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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행원 A Dec 13. 2016

아등바등 사는 것에 대하여

그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나는 어제야 알았다.

그녀는 세탁 체인 점포의 주인이었다. 주인이었는지 소작하던 사람이었는지 잘은 모르지만 아마 맞을 것이다. 천원에서 십원 한 장 뺀 가격에 셔츠를 세탁하고 다림질까지 해준다는 세탁업체의 대리점 점주. 남자 은행원의 숙명으로 셔츠를 전투복처럼 입어야 하는 입장에서, 다림질 손재주가 없는 나는 구백구십원에 나의 다림질 시간을 산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셔츠들을 맡겼다.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홀가분해지는 금요일 저녁이 되면 나는 구석에 던져둔 셔츠 네 장에 방금 벗어놓은 그날의 셔츠까지 다섯 장을 왼팔에 켜켜이 포개어 저 세탁 점포에 들르곤 했다. 가게는 좁았고 언제나 옷들로 작은 의산의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카운터 너머에는 그녀가 옷들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나이는 얼추 40대 후반에 깡마르고 살집이 없는 얼굴이었던 그녀는 손님이 올 때마다 어색하게 웃었다. 아마 정말로 어색하진 않았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런 느낌을 받았다. 때로 가게에 들어서면 그녀가 납 같은 낯빛을 하고서 먼저 온 손님들의 시비를 가만히 받고 있는 것을 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도 그녀는 웃었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그녀에게 송구스런 일이지만,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점포는 남들이 출근하기 전에 문을 열고 남들이 퇴근하고 나서야 문을 닫았다. 카운터와 그녀의 발치에는 항상 손님들이 세탁물로 맡긴 옷들이 가득했다. 옷으로 꽉 찬, 거대한 공장 입고용 가방을 보며 나는 어릴적 읽었던 이솝우화 책에 나오는, 일만 하는 가엾은 나귀의 등짐을 그린 삽화를 떠올렸다. 내가 본 그녀는 언제나, 언제나 그 큼직한 가방들 틈바구니에 끼인 채 살았다.

어느날 가게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상중이어서 당분간 영업이 어렵다고, 죄송하다는 문자였다. 그 전에도 그녀는 자녀의 군입대 때문에, 또는 본인이 아파서 등등 가게를 비운다는 메시지를 주곤 했지만, 며칠씩이나 비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땐 맡겨놓은 세탁물이 없었기 때문에 당장 옷을 꺼낼 수 없어 곤란한 것은 아니었지만, 상이 길어지면 다른 곳의 세탁소를 이용해야 하나, 같은 생각을 하며 문자 창을 닫았다. 가게 앞에 나붙은 상중이라는 출력용지는 한 주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당연히 그녀가 그 다음주엔 다시 영업을 재개할 거라고 생각했다.

과연 나의 생각대로 문자를 받은 날의 정확히 다음 주 그날에 가게는 다시 문을 열었다. 평소의 두 배가 되는 세탁물 덩어리와 함께 방문한 그 점포에, 카운터 뒷편에는 그러나 그녀가 아닌 그녀의 동년배쯤 되어 보이는 다른 여자가 서 있었다. 나처럼 평소의 두 배의 세탁물을 안고 줄을 서 있던 손님들 중 하나가, 내가 궁금했던 그것을 물어봤다. 그녀는 왜 나오지 않았느냐. 그러자 새로 온 여자가 대답했다.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그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나는 어제야 알았다.

그녀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큰 애도를 표할 정도로 그녀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세상 모든 이의 죽음에 일일이 슬픔을 표시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그렇게 별안간 작고했다는 사실은 마치 호수에 던진 돌이 일으키는 파문처럼 작고 조용히 내 속 전체를 하루 내내 흔들었다. 왜인지는 모른다. 내 주제에 그녀의 삶의 고달픔을 연민했던 것인지, 아니면 불과 몇 달 전에 그녀의 아들이 군입대를 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납 같은 낯빛을 했던 것이 사실은 병의 징후였음을 내가 알아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일종의 후회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녀도 아등바등 살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팔자 좋은 있는 집 마님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세탁 체인을 열어두고는 자기 몸보다 큰 세탁물 가방하고 씨름하고 있었을 리 없으니 말이다.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삶을 살다가 작고하고 마는 그 루트에서 얼마나 벗어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에 나는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루종일 싱숭생숭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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