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라는 씁쓸한 증거
요즘 선거철입니다. 이미 가정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의 인적 사항과 공약에 대한 안내문이 배포되었습니다. 저도 면밀히 보았습니다. 개인적 정치 성향을 떠나 재미있는 것은 몇 명의 후보가 내세운 지역 발전을 위한 공약이 토시 하나 다르고 내용이 다 같다는 거죠. 한 국가의 작은 축소판이라 부르면 과하다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일개 지역구 하나에 반영된 후보자들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이 나라 기성 정당의 무차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서로 대립각을 세우는 법안도 크게 있지만 이 나라 정치에서 여러 당을 이동하고, 앞 뒤 말이 바뀌는 일이 흔한 일이 된 사례들은 정말 소신과 철학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그런데 정치인들만 이렇지는 않습니다. 직장에서는 어떻습니까? "적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사회생활 시작과 함께 금과옥조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괜한 적을 만들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실제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도 내 적이 되면 없던 힘이 생겨나는 것을 많이 보았거든요. 그런데 적이 되면 적이 되어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필요합니다. 정말 올바른 직업인이라면 일을 처리하는 데 현상을 판단하는 철학이 있고 이것은 회사의 성장에 대한 프레임입니다. 하지만 철학이 없죠. 토론이 없고 서로 모르는 사이에서 떨어진 일을 대충 타협하면서 처리합니다. 그래서 우리 직장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습니다. 팀웍을 깨트리는 것을 조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만의 세계관이 없는 게 문제라는 것이죠. 맹목적이고 다른 생각이 없는 조직만큼 통째로 낭비인 것은 없습니다.
무색무취한 조직, 무색무취한 서비스
가끔 얕은 것, 작은 것, 본질적이지 않은 것으로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령 보고서의 순서나 표현 방법 등 작은 것을 가지고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사람들이죠. 하지만 직장인으로 모두가 경영에 직간접적 책임이 있습니다. 회사가 성장하고 조직이 학습하는 방법에 대해 모두 궁리해야 하고 그 큰 방법론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해야 합니다. 즉, 프레임과 프레임을 붙여서 무엇이 옳은지 정반합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어느 한 프레임이 무조건 잘못일 수 없습니다. 또 보고서나 회의가 아니라 '대화'로 이 모든 결론을 뽑아내야 합니다. 만약 어느 누구라도 한 프레임이 맞다고 우기거나 그나마도 없다면 분명한 월급도둑일 것입니다.
프레임이 없다면 전략이 현장의 실무까지 이어지고 이것의 결과가 고객으로부터 어떤 반응으로 오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프레임이 없다면 책상 머리 경영을 하는 사람이죠. 어디 책에 나오는 프레임을 마냥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꺼풀만 까보십시오. 구체적인 사례로 말하지 못한다면 역시 월급도둑입니다. 아직 프레임이 없는 친구는 현장의 복잡다단한 이해관계에 눈뜰 수 있도록 자기정리나 멘토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경영은 프레임 놀음이므로 선명해야 합니다. 그것이 귀납적 현상을 통한 BOTTOM-UP방식이라도 그것 나름의 프레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척점에 있는 부서, 사람이 생기는 게 당연합니다. 직장 내에서 '저 사람은 왜 혼자 싸우고 그래', '좋게 좋게 넘어가도 될 일을 왜 저리 파이팅이야'라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기만 하는 사람인지 조직 내에 벌어지는 방향성 없는 일을 자신이 듣고 깨달은 프레임으로 바꾸려고 애쓰는 사람인지 잘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같은 현안에 대해 그때 그때 말이 달라지는 사람도 면밀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경우마다 상황이 달라 해법이 매번 다른건지 아님 그 때마다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기준 없이 생각 없이 갖다 붙이는 건지 말이죠.
가장 어중간한 게 오픈 안한 것도 아니고 닫은 것도 아닌 겁니다. 판을 깔려면 확실히 깔고 아님 말아야죠. 서로 프레임을 갖고 끝까지 대화하고 서로를 설득하게 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일이 한 쪽의 설득이 완전히 나지는 않습니다. 경영자가 의사결정을 해야 하죠, 반드시. 그러나 이 과정 자체가 미덕을 발휘합니다. 조직은 싸우면서 정듭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인사이트가 나옵니다. 일전에 저희 회사에서 제품의 창고비와 생산 단가간 어느 쪽이 더 중요하고 근원적인 것인지 조직 내부 미팅 때 설전이 붙은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한 쪽은 저였죠. 하나의 작은 현상이지만 이 현상을 떠 받드는 본질적 프레임은 둘이 달랐습니다. 한 쪽은 '고객이 원하면 비용이 문제가 아니다, 더 빨리 물건을 받자'고 다른 쪽은 '상품 입고를 적시에 받아서 비용을 줄이는 게 가장 최적화된 프로세스다, 적시에 받아야 한다'였죠. 물론 논쟁하는 둘 다 어린 시기였으므로 이게 뭐 그리 깊은 이야기였겠습니까. 헌데 대화하는 둘은 서로 의미 있던 논의가 중단된 거는 리더의 무관심이었습니다. "둘 다 옳다, 보기 좋다" 뭐 그런 뉘앙스로 어떻게 보면 좋은 현장의 쟁점에 대해 다루지도 않고 대강 넘어갔습니다. 판을 깔았으면 끝까지 이야기 해 보든지, 아님 적당한 선에서 의사결정을 지어서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것 없이 그냥 한듯만듯 아무런 현장의 변화를 만들지 못하고 '넘어갔습니다'. 리더가 생각이 없기 때문이죠.
직장인이 월급쟁이지만 가오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그 분야의 현장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흐름을 자기 스스로 정리해서 나름의 '가설사고'를 하는 것까지 가야 월급 받는 것 이상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설이 모이다 보면 그것을 관통하는 자신 안의 프레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업은 프레임의 다양성을 장려하고 그것의 토론을 통해 더 나은 제 3의 대안을 항상 모색해야 합니다. 이 역할이 없는 인원은 자체가 낭비입니다. 대게 백오피스에 이런 사람이 있고, 오래 정체된 '꼰대'들이 이런 부류가 있습니다. 그냥 오퍼레이팅 하고 자기 정리를 하지 않거나 현장을 바꾸려는 의지가 이제 자타의 등으로 사라졌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습니다. 물론 프레임간 논쟁으로 적과 동지가 나눠지는 건 아닙니다. 결국 더 큰 동료가 되죠. 보통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는 사람과는 아무 관계도 안 맺는 게 사회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영감을 주거나 도움이 된다면 그 사람은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게 그 순간은 적이든 동지겠지만, 크게 보면 '성장'이라는 같은 회사의 건전한 동료고 진정성 있는 친구의 발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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