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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작가 Jun 24. 2021

칭찬의 삑사리

좀 쑤셔 죽는 줄.

어렸을 적, 집에 손님이 오시거나 길에서 이웃을 만날 때면 심심치 않게 엄마의 이런 얘기를 듣곤 했다. “우리 첫째는 자기 방에 들어가면,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꿈적하질 않아요. 그에 비해 우리 둘째는 내가 통화한 내용까지 다 알고 있어요.” 나는 우리 집에서 참을성 있고 집중을 잘하는 아이였다.     

     

신랑한테 물었었다. “내 강점이 뭐라고 생각해?” 신랑은 “당신 한 가지에 꽂히면 아무것도 안보이잖아.”라고 했다. 맞다. 나는 뭐 하나 시작하면 자리를 잘 뜨지 않고, 다른 일이 잘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린 시절 엄마의 칭찬은 분명 나에게 햇살이었을거다. 나무끝 우듬지가 해를 향해 뻗어나가도록 프로그램 되어있는 것처럼1) 아이들은 부모를 향하는 존재니깐.     

     

내가 표현이 어렵고 사회성이 떨어지는(적어도 내가 그렇게 보는)것은 엄마의 말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가 하기 싫은 것도 그냥 꾸역꾸역 했다. 하고 싶은 말도 꾹꾹 눌러 담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그냥 눈을 감았다. 엄마 칭찬에 울고 웃는 인정욕이 큰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믿는 내 정체성을 깰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엄마의 칭찬이 나에게는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살이기보다는 추운 터널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떨면서 걷고 걸어 간신히 빛을 맞이하는, 버겁지만 다행인, 짐이자 기댈 곳이었다.          


내가 무언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은 몰입과 집착이 섞여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 일에 푹 빠지기도 하지만, 마치고나면 힘이 쭉 빠지기도 한다. 내일 또 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도 든다. 적정선을 잡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모질고 가혹해진다.     

     

아이에게 무언가 칭찬하는 것이 불편했다. 나의 칭찬이 아이에게 부담을 주진 않을까 우려가 됐다. 더 정확히는 나의 섣부른 단정이 아이를 틀에 가둘까 두려웠다. 이건 기고 이건 아니라는 선이 아이의 세상을 제한하는 것이라 믿었다. 아이가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길 바랐다. ‘나는 잘 앉아있는 아이야’, ‘나는 어른들 말씀에 끼여들지 않는 착한 아이야’, ‘나는 잘 참는 아이지’라는 자아상은 너스레를 떨며 엄마의 가치관을 거절할 수 있는 어른이 된 후에도 아직 몸에 남아있다.          


어렸을 때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약간은 괴짜인 친구들에게 호감을 느끼곤 했다. 결혼 적령기엔,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세상 일등 장난꾸러기였음 좋겠다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한시도 가만있지 않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면이 다분하다. 어쩌면 내가 촉발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가. 이제와서 나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정도를 넘어 이 아이를 못 참겠다고 성을내곤 한.    

      

매슬로의 기본욕구 중 생존 욕구, 안전 욕구 다음으로 애정과 소속의 욕구가 있다. 인간이 타고난 욕구 중 직접적으로 생명과 연계되는 영역을 빼면 첫번째가 바로 누군가로부터의 인정이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는 "칭찬에 길들여지지 말라"고 했다. 인정 욕구를 채우는 삶을 살다보면 어느새 내가 진정 생각하는대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타고난 본성을 거슬러 이것을 선택지의 문제로 놓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내 아이가 나로부터 독립하는 시점에는 꼭 자신만의 우듬지와 해를 품고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인내심이라곤 꺼내 쓸 수 없이 말라버린 것 같았고 무엇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힘든 시간을 겪었다. 하지만 그것이 부화의 과정이었으며 지금은 그들이 나에게 건넸던 것이 거울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몇 시간째 글을 쓰며 여기 기쁘게 매여있는 것을 보더라도 말이다.          


이제는 아이를 칭찬하거나 인정하는데 주저하거나 크게 고심하지 않는다. 아이안에 스스로 무한히 빛나는 지점을 부모가 알아보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질서이며 선물인지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1) 우종영님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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