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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Mar 10. 2016

혁신을 혁신적인 방법으로 하기

오늘도 야산을 누비는 직원들

많은 기업에서 혁신은 어제 오늘의 화두가 아닙니다. 삼성의 '신경영' 전에도 사실 혁신은 다양한 이름으로 요구되고 요구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즐겨 다루는 주제인 '실체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의 비극은 여기서 많이 드러납니다. 혁신이란 것이 기업의 조직부터 평가체계, 핵심역량에 대한 선택과 집중, 재무 구조까지 흔드는 내용이라 혁신마저 실체를 모르는 사람의 '관료주의'나 '상명하복'식의 문화로 빠진다면 기업은 향후 진척마저 담보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질 수 있습니다. 목적을 위한 목적이 만들어지게 되는 셈이죠.


국내 모 글로벌 기업에서는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소위 '혁신캠프'를 열어 각 부서별로 돌아가면서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받았습니다. 사업장이 있는 지방의 이름난 산을 중심으로 저녁부터 아침까지 돌아다니며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00시 00분까지 어느 장소 찍기', '혁신구호를 틀리지 않고 전 팀원이 다 부르는 것' 이런 것을 하면서 지정된 코스를 돌게 되는데요. 중간에 소리가 작거나 보물찾기 같은 이정표를 놓치면 곤란한 상황에 조교와 만나는 아주 한국적(?)인 혁신 캠프입니다. 웃지 못할 게 이걸 실행한 모 경영자가 이 일 이후 일부 실적이 개선되었다고 했는데요, 몇 년 지난 지금 이 회사는 유례없는 신성장동력 부재 및 기존 사업에서 패스트도 아닌 슬로우 팔로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괜한 과장님, 차장님들 발목 부상, 근육통만 가득히 무용담처럼 사무실에 깔리게 되죠.


가만 보면 이런 일이 이 회사에서만 일어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신입 교육을 군대와 다름 없이 하는 한국의 대부분 기업들은 가끔 '대학 신입생 군기잡기' 못지 않은 실력을 자본과 결합하여 놀라운 장면들을 많이 보여줍니다. 제가 실제로 옆에서 본 것만 '해병대 신입 캠프', '국토 원정대' 등 이게 혁신적 사고나 창의성 등 요즘 시대가 원하는 인재를 기르는 교육인지, 단지 몸의 고통을 통해 받아들이는 충성심과 인내의 사례를 만드는 것인지 모를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기업의 야근 문화를 버티기 위해 필요한 체력 검정이라면 인정하겠습니다.


TFT는 어떤가요? 대부분 회사들이 혁신이란 이름을 꺼내면 알러지 같이 꺼내는 게 TFT입니다. 말은 맞죠. 하지만 구성과 운영 방식을 보면 슬프기까지 한 곳이 많습니다. '혁신'을 위해 모인 게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일'을 해치우기 위해 모인 사례들이 많죠. '현금흐름표' 작성을 위해 재무라인의 TFT가 구성된다면 이것은 과업 설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이것을 통해 무슨 기업 혁신이 이루어질까요? 또 기업 문화나 프로세스를 바로잡깅 위해 이해도도 없는 사람을 현업에 필요성이 적은 순서대로 앉혀놓고 혁신을 기대하는, 아니 혁신이 저절로 되기 바라는 임원들도 많이 있습니다. 자발적이지 않으니 결국 팀은 구성했지만 팀웍이 아닌 그 중 노예 한 명, 혹은 혼자 답답한 팀장만 모든 총대를 메고 시스템이 아닌 보고서를 만드는 일이 벌어집니다. 상하좌우의 밸류체인과 연결되지 않는 TFT는 보고서로만 그치는 일이 많죠.


이런 경우 혁신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치도 취지와 맞지 않게 결론 나는 일이 많습니다. 아까 혁신캠프를 운영한 글로벌 회사는 성과 목표를 정할 때, 정하는 마지막 날 퇴근 전에 모두 일 잘한다는 과장님 근처에 모여서 서로 합을 맞춥니다. 올해는 '000억 관리로 하자'. 이런 식이죠. 지표 자체가 '관리'입니다. 혁신의 실체가 관리가 될 수는 없겠죠. 목표 자체가 무엇으로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 없습니다. 회사 내에 있는 제안 제도는 누가누가 자질구레한 것을 많이 올려 포인트를 받나로 변질됩니다. 그게 포인트가 되니까 혁신이 필요한 큰 프로세스 맥락에 의한 제안이 아니라 '점심 시간에 강제 소등 합시다' 수준의 제안이 넘쳐나고, 그것도 적게 내면 인사고과에 반영한다고 운영주체가 으름장을 놓는 웃기는 일이 발생하는 게 현실입니다.


