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비즈니스에서 ‘위치 선정’이 추월보다 강한 이유
초등학교 때 일이었다. 반 친구들과 축구를 하던 어느 날, 공이 굴러가기만 하면 친구들은 우르르 몰려다녔다. 누가 공을 잡을지, 누가 먼저 슛을 할지, 모든 시선과 움직임이 공에 집중됐다.
나만 달리지 않았다.
나는 골키퍼 바로 앞, 공이 올 만한 길목에 조용히 서 있었다. 애들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공이 어떻게 흐르는지 가만히 지켜보면서, 필요할 때 공을 걷어냈다.
나는 골을 넣지도 않았고, 가장 많이 뛰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 팀은 단 한 골도 실점하지 않았다.
“왜 자꾸 막아?” “재미없게 하네.”
아이들은 투덜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 상황이 오히려 재밌었다.
진짜 경기가 벌어지는 곳은 ‘공이 있는 곳’이 아니라 ‘공이 도달할 곳’이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얼마나 열심히 뛰는가’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앞서.
하지만 어떤 게임은 속도가 아니라 위치가 결정한다.
누가 어디에 서 있었는가. 누가 흐름을 미리 읽고 그 자리를 지켰는가.
이건 단순한 반사가 아니다. 전체 판을 읽고, 중요한 순간과 지점을 예측하는 능력이다.
그 능력이 실력이고, 결국 결과를 바꾼다.
이 전략은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애플은 누구보다 먼저 ‘모바일 인터넷’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술 성숙도와 사용자 경험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조건이 맞물렸을 때, 아이폰이라는 이름으로 ‘모바일 인터넷’의 개념 자체를 새로 정의했다.
테슬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완성차 기업들이 하이브리드와 연비 경쟁에 집중할 때, 테슬라는 전기차 중심의 생태계를 조용히 준비했다. 배터리 기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디자인.
그리고 전환점이 왔을 때, 이미 그 자리를 선점한 상태였다.
이들은 공이 있는 곳이 아니라, 공이 올 곳에 서 있던 플레이어였다.
모두가 뛰고 있을 때, 가만히 서 있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불안하다. 보이지 않는다. 지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흐름을 알고 있다면, 그 정지 상태는 패배가 아니라 전략이다.
세상이 속도를 강요할 때, 진짜 힘은
‘어디서 기다릴지를 아는 사람’에게 있다.
나는 지금 공을 쫓고 있는가, 흐름을 읽고 있는가?
가장 북적이는 곳에 달려가고 있는가, 다음 타이밍을 기다리는가?
무작정 뛰는 대신, 정확한 위치에서 기다리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가?
공은 계속 굴러간다.
하지만 게임의 흐름을 바꾸는 사람은, 이미 그 길목에 서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