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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rSun Oct 28. 2024

오뚝이상

내가 물려줄 유산

중학생 시절 오뚝이상을 받은 스토리다.


반친구들의 호명으로 그해 운동회에서 200미터 달리기를 뛰게 되었다.

긴장하지 말고 하던 대로 하자, 스스로에게 말했다. 운동회의 시작은 반별 응원과 함께 했다. 전반부에 배정된 달리기가 시작되면서 몸을 가볍게 털며 뛸 준비를 했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초반의 탄력이 중요하다, 치고 나가야 한다.' 총소리를 기다리며 전면을 응시했다.


탕!


냅다 뛰기 시작했다. 

옆반 선수가 바짝 붙었지만 밀리지 않으려고 더 내달렸다. 겨우 3미터 나아갔을 뿐이었는데, 관중들의 흐억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만 내가 옆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전력을 다해 뛰었던 상태라, 몸이 붕 떠 나가떨어진 것 같다. 바닥에서 1미터 즈음 주르륵 미끄러지는 찰나의 순간에, 내 시선이 머문 곳은 정면의 우리 반 친구들이었다. 친구들은 너무 놀라 입을 가리고 얼굴을 감싸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아프거나 창피하거나 우승은 끝났다란 생각은 둘째 치고, 이러다간 반의 사기가 떨어질 것 같았다. 이제 운동회 시작인데 말이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마자, 냅다 일어나 다시 달렸다. 

앞 선수들과는 꽤 간극이 벌어진 상태였다. 한 명이라도 제쳤으면 좋으련만, 난 그저 평범한 반대표 선수였다. 그래도 마음속으로 포효하면서 얼마나 힘주어 달렸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포효는 내가 아닌 관중에서 터져 나왔다. 트랙을 지날 때마다 앉아 있는 학생들의 응원 소리에 내가 놀란 지경이었다. 


결국에는 꼴등을 했다. 

못해도 3등은 하겠지 하고 임한 경기였는데, 못내 아쉬운 채 우리 반에게 가려고 했다. 그런 나를 잡은 것은 선생님이었다. "다쳤는데 치료부터 해야지." 그러고 보니 바지에는 구멍이 나고 그 사이로 상처뿐 아니라 손과 팔도 쓸려 있었다. 톡톡톡, 선생님이 발라준 과산화수소가 쓰렸지만,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거품을 보니 세균이 잘 죽는 거 같아 안심이 되었다. 지켜보시던 교장 선생님이 걱정도 해주시고, 반으로 돌아가니 친구들이 껴안고 토닥여줬다.


이제 운동회가 끝났다. 

교장 선생님께서 반 순위대로 시상하신 후 종례를 하셨다. 이렇게 운동회가 끝나고 돌아가는가 싶었는데, 교장 선생님이 또 다른 시상을 알리셨다. "... 마지막으로 운동회의 정신을 보여준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려고 합니다. 조문주, 앞으로 나오세요." 종례에 산만하게 있던 터라, 선생님과 친구들이 부른 뒤에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선생님의 손짓을 따라 조회대 위에 올라서면서 상황파악이 되었다.


"오뚝이상, 조문주. 이 사람은 스포츠 정신을 살려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이고 타인에게 모범을 보인 바, 이에 본 상을 수여합니다."


내 시선은 구멍 나고 흙칠이 된 체육복에 머무를 뿐이었다. 

친구들의 웃음소리, 선생님들의 미소에 멋쩍어져서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렇게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인 오뚝이상을 받았다. 종종 이때를 상기하면 교장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다른 이의 발에 넘어져 꼴등 했던, 어쩌면 단순한 사건으로 그칠 일이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은 오뚝이상이라는 칭찬을 통해 스포츠 정신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장려하고 유산으로 물려주셨다.




이제 조카가 오뚝이상을 받았던 나와 동갑이 되었다. 

조카는 부쩍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그날도 그랬다. 조카는 집에 오자마자 질문을 쏟아냈다. 책을 내볼까 시도를 좀 해봤는데 안되었던 상황이었다. 언제 가는 쓰게 되지 않을까라며 질문에 대한 답을 마무리했다. 그러자 조카는 느닷없이 "이모 존경해"라고 말했다. 조카의 고백에 놀라 이유를 물었다. 조카는 나이가 있는데도 끊임없이 시도하고 실패해도 도전하는 이모의 모습을 존경한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덧붙였다.  


조카의 고백에 뭉클했다. 

예상치 못하게 조카가 나의 목표를 일찍 달성시켜 줬기 때문이다.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한때 삶의 목표였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는 일면 접었던 목표이기도 했다. 존경이란 것은 완성형 사람에게 합당한 언어라고 생각했는데, 실패와 작은 성공을 반복하는 미생이 그런 단어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도전과 실패 이후 Next로 넘어가는 근성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도, 얼른 조카에게 모범이 되는 롤모델을 찾아줘야겠다는 책임감도 느낀다. 


인생에 없는 것이 정답이라더니.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뜻하지 않은 어려움도 있듯이 말이다. 예측불허의 인생 속에서 오늘도 나는 한 발자국 내디뎌본다. 그렇게 또 오늘을 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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