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중지추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재능(才能)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짐을 이르는 말.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배고팠던 학창 시절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헌신과 함께 선생님들과 친구들 덕분이었다.
눈을 뜨면 빨리 학교엘 가고 싶어 서둘러 책가방을 챙길 정도였다. 그렇다고 선생님의 훈육이 없었던 게 아니다. 필자는 과거 공교육에서 좋은 자질에 대한 훈육을 받았다고 본다. 독종 상급자에게조차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본기는 1학년 초반 한 선생님의 훈육 덕택이었다.
막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였다.
한 수업을 마치고 처음 숙제라는 것을 받았다. 집에 가서 주어진 과제를 해오는 것이다. 처음 받은 숙제라 정성껏 했다. 그러나 다음 수업에서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하지 않으셨다. 안 하셨으면 그만인데, 어린 필자의 주목을 끈 것은 한 남학생의 신난 춤사위와 기쁜 외침이었다. 나 숙제 안 했는데 숙제검사 안 했다~ 안 들켰지롱~ 어린 필자는 그게 무척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날 내준 숙제를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 꼭 안 해도 되는 일이라고 인지한 건지, 아니면 요행을 바라고 싶었던 건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숙제를 낸 그 수업이 다시 돌아왔다.
편안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하는데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시작하신다고 했다. 숙제 안 한 사람 일어나! 필자는 일어났고 손바닥에 회초리를 맞았다. 무척이나 따가웠다. 손바닥만큼 마음도 따가워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뭔지 모를 부끄러움이 마구 솟구쳤다. 수치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께 걸린 게 창피해서였을까. 다른 이의 요행이 내게는 통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그 이후부터 필자는 결단했다.
숙제검사를 하든 말든 내 숙제는 한다. 더 확장해서 누가 보든 안보든 내 할 일은 한다. 누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내 할 일은 한다. 아마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은 내 할 일을 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은 무책임함, 누구를 팔로우해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함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후의 행보가 그 부끄러움의 실체를 말해준다.
직장에서의 어느 날이었다.
모르는 거 같아도 윗사람 눈에는 다 보여. 모니터를 응시하며 일하는 필자에게 팀장이 말했다. 뜬금없는 말씀에 잠시 일을 멈추고 팀장님을 바라봤다. 일이 많긴 했다. 부서업무 2건과 사내 조직문화 개선 TF를 병행하고 있었다. 일 년 반을 매일 밤 11시 퇴근, 주말마다 출근을 했다. 인원 1명을 더 충원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한 적이 한번 있었으나, 팀장은 할 사람이 없다며 단칼에 잘랐다. 그런 분이 칭찬이라고 한마디 하신 것이 저 말씀이었다. 아마도 초과근무한다는 등 군말 없이 그저 할 일을 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업진도율은 각 90%, 85% 달성 시 팀장은 높은 연봉을 받고 이직했다.
사업진도율 각 100%, 90% 달성 시 그 위 상급자는 승진하셨다. 필자는 평소 관심 갖던 부서로 전보되었다. 업무 scop을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다. 부서 이동 시 1명에게 인계했는데 곧 1명이 추가 투입되었고 뒤이어 1명이 더 추가되었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뺑이를 치긴 쳤구나. 누군가 알아봐 주길 바라고 한 것은 아니었다. 내 할 일을 하고 결과에 순응할 뿐이었다.
혹자가 묻는다.
승진했어? 월급이 올랐어?
아니. 아니.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히 했어?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얻은 게 뭐야?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성에 안 차기로 유명한 OO이 칭찬하신다. 유명한 독종 OO이 내 보고엔 성질을 부리지 않으신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OO이 내가 한 프로젝트라면 통과라고 하신다. 사표소환자 OO가 내 보고서를 고치지 않으신다. 장소, 시간, 사람만 바뀌었지, 공통적으로 독종이라 불리는 그분들은 필자의 결과물에 만족하셨다.
가장 어려운 (내부) 고객을 만족시켰던 경험.
그게 필자가 얻은 것이다. 필자는 잘한다 어필할 줄을 모른다. 어느 순간 상대방이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걸 알아챌 뿐이다. 단박에 가시적으로 신뢰를 얻기는 어려운 것 같다. 시간과 크레딧을 함께 채워나갈 때 촘촘한 신뢰망이 형성되는 걸 경험한다. 타인의 신뢰는 나 자신에 대한 신뢰감 상승에도 기여한다.
낭중지추.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시간이 흐를수록 진가는 드러난다. 그러하기에 기본기가 더더욱 중요하다. 한결같이 책임감과 성실함을 보여주는 것, 더불어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뻔하지만 실상은 지키기 어렵다. 리워드가 없는 상황에서 주변의 노이즈는 시험에 빠뜨린다. 그럴 때 필자는 선생님의 훈육을 기억한다.
그 한 번의 숙제가 뭐라고 글이 길었다.
선생님의 훈육이 아니었으면 그 아이는 어떤 자질로 살아오게 되었을까. 숙제검사를 안 하셨더라면 그 아이는 요행에 도취되었을까.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좋은 대학을 가려는, 전쟁터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는 오늘날이다. 공교육 이후 사교육 현장에서 몇 곱절의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전쟁터는 학교 졸업 이후에도 장소만 바뀐 채 반복된다. 평생 몇 곱절의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은 쉽지 않다.
어디서든 통하는 기본기.
더불어, 필자는 사교육이 줄 수 없는 부분을 공교육이 채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번 수능을 치른 학생들에게 대학을 가는 것은 임무 종료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 시작된 것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