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벨렘지구 탐방기

라 쓰고 하루 종일 2만 보 걸은 사연

by 김볕

리스본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구시가지 다음으로 유명한 벨렘지구를 여행 이튿날 일정에 넣었다.

이곳은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파스 텔 드 나타 본점이 있는 곳인데 타구스강 쪽에 발견기념비, 벨렝탑과 같은 관광지를 묶어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요즘 한창 방송 중인 지구오락실 시즌3도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찍고 있는데,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맥주를 마시는 미션이 벌어지는 곳이 바로 이곳!

우린 리스본에서 벨렘지구로 가기 위해 Cais do Sodre 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 후 카스카이스역 행 기차를 타고 벨렘에 내리기로 했다. 리스보아카드가 지원되기도 했고, 구글 맵상 30-4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로 치자면 지하철로 청량리역에 도착해서 ITX 타고 가평으로 가는 방법이랄까. 서울 사람이야 뭐 껌이지만, 관광객 그것도 외국인에게 큰 미션인 지상철 갈아타기! 조금 헤맨 끝에 역을 찾았고 20분 뒤에 온 지상철에 몸을 실었다.

테주강가로 쭉 뻗은 길과 건물, 그리고 기차에 탄 여러 사람들을 구경하다 보니 벨렘역에 금방 도착했다.


벨렘역에서 제로니무스 수도원까지는 꽤 걸어야 한다. 다행히 역에서 육교를 지나면 알폰스 두 알 부케르크 정원이 보인다. 생각보다 아담한 정원이 잘 가꿔져 있어서 날씨가 좋은 봄과 가을엔 사람들이 꽤 앉아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한적한 공원을 통과해 좀 더 걸어 도로를 건너면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만날 수 있다. 성수기 시즌엔 표가 없어서 꽤 기다리거나 가고도 헛걸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우리가 간 1월은 비수기 시즌이라 줄을 오래 서지 않고도 표를 끊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도 꽤 다양한 인종과 국적, 연령대의 사람들이 수도원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수도원 안이 생각보다 조용해서 더 좋았다. 사람이 없어서 좋은 건지 수도원의 고요함이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만약 이곳에 사람들이 많았다면 고즈넉한 수도원의 분위기를 체감하기는 어려웠겠지. 유명 관광지에 어렵사리 방문했는데 그곳에 모인 수많은 인파에 치여 지칠 때가 가장 허탈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런 면에서 1월에 온 것이 참 다행이다 싶다.

수도원 구경을 마치고 나온 우리는 나따 본점에 들른 다시 공원을 통과해 타 구스강 쪽으로 걸어갔다. 디스크가 좋지 않은 남편은 오래 걸으면 다리에 통증이 오는지라 장시간 걷게 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날씨가 좋아서 기분 좋게 발견기념비까지 웃으며 걸어갔다.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절 바다를 누볐던 해양왕 엔리케의 사후 5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비인데, 이 기념비가 세워진 위치가 바스코 다 가마가 항해를 떠난 자리라고 한다. 조각상으로 새겨진 사람들은 대항해 시절에 활약했던 인물들이라고 하니, 설명과 조각을 매칭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다. (맨 앞에 서있는 인물이 엔리케, 그 뒤가 바스코 다 가마 이다)

하지만 기념비보다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건 윤슬로 반짝이는 타구스강. 오래 걸은 피로도 풀 겸 강가에 앉아 4월 25일 다리와 구세주 그리스도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떠다니는 요트와 페리를 보면서 건너편 알파마 지구를 가볼까 살짝 고민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기념비에서 오른쪽으로 쭉 강을 끼고 걸어가면 벨렝탑을 볼 수 있기에 조금 더 걷기로 했다.

벨렝탑도 리스보아카드로 무료입장이 가능하지만 시간대별로 예약을 받아서 QR코드 표를 발급받아야 입장이 가능하다. 흐음- 아무리 비수기라지만 인원 제한이 걸려서 표를 받고도 벨렝탑 앞엔 긴 줄이 있었고 우린 과감하게 전망대에 오르는 것을 포기했다. 오히려 들어가는 길에서 만난 작은 공원에서 보는 벨렝탑과 타구스강의 풍경이 멋져서 여기서 쉬어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이곳 사람들은 곳곳에 자리를 잡고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만약 다시 온다면 작은 돗자리와 간단한 간식을 사서 오리라. 그만큼 초록의 공원과 벨렝탑의 조화가 참 멋있는 공간이었다.

다시 벨렝역으로 걸어가는 동안 땀이 주룩주룩 흐를 정도로 기온이 올랐는데, 버스정류장을 찾아 헤매이다 우연히 Centro Cultural de Belém 라는 곳을 들어가게 되었다. 문화센터인 건물은 매우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안에는 미술 전시나 기념품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건물을 통과해야 우리가 탈 버스가 올 정류장이 있는데,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해서 헤매기도 했지만 올리브 나무가 이쁘게 심어진 작은 정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우리가 방문한 순서와 이동경로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경우 오전에 일찍 가지 않으면 방문이 힘들다고 해서 수도원을 맨 처음 일정으로 잡았는데, 다시 돌아온 길에 보니 진짜 당일표가 매진되어 있었다. 성수기에는 오픈런하지 않고서는 들어가기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만약 벨렝지구를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전에 도착해 오후 시간대 표를 끊고 먼저 다른 곳을 본 후 마지막으로 수도원을 잡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원을 보지 않아도 괜찮다면 돗자리와 편한 바지를 입고 커피나 맥주, 혹은 간단한 주전부리를 챙겨서 벨렝탑 앞 공원이나 타구스 강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솔직히 본점에서 먹은 나따나 줄 서서 본 수도원 보다 타구스강과 벨렝탑에서 본 경치가 더 그립다. 한참 앉아 있어도 좋을 것 같은, 좋은 사람과 읽고 싶은 책 한 권만 있으면 하루 종일 있고 싶은 곳. 벨렘지구에 간다면 꼭 시도해보길.


수도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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