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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Feb 19. 2016

P부장은 왜 시키기만 할까

오더 로봇의 탄생과 방과 방 사이

전국의 P부장님들이 다 이런 건 아니라서 먼저 양해의 말씀 올립니다. 또 올바른 판단으로 사업에 매진하시는 '잘 시키는' P부장님들도 해당 사항이 아닙니다. 다만 아무 것도 모르는데 부하 직원 달달 볶아서 혼자만 달달하신 P부장님을 대상으로 쓰는, 아이러니하게도 P부장님을 위한 일종의 변명입니다.


4-4-2에서 4-5-1로, 조직화의 중요성


축구 좋아합니다. 물론 보는 것만. 축구 잘 보다 보면 축구가 비지니스이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비슷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 조직화가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대단합니다. 복잡한 구단 운영 이런 수준도 아닙니다. 축구에서 중요한 전술, 특히 포메이션이 미치는 영향입니다.


http://bizballproject.com/?p=73

- 요건 제가 흠모하는 바르샤 포메이션인 4-3-3이네요

- '축못알'이시라면 복잡하니 패스

- 여튼 포메이션은 패스, 공간창출 능력, 득점의 루트를 다양하게 만들고 이에 맞는 팀 구성이 된다는 거죠


현대 축구 전술은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거쳐서 90년대까지 진화해왔습니다. 오늘날 챔피언스리그 성적과 상관없이 유럽 3대 리그인 영국의 EPL은 전통적인 4-4-2에서 대부분 4-5-1(4-3-3)의 전술로 바꿔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15/16 시즌의 이단아 '레스터 시티'는 대세에 맞지 않는 4-4-2 포메이션으로 자기들이 잘하는 직선 축구, 속도 축구, 체력 축구로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 있죠 (오늘까지는 1위, 화이팅!). 사람을 어떻게 조직하고 어떻게 움직이고 소통하게 하는가는 이같이 조직으로 움직이는 모든 곳에서 아주 중요한 관심 대상입니다.  


직속상관 관등성명 - 상관, 시누이들, 매직아이


그런데 우리 회사는 왜 이럴까요. 군대를 두 번 가는 기분 (안 가신 분이라면 병영체험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닌듯)입니다. '군대 문화'. 전통적인 한국 기업의 문화를 대표하는 이 말, 물론 호랑이 담배피던 옥상집합, 다나까 등등의 리얼 '진짜 사나이'는... 지금도 하는 곳이 있겠죠.


군대란 어떤 곳입니까? 훈련소가면 이상한 걸 첫 날 가르쳐 줍니다. '직속상관 관등성명'. 중대장, 대대장, 연대장... 이것을 포함해서 뭔 상사가 그리도 많습니다. 사단장에서 분대장까지는 적어도 5단계는 될 겁니다. 이것은 '관리'를 위한 조직이죠. '책임'을 지고 엄청나게 큰 조직을 일사분란하게 탑다운 방식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기 좋게 만든 '관리'형 조직. 물론 군대는 이래야 군대고, 더 뭐라 할 것도 없습니다. 비극은 이것이 고객의 친구인 회사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김대리는 박과장님께 기획서 초안을 보여드리고 한 번 수정해서 최부장님께 갑니다. 물론 최부장님 생각도 있으시지요. 그래서 야근을 합니다. 최부장님 방을 몇 번 왔다갔다 하면서 기획서는 이튿날 황전무님께 올라갑니다. 그 다음은 모두의 경험대로 다들 떨면서 다시 주말을 반납하고 수정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가겠지요. 그 사이 현장의 변화를 빠삭하게 파악한 김대리의 기획서는 각종 이해관계와 과거의 성공패턴에 의해 각색됩니다. 김대리의 심정은 어떨까요? 이런 상황은 양반입니다. 아예 황전무님이 팀에 일을 내렸는데, 그게 퉁퉁퉁퉁 김대리부터 다시 출발하면 중간 관리자들의 훈수는 결국 황전무님 의중을 매직아이처럼 읽는 것에 기반할지도 모릅니다.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G11&newsid=01977846609404344&DCD=A00701&OutLnkChk=Y


