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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Mar 07. 2017

전략 기획자의 퇴근

기획 일은 어디만큼 하면 마칠 수 있나


기획자는 자신의 야근을 기획한다?



회사에서 야근 많이 하는 부서로 '기획'이 들어간 부서가 심심치 않게 들어갑니다. 연구기획, 전략기획, 재무기획, 마케팅 기획... 물론 기획보다 더 야근 많이 하는 부서도 많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기획'이라는 부서는 일의 본질이 야근을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벌어지지 않은 일을 모색하는 것은 일이 실현될 때까지 계속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손을 대면 더 댈 수 있습니다. 아직 누구나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모두 가설의 형태로 존재할 뿐 사업에 있어서 이렇게 하면 이거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 정도면 혼자 야근하면서 그려려니 하고 업무를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획은 여기에 더한 것이 있습니다. 작게는 팀장 혹은 실장, 크게는 경영진과의 컨센서스가 기획의 아젠다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실적이 실시간으로 확인되는 일이라면 실적으로만 평가 받을 수 있겠지만 기획이란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 실현될 때까지는 필연적으로 경영진 혹은 주주들의 입김이 많이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획 안을 애써서 만들어도 그것이 경영진이나 주주들의 생각과 맞지 않다면 대부분은 야근과 특근으로 다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정말 하기 싫은 시간을 인고해야 합니다.



이것만 들으면 기획 일은 마치 개미지옥 같습니다. 보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녹초가 되어 있고 대부분 실현시킬 단계에서 번아웃되는, 늘 불이 켜진 사무실 같은 일 말입니다. 그래서 상사의 수명업무가 주되고 본질적인 핵심 업무가 정의되어 있지 않은 기획 업무는 회사 누구나 들어가기 기피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그래도 생각이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을 자리에 앉혀다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을 시키는 게 기획이라면 기획은 본연의 일을 하기는 커녕 퇴사를 유발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기획자에게 퇴근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하는 보통의 평범한 삶 같은 퇴근 말이죠. 전략적 아젠다를 작성할 때나 실제 계획을 실무에 투영하여 진행할 때나 기획자는 고유의 일을 맺고 끊는 게 있게 일하고 싶어합니다. 물론 집에 안 가는 상사를 만나면 어려운 일이지만요. 기획자는 얼만큼 일하면 '다 했다' 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끝 없을 것 같은 기획 일을 매번 사무실에서 치여가면서 야근하는 게 당연할 걸까요?



경험적으로 이런 접근은 기획 업무를 핵심 고객이 누구냐에 따라 나누어봄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획 단계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기획자가 만든 기획안을 접수 받는 고객이 달라집니다. 전략의 태동은 항상 경영진 등 윗선에서 출발합니다. 물론 전략 기획부서 스스로 창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략의 실행은 실무자들에게 환영받아야 실행이 잘 됩니다.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죠. 이런 경우에는 디테일까지 소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흐름을 알면 기획 일은 무조건 밤 새는 일은 아닙니다. '어디까지 하면 되겠다'라는 자기 나름의 선이 있으면 어차피 더하나 덜하나 그 선 위에서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 해본 일이라서 혹은 지나친 의욕으로 끝이 없는 기획 일을 끝 없이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만에 하나 그런 경우 '유레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뻔한 흐름이 뻔한 결론을 낳는 경우가 많기에 실제적으로 이런 야근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의 일을 제대로 끝까지 마무리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아젠다 수립은 초안에 100%를 쏟을 필요없다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100%의 일이 될 수 없습니다. 우선 결과 예측이 어렵고 주관적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일은 자료 수집과 논리적 전개가 충분히 되면 거기서 더하는 거나 덜 하는 거나 그 다음부터는 보고서에 줄 긋는 수준이 됩니다. 보통 기획부서의 팀장이 압니다. 더 해도 안 나온다는 것을 말이죠. 그럴 때는 거기서 접고 얼른 보고하는 편이 낫습니다. 전략적 방향은 실무자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입니다. 지금 하는 일만 하기에 바쁘기에 미래를 많이 고민하지는 못합니다. 실무자 중에서 미래를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무를 대충해서 실무를 모르거나 하나의 부분만 이야기 하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못 끼워 맞추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이것은 경영진의 업무입니다. 기획자는 멍석을 놓는 역할을 합니다. 본격적으로 소스를 만드는 것이죠. 초안을 만들고 경영진의 직관과 기획자의 데이터가 조율하는 시간을 필연적으로 갖게 됩니다. 경영자의 능력이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일의 속성 때문에 어차피 기획자의 안이 100%일리가 드뭅니다. 그렇기에 이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본격적인 라운드는 경영진과의 컨센서스를 맞추면서 질의하는 식으로 맞춰 나가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경영진도 미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게 나오고 그 직관이 오래갈거란 보장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모두 기획 안에서 바라는 것은 '안심'할 수 있는 뭔가를 발견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회사 보고서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이죠. 보통 권위를 인정받은 기관이나 컨설팅 회사, 구루가 말한 전략적 방향이나 보고서가 이를 대신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도 기업의 기술이나 정책, 그런 출신의 인사 영입 등이 이 역할을 보완합니다. 그렇기에 기획자는 이것을 미리 기획 안에 준비합니다. 전략적 방향이 아무리 신선하고 탁월하다고 해도 이를 근거할 내용이 안심되지 않는다면 이 보고서는 자신의 생각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채택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기획자가 해외 사이트 리서치를 잘 해야 하는 게 무리한 논리는 아닙니다. 안심할 근거를 여기저기서 찾아와야 하니까요. 이것은 미리 준비하면 좋지만 역시 이것도 끝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젠다에 대해 핵심적인 1,2개면 됩니다. 3개 이상부터는 그냥 글자로 보이지 그것을 중요하게 읽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입니다.



