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민다는 건

김성은 「손의 기분」

by 김볕

잠이 잘 오지 않아서 뒤척이던 밤이었다. 새벽 3시가 다 되어갈 무렵 아들이 방으로 찾아왔다. 아무래도 속이 좋지 않단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약이 담긴 가방을 꺼냈지만, 소화제와 지사제 중 무엇을 먹여야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우선 물주머니에 따뜻한 물을 담아 배를 따뜻하게 해줄 요량으로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며, 아들에게 체온계를 건네주었다.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아이가 태어난 후부턴 가족 중 누구나 아프면 체온을 재어보게 된다.

열이 난다는 건 앞으로의 상황이 심각해 질 수 있다는 몸의 신호다. 다행히 열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한번 더 아들의 머리를 짚어보고, 아픈 배 그리고 손과 발을 만져보았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엄마로써 마음이 편하다.

침대에 누운 아이 곁에 앉아 손과 발을 만지며 아픈 아들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수없이 지켜봤던 밤의 시간이 아이의 손과 발을 훌쩍 키워놓았구나 새삼 놀랍다. 팔자 주름이 점점 깊어지고, 하나 둘 나기 시작한 흰머리가 더이상 감춰지지 않는 나이를 먹은 내 눈엔 덩치가 훌쩍 커져버린 아들의 얼굴에서 갓난 아기 때의 모습이 설핏 보인다. 소화제를 주고도 지사제를 먹여야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냥 소화제 먹을게"라는 아들의 결정이 고마워 눈물날 지경이다. 언제 이렇게 큰 걸까. 아니, 어디까지 더 클까.


그때 토하고 토하다 응급실 가서 입원했잖아, 수액을 맞으러 기다리는 동안 안겨있을 때 했던 다 토해서는 어휴, 차에 토한 거 치우느라 진땀 뺐잖아. 잠에서 깨버린 나와 남편은 아들의 지난 장염 에피소드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아들의 인기척 소리가 들리면 그대로 멈췄다. 아픈 아이를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뼈져리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괜찮아질 거라는 마음을 붙잡고 낫기를 기도하는 것뿐. 우리는 그렇게 모든 감각을 아이에게 맞춰놓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오랜만에 불침번을 섰다. 내가 두 번, 남편이 한 번, 또 내가 두 번. 아들이 화장실 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이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하다 잠이 살짝 들려던 차. 새벽 5시 15분, 맞춰둔 새벽기도 알람 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아이들 학원 어디로 보내세요?

문득 전날에 온 카톡 메세지가 생각났다. 이것이 나를 쉽게 잠들지 들지 못하게 한 걸까. 단순한 학원 정보 교환 정도의 질문이었는데, 나에겐 마치 부메랑처럼 '아이 엄마 노릇 제대로 하고 있어요?' 같은,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답을 하느라 손을 움직이는 내내 나의 기분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얼마 전, 아들의 중학교 첫 시험 결과를 듣고, 속상해하는 모습 보며 아이를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들었다. 미리 학원을 보내지 않아서, 제대로 정보를 알아보지 않아서 이런 결과를 받게 한 걸지도 모른다고. 아이를 믿어주면 된다고 '알아서 하겠지'라고 뱉었던 나의 말이 알고 보면 좋은 엄마인 척 하며,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회피용 멘트는 아닌지 나에게 계속 되묻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 이번에도....

아이가 배탈이 난 이유가 늦게 먹은 만두 때문이라면,

그럼 아이가 이렇게 아프게 된 건 만두를 먹자고 제안한 나의 탓일까.

더 나아가보면....

양치를 꼼꼼히 하지 않는 현재 아들의 모습이 어릴 때 좀 더 습관을 잡아주지 못한 엄마의 탓일까.

시험을 잘 치지 못한 아들의 결과가 미리 공부 계획을 세워주지 못한 엄마의 탓일까.

친구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것이 여린 마음으로 키운 부모의 탓일까.

.....

엄마로서 나는 과연 잘하고 있는 걸까.

결국 이런 생각 뒤에 남는 건 후회와 죄책감뿐이다.


김성은 동시 「손의 기분」을 찬찬히 읽어본다. 시에서 말하는 화자는 '손'이다. ''은 "있잖아, 오늘은 좀 그래"로 말로 시작하며, 자신은 나물을 무치고, 운동화를 빨고, 구운 고기를 자르고, 머리를 묶는 것 말고, 텃밭에 나가 첫 방울토마토를 따서 그걸 시로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럼 이 손은 누구의 손일까? 바로 엄마의 손. 제목이 말하는 손의 기분은 곧 엄마의 기분이다. 시인은 이 시를 쓸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남편과 나는 사랑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티나지 않는 작고 작은 손길로 지금의 아들로 키워냈다.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하지만 어느 순간 사춘기라는 이유로 '알아서 하겠지'가 '어떻게든 되겠지'로 변질될까 두렵다. 이러다 무장적 손을 놓아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하기도 하다. 앞으로도 가족을 위해 엄마로써 내 손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지만, 진정 나의 손을 필요로 하는 곳에는 닿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만약 부모에게 도망치려는 아이의 손을 붙잡아 끌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면 나는 완전 꽝인 엄마다.


"엄마, 좀 괜찮아진 거 같아. 좀 있다 학교 가야지."

복통이 가라앉고 잠시나마 깊은 잠을 잔 아들이 일어나서는 학교에 간단다. 병원을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한다. 조금 어지럽고 머리가 아프지만 쉬면 괜찮을 것 같다고. 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학교에 빠지는 건 아닌 거 같다고. 체육복을 찾아 입고 배드민턴 라켓을 가방에 꽂는다. 그리고는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와 함께 씩씩한 얼굴을 하고는 문밖을 나설 때 나는 아들의 기분을 살핀다. 그래. 잘 크고 있는 거겠지.

아들이 빠져나가고 조용해진 집안에서 내 손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어린 아들의 손을 수없이 잡고 또 잡았던 날들은 지났고, 이제는 내가 잡았던 손을 놓아주고 스스로 걸어가는 아들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동시가 실린 동시집 『못된 말 장례식 』에는 엄마의 마음이 아플까봐 뽀족한 부분을 잘라 "별일 대신/ 달일을 들려"주는「별일 달일」, 아이의 아픈 곳을 엉뚱한 곳에 짚어대는 엄마를 향한 「세상은 커다란 공」 등 다양한 어린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오늘은 아이들 틈 사이에도 선명하게 내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시인'으로 존재하는 한 사람, 자신의 두 발을 딪고 완전히 서있는 한 사람으로 먼저 존재하기를 바라는 선언. "내일할게, 엄마는" 은 나와 같은 엄마들에게 보내는 응원이라 믿는다.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건, 아들을 위한 기도.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아보는 일이다.

언제든 손을 내밀 때 잡아줄 수 있는 자리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토닥토닥 어루만져 줄 수 있기를.



동시를 볼 수 있는 곳

https://blog.naver.com/unique1013/224022992501


동시가 실린 동시집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52459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