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도 많은데 신경 쓸 것도 많다
회사마다 조직의 구성 방식은 조금씩 다릅니다. 도메인 단위로 모든 조직을 넣어서 진행하는 방식이 있고, 기능별로 하나의 큰 hierarchy를 세운 후 여러 도메인이 협업하는 구조 등 산업마다, 문화마다, 또 이렇게 하다가 저렇게 하다가 조직의 모양은 조금씩 바뀝니다. 저도 한 도메인에 vertical 하게 일하는 조직에 있다가 cross-functional 한 조직을 표방하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조금은 다른 적응의 시간을 거친 적도 있습니다. 일이 위에서 오는 게 아니라 옆에서도 많이 많이 오는, 혹시 아실까요?
일 잘하는 원칙은 사실 크게 보면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이전보다 무엇을 조금 더 신경 쓰면서 일해야 하는지 교전 규칙이 조금 달라진 것이에요. 제가 cross-functional 조직에서 일하면서 실수하기도 잘하면서 겪은 몇 가지 신경 쓸 포인트들을 공유드립니다.
어느 조직 형태가 더 silo가 심하냐고 물어보신다면, 그건 회사의 문화이지 조직 구조의 형태는 아니라는 생각을 최근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도메인 단위로 묶든 기능 단위로 묶든 배타적이면 한 없이 배타적일 수 있습니다. 배타적이라는 표현이 개인마다 수위가 조금씩 다른데요. 무슨 일을 하는지 공유도 안 하고, 자기 필요하면 일 다 끝날 시간에 요청하고, 서로가 서로의 바짓가랑이를 잡아 끌어당기며 제한된 자원을 서로 소모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그런 것 말입니다.
흔히 '피를 섞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지분을 섞은 회사를 만들어서 양자가 서로 발 뺄 수 없고 같은 목표로 집중하게 할 때, 혹은 일시적으로 서로 이해가 필요한 것만 활용하고 빠지고 싶을 때 회사끼리는 피를 섞죠. 조직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적으로 기능 조직은 서로 greedy 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영업은 모르겠고 세일즈 카운트를 늘리고, 마케팅은 제한된 자원을 극대화된 비용 효율에 쓰고 싶을 거고, 운영 조직은 최대한의 리드타임을 갖고 대외적인 리스크를 우선할 수 있습니다. 이런 조직이 서로 그냥 만나면 협의가 될 리, 일 하나가 될 리 없습니다. 안 그래도 일 하나 하려면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밖에 없는 cross-functional 조직 특성상 내부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데 목표마저 다르면 만나봤자 일을 시작하지도 못하겠죠.
그래서 서로 조직 간 목표 지표에 서로의 목표를 하나씩 갖고 가게 만들게 합니다. 서로 내 생각만 하지 말고 서로 협력해야 평가를 받게 만들면 줄 거 주고, 받을 것 받는 논의를 시작할 수는 있겠죠. 이렇게 하려면 cross-functional 조직 구조일수록 오히려 강력한 중앙 조직이 필요함을 느끼게 됩니다. 서로 밸런스가 맞지 않는 목표를 정하거나 서로 자기 평가 방식으로 우리가 잘했고 너희는 못해서 전체 결과가 이상하다는 상황을 피하려면 공정하게 중앙에서 사업의 우선순위에 맞게 할당하고 조정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것이죠. 그런데 cross-functional 조직이 이상하게 구성되면 낱개의 조직들만 기능으로 둥둥 떠 있고 중앙이 허술하거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현장이나 실무 중심적을 목표로 표방하는 것과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나의 조직에 불과하다면 다른 기능 조직에 피를 섞자고 말을 못 하겠죠? 그럴 땐 보고할 때 그럴 필요를 제안하면 됩니다. 회사는 제안하는 사람과 제안 안 하는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물론 제안의 성격이 문제긴 하지만요.
좋은 실무자는 일의 완결이 좋고 피드백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맡기면 '해 줘'가 되는 사람 말이죠. 그런데 cross-functional 조직에서는 분석을 잘하고 자기 기능의 액션을 또렷하게 잘하는 것만큼 혹은 이상으로 공유를 다른 조직에 넓고 사전에 빠르게 하는 게 실력입니다. 사실 더 중요할 수도 있죠.
어떤 대대적인 프로모션을 준비합니다. 효율적인 할인 스킴을 만들고 마케팅 구좌에 최대의 효과가 나오도록 알고 있는 온갖 기법을 동원해 세팅합니다. 좋은 상품으로 외부 바이럴도 만들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지만 배송이 버벅 거린다면, 서버가 터진다면, 프로모션 참여/미참여를 모르는 vendor들이 클레임을 건다면, 상담 센터에 인원 할당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심지어 외부 요인 때문에 급히 비용을 전반적으로 통제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렇게 혼자 열심히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사실 현상 악화를 만드는 '불확실성'이 됩니다. 시작할 때, 기획할 때부터 공유를 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하면서 알리고, 직전에 바짝 알리는 것을 꼭 해야만 합니다.
