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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기 Dec 20. 2015

첫 번째 편지

나의 글에 관하여

먼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형께 답장을 보내는 것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세요. 형의 말씀을 저는 언제나 사랑하여 포옹하는 기분으로 경청하지마는 저번 편지엔 가시가 너무 많았던 탓에 읽어 내려가는 제 온 몸에 알차게 박혀버렸지 뭐예요. 그것들을 하나하나 뽑아낼 때마다 울리는 통증을 음미하다 보니 답장이 늦어졌습니다. 만약 제가 형의 편지를 읽자마자 붉으락 푸르락하며 답장을 휘갈겨 보냈다면 형께서도 제게 실망하셨을 것을 알아요. 편지를 쓰는 지금은 형께서 글에 담으신 것이 가시가 아니라 제 혈에 꽂힐 침이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K형, 형께서는 글을 믿지 않는다는 저를 신랄하게 비난하셨지요. 본디 지표란 세계를 호명하지 못하는, 터질 듯한 답답함에서 탄생한 것인데 너는 글을 누리는 호강에 겨워 '지표란 가리키는 것일 뿐 존재 자체가 될 수 없으니 무의미한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면서요. 세계를 호명하는 기쁨을 알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에 대한 회의는 '사랑'이란 단어를 몰라 사랑을 심장에서 꺼내지 못하고 먹먹해 하는 이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저의 절망이 과연 정의로운 것이었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의라고 하니 갑자기 언젠가 친구와 나눴던 정의에 대한 소모적인 필담이 떠오릅니다. 저는 사회를 통해 합의되는 명제로서의 정의를 말한 반면 그 친구는 개인을 통해 정립되는 가치로서의 정의를 말했지요. 그 탓에 '왜 너는 내 말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너의 말만을 고집하냐'라는 공방이 반복됐고, 결국 그 반복으로만 밤을 지새웠더랬습니다. 그건 사실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어떻게 같은 단어를 가지고도 그토록 철저히 어긋날 수 있었을까요. 태어나기 전부터 평생지기의 운명이 예정되었던 친구와도 그토록 절망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확실히 저에게 그 친구는 글이 아니라 눈빛을 나눌 때 더 가깝게 느끼는 친구예요.


형, 형의 말씀대로 저는 그저 글이 갖는 한계를 목격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한계가, 그 불가능성이 너무나도 서럽고 아파서 그만 좌절해 버린 것이겠습니다. 저의 좌절은 저만의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나를 아프게 한 이것은 부정한 것이다.'라고 말해선 안되는 거였어요. 제가 아팠던 것은 그것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를 했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하지 않고 욕망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제가 가진 것이 글 뿐이라는 생각에 그것의 가능성을 끝없이 확장하려 했어요. 더 공손하고 세련된 글을 쓸 수만 있다면 그와 나 사이의 거리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닿을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아니, 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저는 남들로부터 일부러 멀어졌어요. 거리가 멀수록 성취감은 컸으니까요.


하지만 형, 저의 본심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게 된 건 정말 그런 사기꾼 같은 마음이 아니었어요. 제가 쓸 수 있는 것은 오직 저에 대한 이야기뿐입니다. 이것 하나만큼은 절대적으로 진정되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제가 남들에게 가닿고자 한 방법은 그저 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제 글이 저보다 조금이라도 근사해 보일 때면 여지없이 악취가 났어요. 제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저 나를 팔기 위해 글을 투척하진 않았어요. 정말입니다. 아니, 아니요. 아닙니다. 사실 이젠 그런 확신이 없습니다. 악취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 방안에 가득했는데 제 후각이 마비되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K형, 한때는 이 세상에서 제 것이 아닌 것들을 잘라내면 저만 남지 않을까 했지만 지금은 저 자신마저도 잘라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 감각을 잘라내고, 이성을 잘라내고, 욕망을 잘라내고. 그렇게 잘라내다 보면 언젠가는 제 사랑만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랑이란 단어에는 많은 의미들이 섞여 있겠지만 그 중엔 분명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게 하는, 한 방울이라도 좋을 사랑의 정수가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는 그 한 방울의 사랑을 추출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 동안은 저 역시 사랑이란 단어를 심장에 보관해 두려합니다. 이 말이 사랑을 경험하지 않고 상상만 해서 비관적으로 된 거라는 형의 일침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상상하는 중이 아니라 믿고 있는 중이라고요.


얼마 전까지 코감기를 앓아 숨쉬는 일이 힘들었는데 부디 형께서는 환절기를 현명히 넘기시길 바랍니다. 인연에도 환절기와 같은, 떨어짐과 만남의 과도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떨어짐은 언제나 아프고, 만남은 언제나 설레지요. 아픈 줄 모르게 떨어지고, 설렌 줄 모르게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심장을 담금질하다보면 그곳에 담긴 한 단어가 영영 갖혀버릴 것 같아서요.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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