비를 매달 써야 하는 유지에 대한 비용도 늘어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매장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 매장에서는 어떤 방법으로 운영되어야 할 지 고민이 더 필요합니다. 비용을 더 들이고도 그만큼의 매출이나 이익이 나지 않는다면 실익이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명동 등 주요 상권에서 매장이 자주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략적인 선택으로 매장 입퇴점을 결정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용을 감당할 이익이 나지 않아서 브랜드가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보기에는 자리가 좋은데 막상 운영해보니 매출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과연 이 브랜드에 그 자리, 그 정도 크기의 매장이 필요했을까요?
자주 저지르는 실수 중의 하나가 진열량이 매출을 올려준다는 믿음입니다. 매장이 커지는 게 더 좋다는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100평의 매장에서 1억의 매출이 매달 나오는데 200평으로 넓히면 왜 2억이나 그 비슷한 이익율이 나오는 것이 된다고 봅니까? 진열량 우선 주의자 들은 전에 매장이 작아서 상품의 종류나 재고량을 적재하는 것이 약했는데 매장을 키우면 재고도 더 많이 담고 일시적 품절로 인한 고객 수요를 커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매장에 치약 박스를 20개 쌓아서 진열하는 것과 40개 쌓아서 진열하는 것이 2배의 매출 차이를 보장할까요? 아니면 10개 종류의 치약을 진열하다가 20개 종류의 치약을 진열하면 2배의 매출이 나올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우리만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매장이 존재하는 이유는 제품의 브랜딩이 고객 가까이서 보여지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진열하는 종류가 2배로 늘어도 매장 크기에 비해 종류가 많아 빡빡하게 진열되어 어떤 것은 매장에 분명히 있는데 고객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채로 매장을 떠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열량이 2배로 늘어도 찾는 단품이 없다면 나머지 재고들은 무의미한 숫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매장에서 고객에게 상품이 잘 보여질 필요가 없다면 오프라인 매장은 많이 필요 없고 온라인으로만 팔거나 지하철 신문 판매 부스처럼 말만 하면 주인이 꺼내서 주면 될 일입니다. 진열량만 두 배 하면 매출이 두 배가 나올 거면 아예 물건만 쌓아두기만 하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우수한 매장은 이런 식으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비싼 임차료를 내는 것을 그 이상의 브랜딩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브랜딩은 상품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애플 스토어는 애플 제품이 돋보입니다. 외관이 화려한 매장도 인테리어가 화려한 매장도 판매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분위기와 스토리텔링을 위해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매장이 브랜드가 고객과 돈이라는 가치로 거래하자는 가치와 무관한 것으로 덮여 있거나 아예 없다면은 오프라인 매장으로서 기능을 다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열량이 매출과 연결된다는 주장은 브랜딩을 완전히 배제한 주장입니다. 공급이 수요에 뒷받침 되지 못했던 시절에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매장에서 상품이 잘 보여지지 못하면 이런 양적인 사고 방식은 고객에게 어필 되지 않습니다. 잘 보여지는 것이 기본이고 그 다음 일시적 품절 등의 다른 내용을 해결하는 것이 맞습니다.
매장이 큰 게 더 좋다는 것을 맹목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고객이 더 많이 들어올 것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수용 인원은 더 늘어날 것입니다. 매장이 너무 잘 되어서 고객이 많아서 들어갈 수도 없고 매장 안에 있는데 불편하다면 이것은 고객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말이 되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매장 근처를 지나가는 고객의 입점이 매장 크기로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고객이 매장을 찾는 이유는 제품의 매력과 브랜딩에 대한 호기심입니다. 우리는 안되는 브랜드가 좋은 쇼핑몰에서 파리 날리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매장의 위치가 좋아도 고객이 매장 안으로 발을 내 딛는 것은 컨텐츠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한 번은 프로모션으로 들어올 수 있지만 컨텐츠에 실망한다면 다시는 발을 딛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컨텐츠에 대한 개선 없이 매장을 키우는 것은 비용만 증가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매장이 크다고 고객에게 좋은 브랜드로 인정받으려니 하는 생각은 매장이 아파트나 휴게실 같은 성격의 공간일 때 가능한 논리입니다. 오히려 공간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기존의 작은 면적으로는 운영되던 매장이 키우고 나서는 운영이 안되는 실적으로 문을 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매장의 크기는 매장을 통해 고객과 무엇을 커뮤니케이션 하겠다는 의도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와 체험적 공간을 제공하고 싶으면 그 정도 의도가 다 드러나는 공간으로 매장은 운영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의도가 없는 곳에서는 매장은 철저히 주변 매장의 상황을 보고 실리적인 운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토목공사 같이 무리한 공간 확장이 실적을 키울 수는 없습니다. 아무 것도 담보된 게 없습니다. 다만 확실히 비용을 증가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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