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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는 게 어려워질 줄이야

책 <아, 단단히 끼였다>(2020, 책밥) 중에서

by Peter

오랜만에 라떼 한 잔 꺼내자면, 사회 생활을 하면서 가장 처음 한 일로 기억에 남는 것은 점심 시간에 부서 식사를 따라 갔다가 번개처럼 수저 세팅을 하고 물 떠놓고 김치까지 빠르게 잘라서 플레이팅 해놓은 것이다. 선배가 하지 말라고 해도 바로 위 선배가 하고 있으니 안 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초반의 번개 같은 수저 세팅 스피드에 많은 선배들은 일 잘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라떼지만.


점심 약속을 잡는 게 눈치가 보였다. 당연히 점심은 팀이랑 먹는 것이고 동기나 지인이 불러서 밥을 먹는 일은 사전 결제처럼 미리 말해야 할 정도로 은근히 눈치 보이는 일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밥메이트를 잃지 않기 위해 밥피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어디로 밥이 넘어가는지 모를 식사도 많았지만 적어도 점심 시간에 누구와 밥 먹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일은 머릿속에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구가 네모가 된 듯 밥을 누구와 먹어야 할 지 고민하는 때가 오고 말았다. 그것도 내가 팀장이 될 때쯤. 우리 회사 점심 시간의 풍경은 다소 특이하다. 일단 밥 먹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다. 밤새 해외 축구를 보거나 게임으로 달렸거나 거나하게 한 잔 걸친 후배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책상에 엎드린다. 아예 밥을 먹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안쓰러운 마음에 밥을 몇 번 사주기도 했지만 서로 힘든 일을 왜 하고 있나 싶어서 그만두었다.


또 어떤 부류는 도시락을 싸온다. 요즘 핫하다는 다이어트 식단을 돌아가며 싸온다.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것이다. 밥심으로 살아가는 낀대에게 무슨 콩, 무슨 비법 식단은 뒤돌아서면 현기증 나는 배고픔을 선사한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부류 중에는 그냥 팀과 밥을 먹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도 있다. 처음부터 더 친한 밥 친구들과 먹겠다는 것이다. 인간의 권리인데 그걸 팀이라고 강제할 수는 없으니 이 부류도 패스한다. 그러면 정말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


대학 시절에도 가끔 점심 때 혼자 밥을 먹은 적은 있었다. 친한 친구가 휴학이나 취직했을 때, 혹은 마땅히 시간이 맞지 않을 때 혼자 이어폰을 꽂고 학교 식당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밥을 털어넣었던 기억. 한동안 그런 고민 없이 살았는데 지금은 팀을 초월해 나 같은 낀대 몇 명만 점심 시간 직전에 우두커니 사무실에 서 있다. 눈이 마주치면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삼삼오오 모인다. 그리고 밥을 먹으러 함께 간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정말 눈물 났을 것이다.


가끔은 혼자 먹어야 한다. 정말 같이 먹을 사람이 없어서. 외근을 가고 출장을 가는 사람이 많은 날에는 오롯이 혼자 남기도 한다. 그럴 땐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라도 사서 자리에 앉아 허기를 달랜다. 일단 먹어야 하니까. 그러던 어느 날 도시락을 싸오던 팀원과 함께 밥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편의점 샌드위치지만 혼자 사무실에서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옛날 사람 감성에 짠해서 합석했다. 나의 이런 모습이 팀원 관리의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도 함께했었다.


그런데 뭐 아무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샌드위치로 식사를 했다. 목에 잘 넘어가지는 않았다. 아침도 푸석한 것으로 먹는 마당에 점심도 푸석하니 목이 멘다. 딸기 우유가 없었다면 아마 한 조각도 제대로 못 먹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너무 먹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으니 몇 마디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곧 이런 생각 자체가 낀대인 것을 알게 되었다.


밥을 혼자 먹든 안 먹든 그건 회사 업무와 별개다. 누구와 약속이 있든 없든 이후 며칠은 계속 함께 밥을 먹었다. 팀원 혼자 먹는 게 그런 마음이 들어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면서 좀 젊은 친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보다 편의점 도시락도 잘 나왔고 무엇보다 가성비가 뛰어났다. 회사 탕비실은 점심시간에 전자레인지 행렬도 대기를 타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다 젊은 친구들이다. 물론 나도 젊지만 이걸 계속 먹으려니 며칠 지나 속이 부대꼈다. 왜 이걸 계속 먹고 있는 걸까.



책 <아, 단단히 끼였다>(2020, 책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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