혁신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위의 사례를 안하면 일단 됩니다. 여기 들어가는 직원들의 시간과 에너지, 비용만 아껴도 매년 연례행사가 되는 '비상경영'에 보탬은 될 겁니다. 혁신은 상당히 체계적이고 전격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1. 조직적으로 팀 구성

전체 직원에게 혁신을 바래서는 안됩니다. 우수한 인재를 마구 뽑아서 이들이 회사를 통째로 바꾸길 바라는 것은 스타트업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조직이 커지고 서로 구조를 갖기 시작하고 조직 간 이해 관계가 발생하는 순간 전사적이면서 한 방에 되는 혁신은 하드웨어에 의한 강제적 '변화' 외에는 기대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적습니다. 기존의 미사여구를 다 떼고 가장 현장에서 부조리를 많이 알고 있으면서 실행력이 있는 인재들로 혁신을 구상하고 테스트 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이들의 조직화 방법이나 업무 프로세스도 규정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자체도 기존에 안되었던 것으로 말미암을 확률이 크기 때문입니다.


2. 작은 성공모델

중요한 것은 작은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전체의 수준을 한 번에 올릴 수 없습니다. 특정 컨텐츠 부터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프로세스가 하나에 다 연결되어 있는 부분 컨텐츠 중 하나를 모델 대상으로 잡습니다. 기본적으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먼저 바꾸고 언제 어디까지 바꿀건지 영역을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무리한 자금 투자와 인적 구조 변화를 검증되지 않은 것에 한 방에 쏟아부을 수는 없습니다. 회사 파일도 그렇지만, 모델은 여기서만 특수하게 쓸 수 있는 환경을 가지거나 모델 자체가 특정 인물에 의존하는 식의 것은 확장성이 부족해 시작부터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3. 기존 것을 제로 베이스에서

시장의 변화가 명확하다면 할 것은 기존의 모든 관념과 시스템을 포맷하는 것입니다. 팀에서는 '폐기'를 일부 골라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우상화하는 좋은 사례도 'ONE OF THEM'인 거죠. 시장과 고객, 경쟁사의 반응에 대한 귀납적인 추론이 충분치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가장 정교하게 계획되어야 할 것은 이 단계를 어느 것을 하고 어느 것을 생략하여 어떤 형태로 중간 결과를 평가할 지 모색하는 것입니다.


4. 다들 하려는 문화, 명확한 문제 인식

모델이 시운전에 들어가면, 이것을 조직 내부로 확산하는 것이 고역입니다. 중요한 것은 조직원들이 이것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없다면 만들어야겠죠. 만드는 방법은 자신들의 상황을 철저하게 인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과물부터 역으로 우리의 프로세스, 우리의 사명까지 시장의 변화와 경쟁사의 대응에 비해 얼마나 초라한지, 얼마나 구식인지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직원을 담담히 객관적으로 보게 해야지 억지로 가치를 투여하여 감정적인 훼손을 주진 말아야 합니다. 물론 모두 따라올 수 없습니다. 실패해도 해보잔 사람이 중요합니다.



교육방송에서 종종하는 '좋은 선생님', '좋은 부모', '좋은 부부' 등의 프로그램을 보면 관찰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참가자들이 자신의 실체와 자신이 자신이라고 믿는 관념과의 괴리를 인정하면서 변화의 노력을 시도해보려 하죠. 기업이 혁신이 없다면 분명 '관찰카메라'같은 것이 없어서일 겁니다. CCTV를 설치하잔 이야기가 아니라, 담담히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단 거죠. 자기 스스로에게 자기를 정기적으로 평가하라는 것은 하지 말자는 것과 같습니다. 그걸 알면 그러고 있겠습니까. 주변 사람들이 서로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주보고 친밀한 관계에서. 진정 혁신 하려고 하는 문화는 구성원들과의 친밀함과 객관성에서 나옵니다. 이것은 문화입니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조직, 업무 외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는 하나', '우리는 가족' 이런 식으로 외치는 캐치프레이즈는 공허한 퇴근길 차창밖 쓸쓸한 모습만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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