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모두의 전략을 실행할 때 내 색깔에 맞는지 생각하기
큰 기업에서 브랜드를 잃지 않는다는 말이 선뜻 이해가지 않을 수 있지만, 작은 기업보다 오히려 큰 기업에서 브랜드가 제 색깔을 잃을 때가 더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본도 사람도 심지어는 명성 자본도 더 많은 큰 기업에서 브랜딩을 잃는다는 게 잘 이해가 되시지 않을 수 있지만, 큰 기업은 브랜드가 아니라 '회사'이기에 회사처럼 브랜드를 바라보고 전략을 실행하면 개별 브랜드가 사랑받았던 것을 잃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잃게 됩니다. 제가 만났던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같이 생각해 볼 포인트들을 나누어 봅니다.
작은 규모의 매장으로 매출이 잘 나온 브랜드가 어느 날 매장을 넓힌다고 했을 때는 그 브랜드만의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대형 매장을 통해 브랜딩을 하자고 누군가가 말하거나 실제 대형 매장을 만들어서 모멘텀을 만든 브랜드가 생기면 이상하게 너도나도 대형 매장을 모두 하겠다고 계획을 세웁니다. 비극의 시작이죠. 대형 매장을 해도 되는 브랜드가 있고, 대형 매장을 굳이 할 필요가 혹은 준비가 되지 않은 브랜드도 있는데요. 회사 내 성공 사례라고 하는 것을 적용 안 하면 정치적으로 어려워질까 봐 혹은 우리 브랜드가 어떤 브랜드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어서 그냥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만든 작품입니다.
20평 매장을 하다가 80평 매장으로 늘리려면 '왜 늘려야 하는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하거나 새로운 아이템들을 선보일 곳이 필요하거나 하는 필요가 현재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런 게 필요 없다면 옆 브랜드가 대형 매장을 한다고 선뜻 나도 하겠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왜'에 대한 질문이 해결되었다면 '어디서' '언제' 대형 매장을 해야 하는지도 선명해집니다. 특정 고객의 체험을 위해서는 그 고객이 많은 곳에서 해야죠. 그냥 대형매장을 해야만 하는데 예산이 없다면 정말 그런 고객은 전혀 없는데 임대료만 맞는 매장에 대형으로 만들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원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비싼 비용만 지불한 채 나중에 큰 공간이 발목을 잡는 일만 만들게 됩니다.
오프라인 몰에 누구나 벽 쪽 대형 매장을 선호하지만, 우리는 상품군도 적고 비싼 비용이 나가는 벽 쪽 대형 매장보다는 주요 동선상에 작은 매장만 해도 된다는 전략을 택한다면 우리 브랜드에 맞는 오프라인 매장 전략을 선택한 것이 됩니다. 억지로 뭔가를 채우려고 비용 낭비인 상품군을 만들 필요도 없고 입점과 확장 속도도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내 상황에 맞고 특성에 맞는 브랜딩 전략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회사에서 모두가 한 방향을 하겠다고 할 때 '나는 다르게 이렇게 할 것인데'라고 말하면 좋다고 하는 회사가 있고, 지탄받는 회사가 있습니다. 전자의 회사는 정말 개별 브랜드를 존중하고 발전 방향을 같이 생각하는 포트폴리오를 유지할 자격이 있는 회사지만, 후자의 회사는 그저 돈을 벌어주는 한 아이템, 단기적인 유닛 정도로 생각하는 회사일 것입니다. 브랜드 사업을 하는 곳이라면 후자는 필연적으로 주기적인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고객의 선택을 주기적으로 받지 못하고 계속 새로운 것을 또 생각하는데 많은 시간을 쓰게 될 테니까요. 순환적인 낭비죠.
