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파악
“멀대 같고 하얀 동생님은 눈탱이 맞기 딱 좋아.”
딱히 나쁜 질문을 한 것은 아니었다. 농사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순박하고 성실히 일군 농작물을 제 값에 사들여 꾸준한 거래로 동반성장을 꾀한다. 그런 제안을 하는데도 눈탱이를 맞는다고?
무가 필요하다. 단단하고 즙이 많은 김장용 무가. 국밥집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사장님은 들쭉날쭉한 품질과 높은 단가에 지쳐있다. 올해가 작년보다 비교적 상승률이 더욱 컸다. 마진을 위해 금액을 정확히 제시하였다. 상응하는 가격이면 거래처를 바꾸겠다는 것. 일반적인 도매, 소매가격으로는 맞추기 힘든 가격이었다. 산지 직거래만이 답이었다.
경상남도 창녕군은 마늘과 무로 유명하다. 특히 단무지용 무를 대량으로 재배하는데 전부 중국 수출용이다. 단무지용 무는 김장용과 다르게 얄쌍한 사람의 다리처럼 길게 직선으로 뻗어있다. 품종은 다르지만 키우는 방법은 다르지 않다. 설마 이 넓은 대지에 위탁재배 농가 하나 없을까?
다행히 한 농가에서 관심을 보였다. 킬로당 600원에 위탁재배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역시 답은 현장에 있나 싶었다. 그러나 이어 붙은 조건들이 무겁게 달라붙었다.
추수 한 무는 항온항습이 되는 거대한 창고에서 오래 보관할 수 있다. 다만 문을 자주 열어 환경에 문제가 생기면 썩기 시작한다. 추수한 무를 1달 이내에 전량 소비하는 것이 첫 번째 조건. 운송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 조건이었다. 국밥집은 깍두기를 1년 내내 소비한다. 한 번에 담가 1년 내내 쓰기엔 국밥집 주방 공간이 부족하다.
운송을 우리가 떠안으면 마진율은 수직 하락한다. 게다가 창녕에서 서울까지 주 1회 날라다 줄 기사님은 돈으로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역마진. 첫 번째 현실을 실감했다.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귀한 인맥으로 농산물 시장의 경매사님을 뵐 수 있었다.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일이다. 때문에 좀 더 현실을 알려주시고 운이 좋으면 생산자도 직접 소개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새벽같이 경매사님이 계시는 시장으로 향했다.
“멀대 같고 하얀 동생님은 현지에서 눈탱이 맞기 딱 좋아.”
“만약 이야기가 잘 풀린다 해도 거기서 외국인 일꾼들 빵셔틀이나 해야 할 거요. 그 친구들은 비싼 프랜차이즈 빵 아니면 안 먹어.”
“만약 동생님이 내 친동생이라면 쥐어 패서라도 뜯어말릴 거요. 양심적인 도매업자 소개해 줄 테니 이야기라도 나눠봐요.”
매콤하군. 현실을 매운맛으로 표현한다면 스코빌 지수가 얼마나 될까?
겨우 두 가지 플랜만 확인하고 포기하기엔 참 교육(?)이 덜 된 것일까? 남단(南端)과 수도권을 가 보았으니 이번엔 동쪽까지 확인해야 현실 파악이 완료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