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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Aug 27. 2022

본캐와 부캐의 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제게 지난 몇 년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연봉이 많이 오른 것도 아니었고 커리어에 뚜렷한 성취가 있었던 시기인 것은 아닙니다. 다만 회사 업무가 비교적 많지 않아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었던 시기였죠. 저는 이 시기에 글을 많이 썼습니다. 제 브런치 초창기에는 일이 너무 많아 많은 글을 쓸 수 없었지만 몇 년간의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시기가 오고 많은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전자책까지 포함하면 6권의 책을 약 4년 동안 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제 부캐 Peter의 이야기입니다. 제 본캐는 여전히 회사를 오가고 매일의 좌절과 무기력, 빡침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죠. 부캐가 조금씩 자라는 재미에 본캐는 대부분의 고뇌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캐가 계속해서 이렇게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점점 부캐에 비해 쳐지는 본캐에 대한 괴리가 복잡한 감정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다 올해 들어 Peter에게 시간이 없어졌습니다. 본캐가 이직한 것 때문이죠. 본캐는 엄청난 야근으로 부캐의 시간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캐가 쉴 때가 되면 부캐도 힘이 없어 부지런히 콘텐츠를 생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본캐는 다시 커리어에 재미와 보람을 되찾기 시작했고 뚜렷한 방향의 이정표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캐에 대한 생각들이 자유롭지 못하게 만듭니다.






경제학은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선택하고 왜 그런 선택들이 일어나는지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저도 늘 제약 속에 시달리고 있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때는 시간이 있지만 돈이 없고 어떤 시간에는 그 반대이거나 다른 자원의 크고 작음이 제약을 만듭니다. 우리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냥 주어진 경우도 있습니다.



갑자기 조직이 이동하거나 보고 라인에 있는 동료가 바뀐다면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원 배분이 막 달라집니다. 많았던 시간이 극심한 야근으로 없어지기도 하고 반대로 시간의 자유가 생기기도 합니다. 이직을 통해 내가 주도권을 갖고 자원을 정할 수도 있습니다. 워라밸은 나쁘지만 당장 필요한 돈이나 명성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핍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결핍을 안고 가는 것입니다. 대신 지금 넘치는 걸 활용하는 것이죠. 없는 것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고 있는 것을 통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퇴근 후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을 때는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책을 썼죠. 원 없이 썼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시간이 부족한 경우라면 책이 아닌 짧은 콘텐츠를 생각날 때마다 쓰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시간이 아닌 다른 걸 통해 저를 팔 수 있는 것을 택할 수도 있죠. 가령 지금은 커리어의 성취를 통해 명성을 쌓고 있는 중이라면 명성을 팔아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좀 더 수월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시간도 명성도 없다면 있는 부분이라도 짜내서 그중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것에 집중할 것입니다.






몇 년 전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옆 자리 대화가 들렸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었는데요. 나이가 많은 분이 온라인 강사인 것 같았고 젊은 분이 온라인 강의 플랫폼 직원인 것 같은 대화가 들렸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의 대화가 본의 아니게 들려버렸죠.


경력이 오래되셔서 콘텐츠가 많으실 것 같은데요. 지금 일을 계속하고 계신가요?


작년까지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지금은 쉬고 있어요. 강의안은 이렇게 기획까지 다 했습니다.


역시 전문적으로 잘 준비하셨는데요. 이번에는 이 내용으로 프로그램 준비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왕이면 계속 일을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왜죠?


이 업계에서 일하면서 많은 강사님들을 만나보았는데 일을 그만두고 몇 년 지나면 현장 감각이 떨어지셔서 강의 콘텐츠 준비하시기 어려워하시더라고요. 강의 평가도 좀 그렇고요. 일을 계속하시면서 내용을 업데이트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해서요.


아... 그렇군요.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일자리 찾기가 마땅치는 않지만...



이때 저는 글 하나 쓰고 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았습니다. 현장감을 잃어버린 경영자, 관리자들을 거의 모시면서 일을 끌고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죠. 설명하고 이해시키느라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었으니 이 말도 곧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시간이 부족하지만 이 시기도 다음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 생각하면서 지나가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뭐 결과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지금의 경험이 헛되지 않겠죠. 새로 경험한 사례들을 머릿속 무의식의 세계에서 정리하면서 새로 말하고 싶은 쌓여가는 것들을 풀어 다시 이야기로 꺼내려고 합니다.






사실 저만의 고민은 아닙니다. 회사에서도 강의를 하거나 멘토링을 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요. 그분들의 유료 강의에 있는 화려한 약력과 회사에서 같이 나누는 고민들을 떠올려 보면 모두가 다른 제약과 결과를 두고 고민하지만 지금 이 시기를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닌 양자 융합의 시간으로 만들어 가려고 하는 것 같거든요. 더 많은, 더 나은 이야기를 준비하고 나누겠습니다. 그냥 최근에 콘텐츠 방향에 대해 생각만 많고 글을 못 쓰고 야근하느라 금요일에 막 쓴 글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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