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을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정치 공학'이라는 말 아실 겁니다. 정치를 하는 방법이죠. 주로 실리보다는 명분이 앞서는 일이 많습니다. 아무리 실제적인 이익이 눈에 보여도 결코 명분 없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실리를 위해 명분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을 하죠. 이게 지나치면 우스운 상황도 생깁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하게 되는 것이죠. 그게 눈에 보이니까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좋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업에서도 정치는 많이 일어납니다. 명분 다툼을 합니다. 때로는 명분이 중요한 의사결정에 오판을 하게 합니다. 실은 오판인 줄 알면서도 책임자가 윗선과의 명분 때문에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과는 실무자만 책임을 뒤집어 쓰는 일이 생깁니다.
그 중 하나가 혁신입니다. 혁신이야말로 명분이 필요합니다. 혁신은 지난 수십년 동안 경영 현장에서 많은 명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혁신을 한다고 새로운 명분을 만드는 트랜젝션 속에서 많은 이들이 명분을 등에 업고 승진을 했고 기득권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혁신을 실제 해도 명분 밖에 있으면 눈에 띄지 못하고 밀려나게 됩니다.
오늘은 그 중 하나인 '혁신을 어디에다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혁신을 추진하는 방법은 매우 어렵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을 어떤 방법으로 혁신할 지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방향을 알지 못하기에 해외의 우수 사례를 참고하거나 국내에서 시도하는데 반응이 이제 좋은 것을 따라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게 맞는지를 떠나 혁신을 조직의 어디다 어떻게 할 지에 대해 명분이 필요하게 됩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기에 이런 것에 명분이 보고서라는 형태로 덕지덕지 붙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혁신을 하자는 것입니다. 멋진 말입니다. 지금도 훌륭한데 이걸 더 업그레이드 해서 위대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화석이 된 공룡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 생각 자체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방법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어떤 것까지 실험이 가능한지 한계를 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존 브랜드의 브랜딩에 부딪히지 않는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 프로모션, 유통망은 새로 뭔가 실험을 하는 데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것을 하게 되면서 전에 포섭하지 못한 경계성 고객을 유입시키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신선함을 불어 넣습니다. 이런 시도는 오히려 꺼리는 게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새로운 생산 방식이나 CRM 방식도 실험이 부족하면 부족했지 실험을 하지 말아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프로세스의 개선은 브랜딩을 다음 단계까지 도약하는 데 항상 먼저 시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과 다른 것이 있습니다. 사업 모델을 새롭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계약 관계가 완전히 새롭게 정의 되거나 가장 큰 비용과 매출이 잡히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 말입니다. 다양한 주체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 방식을 다시 정하는 등 마이클 포터가 주장한 5가지 힘의 모델에 해당하는 영역이 새롭게 재편되는 경우 말입니다. 예를 들어 유통망을 전체 직영 체제로 바꾼다든지 상품을 주로 팔던 것을 상품과 관련된 서비스를 파는 것 등 업태를 재정의 하는 것 말입니다.
이런 것이 작게, 별도로, 실험실에서, 신규로 진행되지 않고 기존에 잘 되던, 매출이 큰, 자산이 많은, 유명한 브랜드에 빠르게, 즉각적으로, 동시에, 단기간에 해야 하는 것은 순전히 '명분'에 달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탁 판매로 두 자리 수의 순이익율을 내던 사업을 직영 체제로 전체 다 바꾼다고 생각해 봅시다. 인프라를 만드는 데 많은 돈을 써야 합니다. 새롭게 직원들을 구해야 합니다. 전에 알지 못하던 영역에서 많은 돈이 생깁니다. 실험을 위해 비용 지출이 단 번으로 마치지 않습니다. 수정하고 보완하는 데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갑니다. 이런 작업을 기존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붙여서 합니다. 왜 일까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다 하면 당장 평가에서 여유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실험하는 영역의 이익 계산을 별도로 하지 않으면 기존 사업 영역의 실적이 물타기를 해 주기에 당장은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유명하고 크고 고객이 잘 알만한 이름에다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그 뒤에 숨어 있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별도로 실적 공개 하는 것을 꺼립니다. 당장 잡아 먹을 것도 아닌데 뒤에서 버티는 것이죠.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다 다른 혈액형의 사업 모델을 수혈하는 것은 회사 정치인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혁신을 한다는 명분이 필요한 사람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임원급이 지정합니다. 그 사람이 혁신이란 타이틀을 가져가서 라인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 사람을 좋은 자리에 앉히고 거기서 혁신을 실험하게 합니다. 다른 혈액형을 수혈 받는 지는 지금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부 단기간의 실적으로 인정을 받고 그 자리를 뜨면 그만이기 때문이죠.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다 하는 것은 고민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게 쉬운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보고서 쓰기도 쉽고 말하기도 쉽고 생각을 안하면 버틸만한 자금력이 있는 데서 하는 게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이 아니고 기존의 브랜드 틀에 갇혀서 새로운 모델을 얹게 되면 사자 갈기에 코끼리 코가 만들어 지게 됩니다. 업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특히 트랜젝션이 발생하는 성격을 알지 못하고 겉만 흉내내니까 그런 것입니다. 어디서 자금의 유출과 유입이 만들어 지고 그것의 빈도는 얼마나 되는지 정말 고민하지 않는 것이죠.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해야 하는데 설명하고 리서치 하고 생각하기 힘드니까 그냥 커 보이는 데 붙여서 안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나쁜 혁신의 주제는 없습니다. 나쁜 태도와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그 주제들은 언제가는 성공했던 것들이고 어디서는 지금도 유효한 것입니다. 다만 누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방법론이 있습니다. 기존 사업 모델에 이질적인 사업모델은 기존의 틀 위에서 할 실험이 아닙니다. 실험은 실험실에서 해야 합니다. 작고 빠르게 만들어서 빠르게 확산해야 합니다. 거대한 공룡보고 당장 이 춤을 따라 하라고 전체 안무를 보여 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안무가 맞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걸 빨리 안한다고 몰아칩니다. 공룡의 잘못일까요? 혁신의 조급증에 빠진 기업은 직원들을 몰아 부치지만 실적은 나아지지 않고 혁신이라고 고객이 말하지도 않습니다.
이거 정말 몰라서 안 하는 것일까요? 혁신이 안 되면 '정치 공학'을 기업 내부에서 찾아 봅시다. 어떻게 생긴 명분이기에 이토록 다른 사업 모델을 붙여 놓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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