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 이지우. 동시집 『이상한 예언자』초록달팽이 2025
엄마의 새끼손가락은 유독 짧다.
원래 손가락도 짧은데 것보다 더 짧은 새끼손가락을 늘 부끄러워했다. 내가 태어나고 엄마는 가장 먼저 나의 손가락을 확인했다. 길쭉하게 뻗은 손가락을 보고 다행이라 여겼다. 엄마는 자신과는 다른 길쭉한 손을 보며 딸의 인생은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랐다. 가끔씩 내 손을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손가락이 짧으면 엄마처럼 고생하는데 너는 손가락이 기니 고생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이 되자 거실 중앙에 갈색의 삼익피아노를 들여놓았다. 없는 살림에 무리한 지출이었을 텐데. 긴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는 나를 보며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딸은 이룰 것이라 믿고 싶진 않았을까.
엄마는 아빠의 긴 손가락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중매로 만난 첫 만남 때였다. 그 후 서너 번 만남 끝에 결혼을 결정했다. 결혼을 한 직후 작은 가게가 있다던 것도,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말도 시댁에서 만든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시절엔 손 기술과 착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눈앞의 남편을 믿고 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스물넷의 어린 새댁은 경주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글세로 살림을 시작했다. 첫 아이를 임신하고도 멀리 출장 간 남편을 기다리며 무서움과 외로움을 달래던 시간을 보냈다. 나의 엄마는 처음 본 남자의 깊게 파인 눈을 보며 이 불쌍한 사람 나라도 거둬야겠다고 마음먹던, 그리 독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앞으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독하게 살아가게 될 것은, 아빠의 긴 손가락을 처음 본 그날엔 결코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이지우 동시「예언자 」를 읽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동시엔 빵을 고르던 어린 자매에게 "손가락이 길어서 피아노를 치면 잘 치겠네", "눈이 깊어 그림을 그리면 잘 그리겠네" 말하는 빵집 아주머니가 등장한다. "보라색 앞치마를 두른/ 빵을 굽"은 아주머니는 고소한 빵냄새가 가득한 가게만큼 마음도 푸근한 사람이다. 아주머니의 말을 듣던 아이들은 손가락이 길고 눈이 깊은 자신들의 엄마를 떠올린다. 그리고 아주머니에게 되묻는다.
왜 우리 엄마는 회사에 다니고 엄마만 하냐고.
손가락이 길고 눈이 깊은 사람은
마음이 더 깊어 엄마를 하는 거란다
복이 많은 아가씨들이네
「예언자 」 중
나의 엄마는 손가락이 짧고 눈이 크다. 손이 짧으면 고생하고, 눈이 크면 눈물이 많다고 했던가. 나의 엄마는 두 자식을 키우면서 많이 고생했고, 또 그만큼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나의 손을 보며 했던 말은 마치 예언처럼, 엄마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독해 지지 않아도 될 경제적인 여유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다. 손가락이 길게 태어난 나는, 엄마가 해준 말이 예언이 된 걸까.
울음이 많은 나는 엄마의 큰 눈을 닮았다. 희생과 사랑으로 가족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온 나의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나는 아주 조금은 엄마를 닮았다. 모진 세월을 견뎌낸 엄마의 짧은 새끼손가락. 이제는 짧은 새끼손가락으로 엄마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기를 응원하고 싶다. 동시 속 아주머니가 새끼손가락이 짧아서 노년에는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겠네요 이렇게 말해주었으면 참 좋겠다.
<언급된 동시가 실린 동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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