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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Apr 14. 2019

기획이 소설은 아니니까

경영을 과학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배울 때 많은 사람들이 경영학은 '스킬'이지 학문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사람 중에서는 오랜 기간 학문으로 가다듬은 경제학이나 공학 등을 전공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재무, 마케팅, 인사, 생산, 회계, MIS 등이 얽혀 있는 경영학은 이에 비하면 스킬들의 나열 정도로 보일 수 있는 비교적 최근 정립되고 있는 학문이니까요. 심지어 일부 경영학 전공생도 경영학에 대한 자조 섞인 '스킬론'을 믿고 있었으니 많은 경영학자들이 들으면 섭섭해할 일이기도 합니다.




회사 보고서는 소설인가 경영인가



그런데 직장을 다니면서 경영학이 여전히 학문이 아닌 것처럼 실존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때로는 인근 학문 중 하나인 경제학에 대한 회의론을 제기하듯 경영학도 이미 잘 된 사례를 결과론으로 정리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곤 합니다. 기업 현장에서도 과거 우수 사례를 따라 하다가 잘 안된 경우를 보게 되며 과거에 잘 된 기업이라고 해도 변화하지 못해 사라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니 뭔가 성공에 대한 정리가 결과론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경영학자의 책 중에 나중에 자신의 이론이 실패한 것을 다시 정리해서 또 책을 펴낸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실무에서 답답한 것은 경영에 대한 태도입니다. 단순히 보고서를 그럴듯하게 쓰고 연역적인 사고를 통해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가는 것은 사실 학문으로 보기에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게 소설인지 경영인지 알기 힘들 때가 더 많기 때문이죠. 실제 기업에서 기획을 하는 사람들이 토로하는 어려움은 '이게 정말 기획인가' 하는 직무에 대한 기대대비 낮은 업무 전문성이니까요. 물론 스킬 셋을 써서 논리적인 정리, 아는 사람은 인정하는 공식을 써서 신뢰를 얻는 것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경영이 실존하는 하나의 학문임을 드러내기에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사실 경영 이론은 근 10년 단위로 학자들이 정의하는 새로운 프레임에 정리되었을 뿐 이론이 현장을 리드한 적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존재감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과학의 특성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실제 일하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전에 경영계획이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다룬 칼럼을 본 기억이 납니다. 길게는 몇 개월에 걸쳐 모든 직원이 리서치하고 시장 동향을 정리해 우리의 역량을 정리한 다음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액션을 정리까지 했지만 그게 매우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계획을 세우다 지쳐서 실행이 힘든 것은 둘째치고 계획을 하나하나 할 때 계획에 대한 피드백까지 설계되지 않아 막대한 자원 낭비가 이뤄지는 안전장치 없는 대규모 프로젝트가 난립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죠.







프레임만큼의 프로세스



최근 '데이터 과학'이나 '애자일 방식', '조직행동론을 움직이는 기업 문화' 등의 콘셉트는 경영을 미시적으로 한 단계 발전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거시적인 사업 기회에만 집중했던 경영 전략에서 역량의 핵심이 내부에 있다는 전환과 그것을 증진하는 에너지가 무엇인지 밝히는 과정은 실제 일을 하는 모두를 변화시키고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죠. 특히 과학으로써의 경영은 복잡한 기업 조직과 사업 절차를 파괴한 새로운 흐름이 되었습니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어마어마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만 결과물은 검증되지 않는 IT 프로젝트를 반복해서 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보통 이런 식이죠. 고객 접점에서 신기한 것을 만들어 두고 고객이 좋아해서 많이 와서 구매할 것이다, 생산 과정에서 이런 정보를 추가로 제공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경영 정보를 한눈에 보게 만들면 성과의 어느 부분이 좋아질 것이다 같은 주제로 시작한 프로젝트들 말이죠. 말만 들어도 성과 측정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의외로 KPI를 만들면 신경 쓰지 않고 토론할 사람도 없어서 이런 일이 척척 진행되는 기업이 있습니다. 결과에 대한 검증이 되지 않는데 일을 만들고 하고 얼마 후 신경 쓰지 않아 어디 방치되어 있다가 또 비슷한 주제로 일이 만들어지고 과거에 했던 것을 또 하는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성과에 대한 검증이 즉시 되지 않아 그렇죠.