기업에서 중장기 사업 계획을 종종 세웁니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 웃긴 이야기로 들리기도 합니다. 당장 3개월 뒤 시장 변화도 희미한 상황에서 10년 뒤의 사업 추세와 근거를 정량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기획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시장이 변할 것인지 기술적 흐름을 5년 뒤부터는 거의 공상 소설에 가깝게 적어냅니다. 하지만 이 역시 '안심'을 위한 장치입니다. 이 자료 작성에 디테일에 많은 시간과 수정을 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안심' 할 수 있는 핵심적인 근거를 몇 개 찾는 게 디테일로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 훨씬 조직 내에, 자신을 위해 효과적입니다. 비록 그게 누구나 알 수 없는 숫자라고 해도 숫자 자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게 어딘가에 있어서 보고 싶을 뿐이니까요. 모두 실제는 오늘과 단기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선도하는 흐름은 몰라서는 안되기 때문이죠. 그 정도면 됩니다.





실행은 실무자의 100% 동의가 필요하다



기획 안에서 전략적 아젠다 수립에 100%가 아닌 80% 정도의 힘을 쏟고 나머지 20%를 맞춰 나가는 것이라면, 전략의 실행은 바뀐 고객을 대상으로 같은 조건이 성립합니다. 이번에는 그것을 실행할 실무진이죠. 전략적 큰 방향이 정해지면 구체적인 이니셔티브가 정리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 역시 기획자가 다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실제로 일이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디테일과 선결 조건들이 현장에는 수두룩 합니다. 이런 것을 모두 알 수 없는 기획자는 방향을 토대로 핵심적인 의도와 키워드를 가지고 실무진을 만나봐야 합니다. 퇴근이 가능한 수준은 실무자의 100% 공감대 형성입니다. 물론 모두가 공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신흥 종교는 세상에 없습니다. 다만, 조직에서 사업의 진정성이 있는 핵심적인 사람들은 100% 공감해야 합니다. 아젠다 수립과는 달리 실행안은 구체적인 결과물이 있어야 합니다. 답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죠. 오히려 아젠다 수립은 여백을 남기면서 실행에서 운신의 폭을 만들어 주는 경우이고 누구나 모르는 미래에 많은 시간을 쏟을 이유가 많이 없다면, 실행 방안은 누구나 끝을 예측할 수 있는 수준이며 결과물의 형태 자체가 가시성이 있어야 하기에 실무진과의 타이트한 논의는 계속됩니다. '위에서 시키니까 그냥 해'가 아니라 여기서부터 본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죠. 물론 전략적 아젠다를 느슨하게 짜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원래 실행 방안은 아젠다와는 다른 종류의 내용이라는 것이죠.



기획자의 퇴근은 실무자의 공감 이후에 이루어집니다. 실무자의 공감은 '빼도박도 못하게 만든다'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한 번 시작된 실무진의 프로젝트 진행은 이후 돌이킬 수 없고 그렇기에 실무 실행에 대한 기획은 시작 단계에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90%는 그리고 출발하는 게 좋습니다. 보통 회사에서 시간이 없다고 지나치기 쉬운 세부 가설 정의나 스케쥴 수립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과의 형태와 질을 상당히 바꾸어 놓습니다. 물론 실무자가 마냥 100% 자진해서 이것을 기쁘게 할 리는 없습니다. 아젠다의 영역과 실행 방안의 영역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가 있는 것이죠. 이것은 아젠다에서 미리 정의가 되어야 합니다. 기획자가 실무의 어디까지는 대강 알고 있어야 정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정해진 아젠다의 범위 하부에서만 실무자는 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죠. 모두가 시작부터 아젠다를 정하면 좋겠지만 그런 회사는 스타트업 외에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실무자가 누구도 공감하지 않는다면 아젠다가 잘못될 확률이 크겠죠. 이런 일은 드뭅니다. 경영진과 기획자가 함께 무능하고 귀를 닫은 조직이 아닌 이상 식물 아젠다는 나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찌든 회사는 이런 일도 있습니다. 누구도 하기 싫어하고 경력에 도움이 안되는 일을 강요하는 것 말이죠. 몇 일을 회의해도 동의가 안되면 실행안은 수립될 수가 없습니다. 이건 안하는 게 맞습니다.



실행 방안이 스케쥴까지 정리되면 기획자가 할 큰 일은 넘어간 것입니다. 기획자가 PI가 되어 끝까지 프로젝트를 보거나 이후에는 모니터링을 하는 식으로 역할이 재정리 됩니다. 이런 경우 캐주얼한 스킨십으로 일이 진행되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채워주면 될 일입니다.






기획자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있는 회사는 이렇게 하면 대부분 일의 진척 단계에 따라 기획자가 만나는 사람, 취하는 포지션이 조금씩 달라지는 변화가 생깁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기획자가 경영진의 수명 업무 중심으로 버티는 회사는 일의 진척 단계의 변화에 상관 없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이 모두 무색해집니다. 이건 기획자의 문제라고 할 범위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문제는 작년에 브런치에서 많이 다룬 케이스 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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