회사에서 어떤 브랜드가 잘 되면 여기 의견을 제시하는 높은 분들이 많아집니다. 이걸 어떻게 해야 내 성과가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요. 라인 확장이 그중 하나입니다. 만약 옷을 판매하는 브랜드라면 가장 가까이 있는 아이템 확장이 화장품 같은 것일 겁니다. 작은 매장에 옷만 걸어도 가득한 곳에 회사에서 옷이 잘 되니 그 취향의 고객에게 유사한 콘셉트의 타 아이템도 같이 제안하자고 합니다. 그게 화장품이라면 그나마 큰 매장 하나를 잡고 어딘가에 화장품도 같이 진열합니다. 이건 그냥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시장성이나 고객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이죠.
새로운 아이템을 소싱하고 진열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었지만 고객 반응이 없을 때 그 책임은 다시 누가 지게 될까요? 아이템 확장을 고려해 보라는 높은 분, 그게 화장품 같은 건 아닌지 생각해 보라는 어떤 분이 아니라 그 브랜드의 책임자이자 손익이 나빠져서 어려움을 겪는 브랜드 구성원이 됩니다. 어려워지면 그런 제안을 한 사람들은 모두 떠나 있습니다. 고객 인지도 제대로 되지 않은 아이템, 꼭 그걸 해야 하는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급하게 실행에만 급급한 리더의 추진력 때문에 남은 재고는 계속 재무적 발목을 잡게 됩니다. 그런 걸 보여 줄 수 있는 충분한 환경, 이제는 옷만 파는 게 아니라는 명확한 캠페인 지원이 부재하다면 고객은 알지도 못한 채 브랜드만 찻잔 속의 폭풍을 경험하게 됩니다.
대기업은 숙명적으로 원가의 이점을 누리려고 합니다. 소비재의 경우 소재 하나의 선택이 옆 브랜드와 우리 브랜드의 차이를 만드는 것인데 어느 날 손익의 영향으로 회사 내 여러 브랜드의 원자재와 생산을 통합해서 발주하고 진행한다고 하면 고유함으로 고객의 선택을 받은 브랜드는 차별점 하나를 잃게 됩니다. 사실 그 차별성이 전부일 수 있는데 말이죠.
거기에 큰 기업들은 유사한 상권에 여러 브랜드들을 같이 진출시키고 있으니 유사한 생산을 한 상품은 바로 옆에서 정말 비슷한데 브랜드만 다르게 진열되어 있을 것입니다. 고객은 브랜딩을 상품을 통해 느끼지 못하고 그중 가장 저렴한 브랜드만 살아남고, 통합 생산 전 더 좋은 포지션을 갖고 있는 브랜드는 점점 충성 고객을 잃고 외면받게 될 것입니다. 당장의 비용을 줄이자고 매출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습니다. 저가 브랜드만 살아남는 회사가 있다면 이 부분의 반복이 원인에 있을지 모릅니다. 아직 대량발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의사결정이 문제의 원인입니다. 통합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서 브랜딩에 저해가 되지 않는 일부 부분만 통합하는 게 방법입니다.
생산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통합 입점도 문제가 될 수 있죠. 브랜드마다 고객이 있는 수요 지점이 다른데 어떤 브랜드의 입점을 위해 다른 브랜드까지 꼭 입점을 해야 하는 큰 기업의 경우에는 채널 전략이 브랜드와 맞지 않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영업의 문제라 할 수도 있지만, 브랜드마다 자신의 고객이 누구고 어디에 있는지 몰라 이런 기준조차 없는 게 근본적인 원인일 것입니다.
큰 기업은 보통 하나의 브랜드가 성공해서 큰 기업이 될 수 있었지만, 그 브랜드의 성공 원리가 다른 곳에도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초심자의 행운으로 덩치만 커진 부족한 의사결정으로 여러 브랜드를 잘 운영하지 못하는 상황을 종종 맞습니다. 우리의 논리가 아닌, 고객의 논리에서 브랜드를 생각한다면 그게 저가든 고가든 브랜딩이 살아 있는 큰 회사의 브랜드를 각각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