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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기 Oct 23. 2015

4. 어느 노인의 노래

어느 노인의 노래

아이야, 삶이란 그렇더구나
후회와 행복의 윤회 속에서
지나온 세월에 이름 하나 붙이는 것이 삶이더구나
물려받은 이름은 나의 것이 아니지
그것으로 나를 세상으로부터 변별해내기엔
나의 삶은 너무나도 나만의 것이었단다
나에게 그 이름을 물어봐주지 않으련
너에게 해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가 참 많단다

아이야, 그리움이란 그렇더구나
기다려도 만날 수 없는 것들을
나는 참 많이도 그리워했더란다
만날 수 없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에 대해 알고 있니
그 마음엔 내가 있단다 그것을 기억하는 내가 있지
여전히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나를 보며
꺼져가는 불씨에 죽어라 입김을 불어 대던
한겨울의 너를 떠올렸단다
나에게 무얼 그리워하고 있느냐고 물어봐주지 않으련
향기를 묻히며 나를 스쳐지나간 것들이 참 많단다

아이야, 사랑이란 그렇더구나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것이 아닌
너와 나 사이에 떨어진 민들레 꽃씨 지켜내어
온 힘 다해 꽃 피워내는 것이 사랑이더구나
하지만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란다
그 거리를 감당하기에 너의 손은 너무도 뜨거워
무언가를 손에 쥐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지
나에게 어떤 꽃을 피워냈는지 물어봐주지 않으련
황량한 나의 텃밭을 네게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단다

아이야, 늙는다는 건 그렇더구나
몸뚱이를 불태워 영혼을 빛내는 일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어두움에 익숙해져
나는 작은 빛에도 눈부셔하는 겁쟁이가 되었구나
어른들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단다
산다는 건 세상에 성 한 채 지어
보이지 않는 적과 영원한 공방전을 치르는 거라셨지
나는 어느새 그 성에 숨어들어 작은 빗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노병이 되어버렸구나

하지만 아이야, 그래도 나의 뒷모습을 봐주지 않으련
남은 길을 홀로 걷기에
나는 너무도 많은 것에 떠밀려 왔고
너무도 많은 것을 흘려보냈으며
너무 많은 것을 깨달아 버렸단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너의 눈 앞에서 사라진다면
나의 발자국을 피해 걸어주겠니
그래서 바람이 그 흔적을 지우도록 해주지 않으련
그래도 세상에서 잊히기에
나의 삶은 충분히 의미있었으며 밝게 빛났었단다

작년의 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고민한 결과 나름의 답을 얻었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기 위해 올해 1월, 광주로 내려가 소설을 쓰고 왔다. 굉장히 추상적인 고민에 대해 확실한 답을 만들어냈다는 흥분감은 꽤 오래 지속됐다. 이 시는 그 흥분이 가시지 않은 때에 시의 입을 빌려 다시금 그 답을 재확인하려는 의도로 쓰게 됐다. 사실 또 다른 계기도 있다. 친구와의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고 기다리며 들은 다비치의 '또 운다 또'라는 노래에 영감을 받았다. 노래에 '나는 정말 울기 싫단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했단다'라는 말투에서 아이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노인의 모습이 상상됐다.

노인의 입을 빌리기는 하지만 결국은 내가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이 조심스러웠다.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노인에게 어울리는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하는데 과연 내가 전하려는 의미가 그 정도로 현숙한 것일까. 뻔뻔함이 필요했다. '아이야, 삶이란 그렇더구나'라고 적은 순간부터 정말 내가 노인이고 내가 깨달은 것들을 어린 소년에게 전해주려 한다고 생각하려 노력했다.

내가 노인이고 아이에게 나의 경험과 지혜를 짧은 노래에 담아 전해주려 할 때, 그 내용은 무엇에 관한 것이어야 할까. 삶에 대해 고민했다. 산다는 건 뭘까. 세상에 내 이름이 붙은 발자국 하나 새기는 것이 삶 아닐까. 여기서 이름이란 물려받은 이름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들이 만들어 낸 이름일 것이다. 자기 자신을 온전히 설명해 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름을 새기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삶이었다. 늙음에 대한 이야기는 순전히 상상의 산물이다. 노인은 어쩌다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게 된 걸까. 노인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의 개연성을 고민하다 보니 회한에 가득 찬 노인의 모습을 그리게 됐다.

사는 일과 늙은 일에 대해 말하는 건 노인의 입으로 노래하는 이상 말할 법한 주제였고, 사랑은 내가 이 시를 쓰게 된 계기였다. 지금의 나를 생각했다. 나는 지금 어떤 문제를 고민하고 있나. 그리움이 생각났다. 내 경험에 따르면 그리움이란 의외로 자기 자신을 감각하는 일이었다. 부재는 내 공간 안에서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고 자신의 공간을 감각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감각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노인이 갖고 있는 회한의 대부분은 이렇듯 스쳐간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연은 비교적 쉽게 쓸 수 있었다. 사실 소년과 노인의 구도가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 시를 쓰기 얼마 전 영화 '보이후드'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영화에 대한 나의 한 줄 평은 '아이에겐 길을 알려줄 어른이 필요하고, 어른에겐 자신의 뒷모습을 보아줄 아이가 필요하다.'였다. 마지막 연을 쓸 차례가 되자 이 한줄평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몸이 사라진 뒤에도 기억되기 바라는 것. 사실 노인에게 이입한 나의 욕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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