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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기 Oct 23. 2015

6. You are my sweet affliction

You are my sweet affliction

친구 같은 통증이 있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내게 속한 것이었다
그것을 아프게 느끼지 않은 것은
숨처럼 자연스런 것이어서
나는 그 고통을 음미하며
그것을 내 존재의 증거로 여기곤 했다

어느 날 네가 다가왔다
나는 고운 너의 손을 잡았다
너의 눈빛에선 과일향이 났고
그 향기에 취한 적이 있었다
그 뒤로 내가 갖고 있던 아픔엔
너의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그 고통은
더 이상 익숙하지 않은
향기롭고 낯선 통증이 되어 나를 찔러왔다

무언가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그것에게 향기를 묻혔다는 뜻이다
내 고통엔 너의 향기가 묻었고
너는 내 고통의 원인이 되었다
너에게서 온 달콤한 향기가
도리어 나를 아프게 하고 있는데
나는 그 향기에 코가 마비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젠 이 향기 어린 통증이
내 존재의 증거가 되어버리진 않을까
그것을 걱정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되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친구가 여자친구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밥을 사겠다고 했다. 친구 커플과의 만남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둘이 맞춘 커플 폰 케이스였다. 두 케이스를 이어붙이니 "You are my sweet affliction"이라는 문구가 완성됐다. "affliction"이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 찾아보니 "고통, 고통의 원인"이란 뜻이었다. 당신은 나의 달콤한 고통이라니. 근데 갑자기 영감을 받아 이 문장으로 시를 쓰겠다고 해버렸다.

사랑하는 당신이 나에게 고통의 원인이 된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여기서 상상이 시작됐다. 내가 아는 친구는 고통 하나쯤 자연스럽게 달고 사는 친구였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존재의 증거로 삼는 친구였다. 아마 고통이라 쓰고 고독이라 읽는 단어일 것이다. 하지만 고통에 익숙해지면 그것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게 되는 것이 몸의 일인데 연인이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혹 고통이 새로운 것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친구의 연인은 딸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 작은 열매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아마 친구에겐 연인의 향기가 배었을 것이다. 물론 친구가 갖고 있던 고통에도. 이제 그 고통은 자연스럽지 않은, 특별한 것이 되었을 것이고 그 친구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그것에게 향기를 묻혔다는 뜻일 것이다. 당연한 것이었던 나의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당신의 향기. 만약 내가 당신으로 인해 다시 아프게 된다면 행여나 이 고통마저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리진 않을까 두려울 것이다. 그러는 한편 그 고통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 둘이서 하나를 이루는 날을 꿈꾸게 될 것이다.

둘은 아직도 연애 중이다. 부디 오래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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