내가 잡고 있는 부분은 100%가 아니라 85%로 해도 공유만 잘하면 일이 더 잘 풀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성과의 핵심이 내가 하는 조직이 아닐 수 있을 때 그렇습니다. 프로모션 성과의 목표가 주문 수라고 하면 주문 수를 더 잘 만들기 위해 미끼 상품이 어떻고, 전체 할인율이 얼마고 배너 세팅이 어떻고 가 +20% 성장을 만들 수 있다면, 다른 기능이 더 잘 될 경우에 그 이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경우 오히려 내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 일하는 것보다는 작은 과제의 컨트롤타워가 되어서 서로의 목표로 이해를 구하고 툭 치면 성과가 나올 병목에 집중하는 게 사실 더 낫습니다. 성과만 잘 나올 뿐 아니라 리더십에 대해서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공유의 원칙은 상대방이 알아듣기 쉽고 기억하도록입니다. 어떤 미팅에 들어가면 내 할 말만 배경도 주석 설명도 없이 그냥 랩을 하고 마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냥 미팅이 잡혔고 내 분량은 말해야 하니 하는 식이죠. 너무 모르면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미팅을 하는지 숫자가 정말 고프면 그럴 수 없습니다. 다정하게 잘 공유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대답하고 더 대답하는 게 cross-functional 조직에서 일 잘하는 방법입니다.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도 나는 이런데 어떤 조직에서 측정하는 방식으로 보면 이럴 수 있다는 다 품고 설명하는 것과 그냥 내 주장만 하는 것은 신뢰도에서 큰 차이를 만듭니다. 아무리 강력한 중앙 조직에서 컨트롤을 한다고 해도 기능의 특성상, 아이템의 특성상 모든 평가 방식이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평가라는 것은 결국 OKR의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대표적인 가정이니까요. 그렇기에 세세한 것까지 다 알지 못하는 중앙 조직을 위해 같은 지표를 서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내가 먼저 해석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 신뢰를 얻고 내 주장을 펼치는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주문 상승효과는 00%인데, 이런 방식으로 보면 0%가 되는데 이건 이런 측정 방식의 차이에서 발생하는데 그래서 비교할 것은 지난 프로모션에서 동일 방식으로 측정한 0% 대비 이번에 얼마나 더 우월했고 그 요인은... 예를 들면 이런 식이죠.
cross-functional 조직에서 기능과 기능 사이의 Grey zone이 있습니다. 보통은 정보의 전달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여러 조직이 함께 만드는 고객 노출 단계에서 최종 검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이런 일이 있는 것 같습니다. Grey zone은 처음에는 문제가 없으면 드러나지 않지만 1이 10이 되고 300이 되는 빈도의 현상이 되면 곧 서로 너무 커져버린 고름 같은 문제 앞에서 네 일이니, 내 일이니 옥신각신 합니다. 리더십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일을 정리는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실무 레벨에서 해당 내용이 상위 보고되지 않으면서 곪아가는 일도 있습니다. 너네가 하세요라고 말하면서 안 하고 전체적인 결과는 안 좋고 리스크는 점점 커져가는 상황 말이죠.
그런데 회사는 결국 다 압니다. 일을 대하는 각자의 태도를 말이죠. 일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과 일을 하는 사람의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입니다. 내 딴에는 일을 잘하고 싶어서 방어하고 방어하고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일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피드백받는 것을 꺼리게 되고 평가가 일에 대한 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정적으로 돌아서는 사람을 회사는 모를 수 없습니다. 같은 조직에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지만, 결국 다른 기능 조직에서 "저 사람이 계속 우리의 PoC이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담당자가 누구로 정해지면 리더끼리 "되겠어요?"라고 말이 나오는 사람은 앞으로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일에 들인 리소스 대비 효율적인 평가를 받기가 무척 어려워집니다. 평판이야말로 비정량적인 대표적인 지표라 검증할 수 없으니 굳어지면 편견이 됩니다. 채용 서류를 받을 때 과거 서류 탈락 이력이 수두룩하게 있으면 나는 좋아 보여도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나?" 하면서 한 번 더 거를 요인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줄 것은 주고받을 것은 받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면 다 받아와야 합니다. 다 받아 오자고 말하면 소름 돋을 분도 있을 줄 압니다. 내 가치관이 일 잘하는 것에 있다면 사실 받아서 길게 보면 손해는 별로 없습니다. 약간 퍼질 뻔한 위험이 있으면 내가 맡은 중요 업무의 범위를 빌미로 채용을 뜯어내고 조직을 키우고 발언권을 더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게 안되면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 회사니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그 회사를 떠나서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회사로 가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건 주니어, 시니어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시니어도 그다음이란 것은 있으니까요.
똑같이 실적을 잘 내고 있는 상황에서 평판이 좋은데 업무의 범위가 작거나 중요하지 않은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은 멀지 않은 시기에 평판이 나쁜 리더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상위 리더에게 구성원의 평판은 조직의 평판, 나의 평판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니까요. 그러기에 친절하고 더 다정해야 합니다. 체력을 키우는 게 더 근원적인 답이 될 수도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