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생흔

정멜멜의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 를 읽고

by 여온

올해 1월부터 카메라에 취미를 붙이고 있다. 원래 아이폰으로 친구들의 사진을 찍는 걸 좋아했지만 그렇다고 카메라까지 사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을 생각은 없었는데. 회사 후임인 상훈 씨에게 카메라를 주문했다는 얘기를 들은 게 계기였다. 관심은 있던 분야였으니 유튜브로 카메라 관련 영상을 찾다 보니 알고리즘에 의해 요즘 나온 카메라의 추천 영상이나 스트릿 포토그래퍼가 행인에게 말을 걸며 사진을 찍어주는 콘텐츠를 보며 점점 나도 이런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내 주변 사람들을 잘 찍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자라났다. 상훈 씨가 예약했다는 카메라가 후지필름 제품이었다는 게 기억나 콤팩트 카메라인 X100VI를 찾아봤지만 이미 품절이고 온라인에선 100만 원 가까이되는 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고 있었다. 나도 공식 매장에 연락해 예약을 했지만 1년은 기다려야 하는 순번을 받았다. 이미 나는 몸이 달았는데 1년 간 유튜브만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대체제를 찾다 X100VI의 정가보다 100만 원이 더 비싼 니콘의 ZF를 쿠팡으로 구매했다. 지금은 번들렌즈에 더해 탐론의 28-75mm 줌렌즈를 추가로 구매해서 약속이 있을 때마다 가지고 나가 신나게 사진을 찍고 있다.


『다만 빛과 그림자가 그곳에 있었고』는 카메라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사적인서점에 방문에 지수님께 책 추천을 요청했을 때 『공부의 위로』와 함께 추천받아 산 책이었다. 사진작가의 에세이집이라는 설명에 흥미가 돋았다. 카메라, 사진에 대한 전문 서적에선 기술을 배울 수 있지만 사진가의 에세이에선 사진에 대한 태도, 사진을 찍는 행위가 삶에 주는 의미를 엿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읽어보니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고, 1부에선 스튜디오와 소품점을 창업하기까지의 여정을, 2부에선 출장으로 나갔던 해외에서 찍은 사진을 소개하며 해당 지역의 인상과 추억을 소개하고 있었다. 사진에 대한 직접적인 에세이는 3부에 있었는데, 사진을 찍으며 느낀 점들을 삶의 은유로 풀어내는 문장들이 공감이 되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즉각적으로 대답하고 찾아내 곧게 달려갈 수 있었던 사람이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럼에도 행복하게 그냥 해왔던 것이, 해도 해도 즐거운 것이 있었고, 그게 단 하나의 심지였다. 살다 보니 전혀 예상도 못 했던 길이 내 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했지만, 좋아서 계속해온 일들이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준 셈이었다. 명확한 재능이 없어 표류한다고 생각했지만, 무언가를 지치지 않고 좋아해 왔다는 것 자체도 내가 가진 큰 재능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241쪽


회사에 있지 않아도 회사일에 대한 고민과 스트레스가 머릿속을 채우며 일 외에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었던 때를 지나 지금 나에겐 몇 가지의 취미가 새로 생겼고 몇 가지의 취미를 되찾았다. 사진 찍기와 달리기는 새로 생긴 것이고 책 읽기, 글쓰기, 영화 보기는 되찾은 것이다. 일을 하면서도 오늘 달리며 나의 자세가 어땠는지를 생각하거나 며칠 전 찍은 사진을 어떻게 보정할지를 생각하고, 주말에 카페에 가서 어떤 책을 읽을지, 다 읽은 책의 독후감은 어떤 내용으로 쓸지를 고민하는 나를 보며 딜레마를 느낀다. 내가 그런 취미를 즐길 수 있는 건 본업을 열심히 해서 돈을 벌기 때문인데 취미 생활을 즐기느라 본업에 소홀하게 되면 당당히 몸값을 올리지 못하거나 지금 내 몸값을 증명하지 못하게 되어 취미를 즐길 여유가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일에 몰입하며 영영 잃어버린 것들이 많다고 한탄하던 게 불과 1~2년 전이다. 작년 러닝을 시작하면서 출근 전 새벽 운동을 하는 아이덴티티가 생겼고 그게 마음 회복의 계기가 되었다. 무미건조해진 일상에 서글픔도 못 느꼈던 때를 생각하면 많이 달라지긴 했다.


나는 성취 중독이었다. 언제나 역량보다 큰 일을 끌어안았고, 그것을 무사히 끝냈을 때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을 아는 사람. 그렇다고 매 순간 즐겁게 일을 한 건 또 아니었다. 나는 늘 지나치게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욕심은 더 많았던 사람. 어떠한 달성감이 없는 상태의 나도 사랑할 수 있을까. 결과와 보람 없는 시간을 보내도 나 자신이 의미 없지 않다고 힘줘서 말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 이런 생각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이 결심들을 오래 잘 보살필 수 있을까. 86쪽


취미에 에너지를 과하게 쏟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 나는 다시 에너지의 비중을 일에 더하겠지. 그러다가 주말에 출사를 나가고 단골 카페에서 책을 읽던 나를 다시 그리워할 테고. 50 대 50의 기계적인 분배는 불가능하니 항상 위기감을 신호로 에너지를 새로 분배하며 상황을 바꾸려 할 테다. 그거면 되겠다. 다만 어디에 비중을 두고 있는 시기든 간에 후회 없이 몰입하길 바란다. 다양한 활동으로 내면을 채운 뒤 그것을 본업의 에너지로 삼을 수 있도록, 본업에 최선을 다한 뒤 내가 지금 이런 걸 하고 있을 때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여전히 나는 나를 지켜내는 데에 관심이 많고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언제나 눈에 총기를 띄며 무언가를 쫓는 젊은 어른이 되고 싶다. 책 독후감이 맞나 싶네. 하지만 엄연히 책을 읽고 난 뒤의 반응이다. 이게 글의 묘미지.


글을 쓰는 것이 내게 사진을 찍는 일만큼 익숙하고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사진을 찍는 일보다 나의 윤곽선이 뚜렷해지는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테두리라는 건 늘 내용물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10년 정도 지나서 봤을 때 사진에 대한 생각이 어떤 식으로든 달라져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저 지금의 기록일 뿐이고, 여전할 수도, 혹은 완전히 전복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썼다. 그 무엇이든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40대가 되길 바란다. 313쪽


책과 상관은 없지만 온통 사진과 카메라 생각 밖에 없었던 지난달엔 이런 생각을 했다.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선 빛에 민감해야 한다는데,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선 그것의 핵심 소재에 민감해져야 하나 보다. 그럼 잘 살기 위해선 무엇에 민감해져야 하지? 일을 잘하기 위해선? 사랑을 잘하기 위해선?’ 답은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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