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우리 모양의 이정표
유채의 줄기를 잘라내고 머리(봉우리 부분)만 데친 후 물기를 꼭 짠다. 바지락을 술과 묽은 간장으로 볶는다. 술로 볶은 바지락즙에 다시마 육수, 간장, 겨자를 넣고 잘 섞는다. 마무리된 양념에 유채와 바지락을 잘 섞어서 낸다.
많은 요리 만화가 있다. 허영만 화백님의 식객. 데라사와 다이스케 님의 미스터 초밥왕 등, 판타지와 극사실주의에서 적정한 선을 지키며(간혹 초밥 한입에 우주를 느끼고 대지를 느끼며 하늘을 날기도 하지만...) 독자를 즐겁게 한다.
국내에는 인지도가 없어 절판되었지만 “미스터 요리왕”이라는 작품이 있다. 제목부터 주인공 이름까지 비슷하여(초밥왕 : 쇼타 / 요리왕 : 소타) 유사작품 취급을 받기도 하지만, 이 작품의 마니아들은 달리 생각한다. 판타지는 1g도 포함되지 않은 순도 100%의 극사실화다. 때문에 요리의 레시피가 당장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하며, 재료 하나하나가 극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예의 유채 바지락 겨자 무침은 당장이라도 저녁 반찬으로 만들 수 있을 듯하다. “재료를 소중히.” 사업 슬로건으로 정한 문구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매체로 접한 재료에는 묘한 판타지가 있다. 먹어보지 못한 재료라면 더욱 그렇다. 나는 요리왕을 볼 때까지만 해도 레시피에 나오는 생 유채를 먹어본 적이 없다. 우연히 가공품으로 접하였다.
유채기름은 놀라운 정도로 개성이 없다. 음료에 비유하면 미네랄워터이다. 예부터 동래파전은 유채기름에 지져야 제맛이라지만, 특유의 무개성(無個性)은 다른 기름을 희석할 때 무척 유용하다. 모두가 동래파전의 고장인 부산에라도 살지 않는 이상 유채기름을 접해본 분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유사제품을 접해보았다.
카놀라유라고 들어보았는가?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유채의 기름이 바로 카놀라유다. 비록 유채기름만큼 투명하진 않지만 말이다.
재료에는 상성이 있다. 어려워 보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간단한 상성은 백종원 님이 고기를 구울 때 하신 말씀에 비유된다. 고기는 자기 몸에서 나온 기름으로 구운 게 가장 맛있다는 말씀이다. 돼지고기는 돼지기름, 소고기는 소기름에 지지듯 구운 것이 최고다. 쌀은 그 고장에서 나온 물로 지은 것이 가장 맛있고, 김장에 쓰는 배추는 우리 땅이 아닌 외국산 배추로 담그면 물기가 많아 김장을 망치고 만다. 반대로 이탈리아 요리를 지중해가 아닌 국산 토마토로 만들면 깊은 맛이 약한 것도 같은 이치이다.
나는 돌산갓으로 페스토를 만든다. 겨자과 식물인 갓에 어울리게 겨자도 곁들이고 참기름의 너무 강한 풍미가 맛을 가리지 않게 유채유도 아낌없이 넣는다. 하루는 갓 대신 유채를 넣어 만들어보았다. 유채와 유채기름이 함께 들어간 페스토. 맛은 말할 것도 없이 기가 막혔다. 오히려 갓페스토보다 더 맛있다고 손을 들어준 분도 계신다.
독서를 즐기면 그 끝없는 방대함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한 권의 책을 통해 파생되는 책은 지평선처럼 연결되어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준다. 재료에 심취하고 요리를 하는 것도 같다. 작품에서 접한 작은 재료 하나에서 사업의 길을 찾고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한다. 나는 이런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부드러운 카오스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