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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비전을 글로 읽는다

책 <아, 단단히끼였다>(2020,책밥)중에서

by Peter
제가 필명으로 오래 활동하면서 쓴 책들을 제대로 홍보할 수 없었지만 꾸준히 책을 썼습니다. 회사를 다니고 있기에 회사를 주제로 다룬 책을 낸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꼭 써야 할 이야기가 있었으니까요. 책이 나오고 별 홍보 없이 지나갔지만 지나 보면 출판사에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출간한 지 조금 된 제 책의 일부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책 앞 광고를 대놓고 하려고 합니다 ㅎㅎㅎ;;; 실은 여러 출판사에서 그동안 책 후기 홍보 제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제 브런치가 홍보성이 되길 원치 않았기에 모두 거절했었는데요. 제가 쓴 글이니까 많이 이해해주시고 묻힐 뻔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이 좋으시면 구매도 부탁드려요. 대 놓고 하는 앞 광고입니다 ㅎㅎㅎ;;;



책 <아, 단단히 끼였다>(2020,책밥) 중에서



비전보다는 생존이 중요한 현실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주변을 보면 신입 사원을 교육시킬 때 두 부류의 선배가 있는 듯하다. 매뉴얼을 따르는 선배와 좋은 선배. 어렵게 회사에 들어온 신입 사원에게 어떤 말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보통 둘 중 한 노선을 따르기로 결심한다.


처음 신입 사원을 가르치면서 나는 매뉴얼에 충실했다. 물론 회사의 비전 같은 거시적이고 연역적인 주제부터 출발한다. 그동안 회사가 해온 일들과 매뉴얼 같은 가치관을 이야기하며 신입 사원에게 이런 구성원이 되라고 말하는 것이 수사로 무장된 교육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말하고 있는 나 스스로가 동의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워딩이 부끄러워서 더 이상 매뉴얼대로 말할 수가 없다. 이유는 회사의 정체된 실적일 수도 있고 실제 더 높은 자리에서 회사 의사결정의 실체를 보면서 이게 누군가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자각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다. 깔끔하고 뒷말 없는 교육을 할 수는 있지만 말하는 사람 마음 저 구석에서 찜찜한 기분을 달고 사는 것은 너무 괴로우니까.


그래서 실제적인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아끼는 후배일수록 말이다.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회사의 정해진 비전과 미션은 짧게 설명하면서 마치 애국가나 헌법을 읽어주는 기분으로 넘어가고 실제로는 이게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하다 보면 회사의 가치보다는 최근 많이 회자되고 있는 애자일 같은 새로운 방법론이나 기업 문화 이야기로 많이 흐른다.


기존 체계가 아닌 만들어가야 하는 체계. 실무자들이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위로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실체로 존재하기는 아직 어려운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마치 독재 하에서 학교 수업을 듣다가 서로 간에 신뢰를 확인한 후 정말 실제적인 변화를 숨어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돌아보면 뭐 그리 나쁜 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 비판만 제외한 다면. 새어 나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의견을 나누는 게 더 실제적인 팀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된다.


위에서 그렇게 갈망하는 혁신은 기존 체계에서 애초에 나올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렇게 창업자 정신이나 스타트업 방법론을 이야기하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조차 눈치 게임으로 다루어진다면 사실 지금 환경은 부자연스럽다는 방증 아닌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개념적인 비전에서 현실에 맞게 나아가야 할 방향을 나눈다. 이러니 내가 좀 살 만하다. 하지만 말이 새어나가면 안 되겠지. 그러다 갑자기 회의실에 불려 갈 수도 있으니까.



동의가 안 되는 비전이지만 훼손은 안 되니까


끼인 세대들에게는 다소 내로남불인 면모가 있다. 회사의 비전이나 정책에 대해 그게 영 적절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것을 대놓고 까는 후배들을 보면 어딘가 마음이 좀 불편하다. 우리끼리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는 하지만 앞에서는 티를 낼 수 없다. 꼰대처럼 보일 테니까. 이런 마음이 왜 생겼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글쎄. 한때는 일정 부분 사실이었고 그게 실현되어서 내 것은 아니어도 잠깐 달콤한 맛을 느껴본 적이 있어서 그랬을까. 그래서 그게 영 싫지는 않고 어딘가 마음속 한 켠에 남아있는 이상향 혹은 추억 같이 되어버려 그랬을까. 비슷한 연배끼리 저녁을 먹다 이런 감성적인 이야기를 하면 곧 서릿발 같은 반응이 나오기 마련이다.


“아직도 그런 생각해? 아니, 그거에 맞는 투자가 있었냐고. 그때 좀 지나서 실적 안 좋아지니까 다들 나가고. 회사는 뭐했어? 비용 줄인다고 넋 놓고 있었잖아.”


그래, 나도 알지. 그래서 이제는 그 비전에 동의하지 못하는 거고. 그렇지만 그걸 부정하면 회사의 부정을 떠나 내 과거의 일부가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싫더라고. 그래서 젊은 친구가 그걸 놀리면 마음 한 켠이 영 불편한 거겠지. 가끔은 지금의 현실에 맞게 비전을 새롭게 다시 만들면 어떨까 생각한다. 영 이상적인 이야기 말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실질적인 비전을 주자


요즘 친구들 혹은 나에게 회사가 줄 수 있는 실제적인 비전은 무엇일까. 과거처럼 마냥 회사의 목표가 내 목표는 아닌 시대. 어렵게 입사한 신입 사원들은 몇 년간 값진 경험을 쌓고 더 나아 보이는 곳으로 곧장 이직한다. 마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직한다는 느낌이다. 그만큼 시장에 기회가 많아졌거나 아니면 우리 회사가 뒤도 안 돌아봐도 될 만큼 매력이 사라진 것이겠지.


그래서 처음부터 개인과 회사와의 정신적 관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남은 사람들은 회사가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줄 것 같아 남은 게 대부분이다. 더 많은 기회, 더 높은 보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 계약 관계는 더 칼같이 끊을 수 있다. 내가 신입 사원 때도 그런 게 아예 없지는 않았으나 요즘은 더 명확해진 느낌이다. 회사의 정신 교육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회사도 알고 있고.


이런 상황에서 ‘복무신조’ 같은 화석화된 회사의 비전이 무슨 소용 있을까. 이걸 나눈다고 개인이 일하는데 얼마나 동기부여가 되겠으며 당장 임원들도 회사의 가치를 생각하며 결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금과옥조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제는 그런 비전 말고 실제적인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몇 년간 일하면 업계 사람들이 다 알 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게. 회사는 네게 그런 프로젝트 기회를 줄 거고 너는 어떻게든 그걸 해내야 해. 필요한 건 이야기해. 뭐든.” 차라리 이런 말이 더 낫지 않을까. 창의, 창조와 같은 말을 계속 주문하고 회사 사보에도 시리즈로 실릴 만큼 안 바뀌는 것이라면 이렇게 실제적인 언어로 주고받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물론 모두가 만족하는 비전 같은 것은 없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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