점점 더 멀어지나봐


"내가 너희 때는 이렇게 일하지 않았다"는 부장님. 중간에 좋은 사업 아이디어를 주신다고 오늘도 김대리의 기획서에 본인의 아이디어를 넣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장님이 대리 때, 전무님이 대리 때와 지금은 같은 상황일까요? 산업의 중흥기 막차에 연이자 7% 이상의 적금이 있었을 때, 고객님 댁에 물건 자체가 몇 개 없었을 때, 고객님이 해외 여행이 신기해서 면세에서 물건을 막 사올 때와 지금, 오늘날의 고객님의 취향과 씀씀이가 같을까요? 오늘날의 전략은 단순한 판 위의 논쟁을 넘어 판 자체를 허물어 버리고 있습니다. '플랫폼' 게임. 어차피 기하급수적으로 분화하는 고객에게 대량생산을 통한 저원가 공급은 정말 필수 소비재의 매스한 상품 외에는 맞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http://withpress.co.kr/archives/1410

- 4차 산업혁명이 온다면, loT, 매스커스터마이제이션, 3D프린터(혹자는 AI)

- 중요한 것은 기존의 저원가 대량생산의 시대가 소비재부터 변화를 맞이할 거란 것


직거래 틉시다 - 오더 로봇의 출현과 종말


스타트업이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괜히 뜨는 게 아닙니다. 소비자의 다양해지는 니즈를 맞추는 단순하고 빠른 조직. 대기업도 사내에 연구실 개념의 이런 스타트업을 하려고 합니다. 점점 '관리'라는 것이 얼마나 허상인지를 깨닫는 분야가 속출하고 있죠. 길게 늘어선 컨펌/대기 라인이 아닌, 팀장과 팀원의 깔끔한 프로젝트 조직. 모였다 헤어지는 것이 일상화 되는 수평적이고 유동화되는 조직이 점점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군대문화로 10년 이상 근속한 오더만 내리는 오더 로봇 부장님과 오더만 받아서 몇 년을 하고 있는 대리에게는 이런 변화가 달갑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그들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조직화'. 예전의 길게 늘어뜨린 관리 조직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시키기만 해도 일은 돌아가고, 생각하지 않고 오더를 받아 빠르게만 처리하면 되는 사람들. 시키는 사람은 현장에서 멀어진채로 고민이 없거나 책상에서 고민만 하고, 오더 받는 사람은 더이상 자신의 이야기가 먹히지 않으니 생각을 지우고 빨리 해가고 윗선의 코멘트만 반영하기 바빴죠.


혁신을 할 때 '생각없는 아랫 직원'들과 '무능한 관리자'를 만든 것은 그들의 변화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도 문제겠지만, 그렇게 만든 조직을 짠 경영자, 인사팀, 전략파트의 공통적인 문제입니다. 그런 공유된 책임 없이 직원들만 해고하고 좌천시키는 회사는 영육분리의 화법을 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왜 조직을 빨리 단순하고 수평적으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물론 축구와 같이 포메이션 잘짜도 실력이 안되는 선수 문제도 있다)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런 사람도 그런 기업도 문을 닫을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맞긴 한데, 놀던 버릇에...무한 책임과 권한의 개인적 빡셈


저도 역시 이런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생각의 전환이란 게 쉽지 않습니다. 생각을 안하고 놀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죠. 이런 단순한 조직 구조에서는 모두가 실무자입니다. 관리자의 영역은 줄어들고 중요성은 더 높아지죠. 진짜만 남아서 큰 결정의 책임이 더 커지니까요. 이런 변화가 분명 조직을 현장에 가깝게는 만들겁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엄청 빡빡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는 됩니다. 소위 '숨을 곳'이 없어지니까요. 그렇지만 분명 생산적인 고민이 생산적인 커리어를 누리는데는 도움을 줄 것 같습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기기 전에 빨리 나도 돌아다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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