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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기 Oct 02. 2015

글과 그리움에 관하여

사람과 사랑. 몸과 맘. 몸 전체를 의미했던 예전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 이런 의미들의 경계에 중요한 통찰이 숨어있다고 나는 믿는다. 언어와 의미 사이엔 필연적인 관계가 없을지 몰라도, 언어와 언어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요즘 비슷한 모습의 단어들을 떠올리고 그 연관성에 대해 나름대로 상상을 하곤 한다.
 
요즘은 글과 그림, 그리고 그리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글과 그림은 닮았다. 둘 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의미를 끄집어내는 행위니까. 나는  그중 글을 좋아했다. 어려서부터 인식욕과 표현욕이 남달랐다. 책을 읽으며 내 방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했고, 일기를 쓰며 사진을 찍어 보관하듯 일기장에 그 날의 하루를 새길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했다. 그림엔 흥미가 없었지만 글은 정말 좋아했다. 그림엔 손기술이 필요하지만 글은 생각만 하면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글과 그리움이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둘의 관계가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내가 글을 쓰는 동기, 쓰는 글의 내용, 방식을 떠올리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글은 내게 있어 스쳐갔던 것들을 다시 눈앞으로 되살리는 작업이다. 길을 가다가도 지난날의 실수가 떠오르거나,  하지 않아서 혹은 해서 생긴 후회가 생각나기도 한다. 어떤 때엔 지난날에 나를 지탱해주었던 행복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한다. 나를 스쳐간 것들을 나는 가끔 재생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니까, 나는 무언가를 그리워할 때 글을 쓴다.
 
그리움이 생긴다는 것은 쓸쓸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쓸쓸해지고 싶을 때가 있다. 가라앉은 기분에 바람을 실어 보내, 그것이 다시 떠오를 수 있도록 밤거리를 거닐고 싶을 때가 있다. 가라앉은 기분을 다시 띄우고 싶다면, 일단 쓸쓸해져야 한다. 쓸쓸해져야만 내가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고, 그것을 알게 되면 비로소 가슴에 생긴 구멍을 다른 것으로 메우거나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이 딱 쓸쓸해지기 좋은 시기가 아닌가. 낮엔 햇빛이 그림자를 달구다가도 밤만 되면 찬바람이 어깨를 밀친다. 어쩌면 밤공기를 좋아한다 말하는 사람은 한낮의 따스함을 그리워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워할 무언가는 경험적인 것이지만 무언가를 그리워할 수 있는 건 선험적인 것이다. 나는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나를 채워주던 것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자 그것이 그리워 목 놓아 울었다. 그리움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본능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리움을 항상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대상을 만나 마음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외롭다고.
 
그리움의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시간 혹은 감정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스쳐간 것이어야 한다. 스쳐간 무언가가 나는 이따금씩 그리워지고 그럴 때마다 글을 쓴다. 말하자면 내게 있어 글은 ‘그리움의 표현형’이다. 그리움이 사무칠 만큼 가득 차서 결국 넘치게 될 때 흘러나오는 것이 나의 글이다.

그래서 나는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는 일이 정말 힘들다. 내가 쓰는 대부분의 글이 맥주잔에 담긴 맥주가 아닌 잔 밖으로 흘러나오는 거품과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글은 과잉되기도 하고, 결국은 거품이 가라앉듯 쓸 땐 큰 의미 같아 보였던 것이 시간이 지나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언젠가 내 마음에 거품이 아닌 순수한 그리움이 넘쳐흐를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직 나는 어리고 나를 채우고 있는 것이 순수한 것인지 거품인지 분별하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거품은 사라지고 완연한 그리움이 넘쳐 내 주변까지 적시는 순간이 올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잡아내 글의 힘을 빌려 새겨두려 한다. 공책에 나의 시간을 잡아냈던 어린 시절의 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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