데이터 과학이 이끄는 경영 과학



데이터를 사용한 프로젝트가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기업마다 내부와 외부 데이터를 결합해 기존에 없던 인사이트를 얻기 원합니다. 이 역시 만든 결과물이 목표하는 프로세스의 어느 부분을 얼마나 증가시키는지 정확한 측정이 이뤄지고 그것을 고도화시키는 작업을 계속 해내야 의미가 있습니다. 데이터는 다음 주제와 그다음 주제가 나오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있는 주제를 더 잘하는 게 중요하죠. 사실 결과의 1%를 더 올리는 게 비즈니스에서는 큰 실적을 증가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데이터로 만든 서비스는 성과 측정이 계속 이뤄지고 개선하는 방법을 찾아 다시 실험하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데이터 '과학'이라고 부르죠. 실험을 하고 측정을 해서 차이의 원인을 찾아 다시 재실험하는 과학과도 같은 방식을 채택하니까요. 



데이터가 기업 활동에 자금만큼 의미 있는 흐름이 되면서 데이터 과학처럼 경영하는 실험이 경영 전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실험을 하고 측정의 차이를 밝혀 다시 실험하는 빠른 반응과 분석 과정을 거치는 것이죠. 그래서 서 기획의 최근 동향은 이론 프레임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검증하고 평가해서 다시 실험해서 검증 후 확산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 부분도 비중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냥 보고서만 쓴다고 생각하면 기획은 반도 하지 못한 것이 되겠죠.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실험하기 편한 조직이 필수입니다. 실험 결과, 팩트를 보고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고 빠른 실험과 검증을 위해 보고라인을 줄이는 것도 당연합니다. 직급의 부작용을 줄이고 역할의 단순화만 남는 식이죠. 개인 단위의 역량은 실험을 하는 팀의 근간이 되고 개인은 차별적인 역량으로 조직 내 각인이 됩니다. 조직 문화가 전략과 닿아 있는 부분이죠. 이런 일이 데이터로 일하는 게 당연한 IT 서비스 기업이나 커머스에서는 쉽게 벌어지고 있지만 아직 데이터가 아니라도 자신의 논리를 드러낼 수 있는 기업에서는 여전히 요원한 이야기이거나 이제 도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일부 계열사가 데이터 중심의 업태라도 모기업이 무관심이면 일과 맞지 않은 문화가 조직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타협이 아닌 탐구 조직



실험이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어느 순간 결과물에 타협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만들어 놓기만 하면 성과를 인정받는 분위기나 높은 사람이 만들라고 해서 만들었는데 그걸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게 공포스럽기 때문에 만드는 것에서 그칩니다. 결과물을 위해 온전히 들이는 논쟁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실험 결과가 두렵고 그게 과거 편견을 깰 수도 있다는 공포가 있는 것이죠. 실력 없는 사람이 드러날까 봐 머뭇거립니다.



논쟁은 조직의 리더부터 허용해야 합니다. 실험이 되는 경영 과학을 하기 위해서는 리더부터 할 말을 받아들이는 회의 문화를 적극 수용해야 합니다. 실험에 함께 참여하고 결과에 대해 실무자를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탐구해야 하는 것이죠. 기존의 추궁에만 머무는 리더에게서는 나오지 않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기존과 다른 리더의 정의가 나올 수밖에 없고 경영을 과학적으로 하기 위한 세대교체도 이뤄집니다.







모든 기획안의 끝에 실험과 평가, 고도화 과정의 사이클을 정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쉽게 할 수 있는 조직으로 인사 제도를 개편해야 하죠. 무엇보다도 지금 하는 일이 이슈성으로 사라지지 않고 정말 필요한 지향점이라면 주제를 타임라인으로 관리해서 계속 고도화되도록 몇 년이 걸리더라도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토론을 통해 결과를 향상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투자 안이 나온다면 어떻게 풀어갈지 실제적인 액션이 뒤따라줘야 합니다. 경영을 과학으로 만들면 성과의 증진을 체계적으로 볼 수 있고 새로운 방법론도 현장에서 바로 적용해서 쓸 수 있습니다. 물론 큰 리스크를 안고 사업을 추진하는 효율에서도 도움이 됩니다. 선점하는 게 중요한 이슈라면 실험은 더없이 좋은 포지셔닝을 만듭니다. 소설을 현실세계로 끌어오는 일에 보다 섬세한 설계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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